저녁에
김광섭
저렇게 많은 중에서
별 하나가 나를 내려다본다
이렇게 많은 사람 중에서
그 별 하나를 쳐다본다
밤이 깊을수록
별은 밝음 속에 사라지고
나는 어둠 속에 사라진다
이렇게 정다운
너 하나 나 하나는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김광섭 시인(1905~1977)은 함경북도 경성 출신으로 중앙고보에 진학했다가 중퇴하고 중동고보를 졸업했다. 와세다대학 영문과를 졸업한 1세대 해외문학파의 일원이었다. 1935년 ‘시원(詩苑)’에 시 ‘고독’을 발표한 이후 본격적인 시작 활동을 시작했다. 김광섭은 일제강점기 중동학교 교사 시절에 학생들에게 반일 감정을 주입했다는 이유로 3년간 옥고를 치른 독립유공자다. 금광을 운영하기도 한 그는 경무대 공보 비서관, 언론사 사장, 경희대학교 교수를 지냈다. 시집으로 동경(1938), 해바라기(1957), 성북동 비둘기(1969), 김광섭 시선집(1974) 등을 남겼다.
김광섭은 내향성의 비극에서 출발해 인간애와 자연애가 어우러지는 공동체적 사랑을 노래한 실천적 시인이었다. 시집 ‘성북동비둘기’(1969)에 실린 ‘저녁에’는 화가 김환기의 그림과 듀엣 ‘유심초’의 노래로 다시 태어나 우리의 곁에 있다.
김환기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1970). 코튼에 유채 292x216cm. 환기미술관 소장
김환기(1913~1974)는 전남 신안 출신으로 한국 추상미술의 선구자다. 단색화를 대표하는 화가로서 한국의 산천과 하늘, 달과 구름, 백자와 전통무늬 등 한국적인 소재를 가지고 점, 선, 면으로 이를 나타내는 점화를 그렸다.
화가 김환기와 시인 김광섭은 1960년대 서울 성북동에서 이웃사촌으로 살았다. 문학을 사랑했던 김환기는 중동학교 선배이면서 8살 많은 김광섭 시인을 무척 존경하고 따랐다. 김환기는 붓끝을 통해 김광섭의 시 ‘저녁에'를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라는 점화로 다시 탄생시켰다. 화폭에 찍힌 무수한 점들이 하늘의 별처럼 반짝이고 있다.
어디서 무엇이되어 다시 만나랴 / 김광섭 시(저녁에), 이세문 작곡 / 유심초 노래 (1980)
1980년 김광섭의 시 '저녁에'는 유시형과 유의형으로 구성된 형제 듀엣 '유심초'의 노래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로 재탄생한다. 이세문이 작곡했다. 유심초는 이 노래 덕분에 1981년 MBC 10대 가수 가요제에서 남자부문 신인가수상을 수상했다.
■ 김시행 저스트이코노믹스 논설실장: 한국경제신문 경제부, 산업부, 증권부, 국제부, 문화부 등 경제·문화 관련 부서에서 기자, 차장, 부장을 두루 거쳤다. 한경 M&M 편집 이사, 호서대 미래기술전략연구원 수석연구원을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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