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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 납치·감금·고문 등 캄보디아 사건으로 대한민국이 떠들썩한 요즘 필자가 자주 받는 질문이다. 8년간 인터폴 계장으로 일하며 ‘김미영 팀장’으로 악명을 떨친 보이스피싱 총책 등 해외 도피 사범의 검거·송환을 주도해온 사람으로서 이번 캄보디아 사태는 안타깝기 그지없다.
앞서 언급한 질문에 대한 답을 하려면 우선 사건을 제대로 알 필요가 있다.
이번 사건은 캄보디아 스캠 컴파운드에서 발생했다. ‘스캠 컴파운드’는 특정 지역에 조직적으로 형성된 복합 범죄 구역을 뜻한다. 주로 캄보디아 등 동남아시아에서 운영되는데 인신매매를 수반하는 것이 특징이다.
그 기원은 199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1990~2000년대 중국 범죄조직이 본토에서는 불법인 도박사업을 캄보디아·라오스·미얀마 등지에서 시작했다. 카지노 관광사업은 번창했고 2010년대 스마트폰이 대중화하자 온라인 도박으로 사업을 확장한다. 온라인 도박으로 중국인들의 피해가 심해지자 중국 정부는 캄보디아를 압박했다. 그 결과 2019년 8월 캄보디아에서 온라인 도박이 전면 금지됐다. 그때부터 범죄조직은 돈이 되는 다른 ‘사업’을 찾아 나섰다. 그것이 바로 보이스피싱, 로맨스스캠 같은 온라인 사기였다.
코로나19 팬데믹은 이 변화를 더욱 가속했다. 국경이 봉쇄되고 관광객이 사라지자 범죄조직은 카지노 단지를 개조해 본격적인 온라인 사기 범죄의 거점으로 삼았다. 팬데믹 이후 각국의 경제가 어려워지면서 일자리를 찾아 해외로 눈을 돌린 사람들은 이들 범죄의 피해자가 됐다. 초기에 중국인들이 많이 감금되자 중국 공안의 활동으로 캄보디아 내 일부 컴파운드가 폐쇄됐다. 그러자 범죄조직들은 단속을 피하기 위해 비(非) 중국인을 타깃으로 삼기 시작했다. 그렇게 악마의 손길이 한국인에게 뻗치게 된 것이다. 이런 상황을 유엔마약범죄사무소(UNODC)는 “캄보디아 사기 산업이 2020년 이후 약한 법 집행과 허술한 금융 규제, 미비한 통치 구조, 그리고 부패로 인해 급격히 확산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지금의 납치사건은 범죄조직이 사전에 정보를 취득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다. 우선 자신의 해외여행 일정 등 관련 정보를 온라인에 공개하지 말아야 한다. 모든 정보가 범행에 사용될 수 있다. ‘좋은 조건의 해외 일자리’를 내세우는 광고는 대부분 함정이다. 우리보다 경제 수준이 낮은 나라에서 더 많은 급여를 준다는 것은 애초에 논리적으로 맞지 않는다. 약간 변형해 “동남아에서 서류 전달 아르바이트를 하면 사례금을 주겠다”는 식으로 유혹하기도 한다. 저렴한 항공 배송이 가능한 시대에 사람 손으로 서류를 운반한다는 것 자체가 이미 의심해야 할 신호다. 그러나 경제적으로 어려운 상황에 놓인 사람은 가벼운 유혹에도 흔들릴 수 있다. 물론 범죄임을 알고 가는 경우도 있지만 약속한 돈을 못 받고 감금되기는 마찬가지다.
수천 건의 사기 사건을 마주하며 필자가 배운 것은 단순했다. 좋아 보이는 것은 우선 ‘의심’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의심하면 확인하게 되고 결국 거짓임을 알아챌 수 있다. 사기로부터 자신을 지키는 것은 지식이 아니라 ‘의심’이다. 세상에 공짜 점심은 없다. 언제나 그렇다.
그럼에도 만에 하나 컴파운드에 감금됐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섣부르게 탈출을 시도했다가는 생명까지 위험해질 수 있다. 먼저 주변 지형 및 환경 등 여러 정보를 통해 감금된 곳의 대략적인 위치를 파악해야 한다. 그리고 컴파운드 내부 구조와 운영방식 등을 살핀 후 탈출 기회를 노려야 한다. 실제로 감금된 한국인이 텔레그램으로 지인에게 구조를 요청했다가 발각돼 폭행과 고문을 당한 일이 있었다. 그는 전송내용까지 감시되고 있다는 점을 파악하고 ‘내게 쓴 메일함’에 감금 위치를 저장하는 기지를 발휘했다. 결국 위치정보가 국내로 알려지며 무사히 구출될 수 있었다. 가족이나 지인이 해외에서 감금이 의심되는 경우라면 신속하게 경찰에 신고해야 한다. 이후 할 일은 감금된 가족 또는 지인이 사회관계망서비스(SNS)나 이메일 등으로 보내는 아주 작은 신호도 놓치지 않으려는 노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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