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은 여름 내내 쌓인 피로가 몸으로 드러나는 시기다. 낮에는 여전히 햇살이 따갑지만, 아침저녁으로 공기가 차가워지며 기온이 뚝 떨어진다. 기온 변화에 몸이 적응하지 못하면 쉽게 피로해지고 입맛도 떨어진다. 이럴 때는 몸속 에너지를 다시 채워줄 따뜻한 음식이 절실하다.
가을철 보양식 중에서도 '붕장어'는 빼놓을 수 없다. 살이 통통하게 올라 기름기가 돌며 맛이 절정에 달한다. 불판 위에서 노릇하게 익어가는 붕장어의 향만 맡아도 입안에 군침이 돈다.
그런데 의외로 이 붕장어는 한국에서만 익숙한 음식이다. 일본에서는 초밥 재료로만 쓰이고, 유럽에서는 거의 먹지 않는다. 같은 바다에서 잡히지만, 문화와 식습관에 따라 전혀 다른 식재료로 받아들여진다.
유럽에서는 왜 붕장어를 피할까
붕장어는 한국뿐 아니라 대서양과 지중해에서도 흔히 잡힌다. 하지만 유럽에서는 식탁에 거의 오르지 않는다. 그 이유 중 하나는 외형 때문이다.
붕장어는 비늘이 없고 미끈거리는 피부를 가지고 있다. 손질할 때 점액질이 많아 다루기 어렵고, 뱀처럼 생긴 모습에 거부감을 느끼는 사람도 많다. 그래서 일부 지역에서는 아예 ‘악마의 물고기’라고 부르기도 한다.
또한 식감 차이도 있다. 붕장어는 지방이 적고 살이 단단하다. 구이나 조림을 하면 부드럽게 풀어지는 대신 질긴 느낌이 남는다. 지방이 풍부한 민물장어를 더 선호하는 유럽 사람들에게는 거친 생선으로 느껴진다.
조리 문화의 차이도 크다. 유럽에서는 대부분의 생선을 소금에 절이거나 훈제해 보관했고, 붕장어도 예외는 아니다. 네덜란드와 덴마크에서는 주로 훈제로 가공해 먹는다. 반면 한국은 잡은 직후 손질해 생으로 먹거나 숯불에 바로 굽는다. 신선함을 중시하는 조리 문화가 붕장어의 고소한 맛을 제대로 살려낸다.
결국 식감과 조리 방식, 그리고 인식의 차이가 겹치면서 유럽에서는 붕장어가 낯선 생선으로 남았다.
한국의 바다와 손맛이 만든 붕장어 문화
한국에서 붕장어 요리가 발달한 이유는 바다의 성격부터 다르다. 남해와 서해는 바닥이 갯벌로 이루어져붕장어가 살기 좋다. 붕장어는 갯벌 속에 몸을 숨기고 살아가는데, 이런 환경에서 자란 개체는 근육이 단단하고 지방이 고루 퍼져 있다.
특히 부산 기장, 통영, 여수 앞바다는 해류가 교차하면서 영양분이 풍부하다. 이곳은 붕장어의 산란지로 알려져 있고, 그중에서도 기장은 ‘붕장어의 고장’으로 불린다.
기장 어민들은 새벽어둠이 걷히기도 전부터 배를 띄운다. ‘주낙’이라 불리는 전통 어업법으로 붕장어를 잡는데, 긴 줄에 수백 개의 낚싯바늘을 매달고 붕장어가 다니는 길목을 감으로 찾아내야 한다. 손이 많이 가지만 상처가 거의 없어 품질이 뛰어나다.
이렇게 잡은 붕장어는 냉동하지 않고 바로 식당으로 보내진다. 생물을 그대로 회를 뜨거나 숯불에 굽는 조리법은 한국에서만 볼 수 있다. 바다 환경과 어획 기술, 신선함을 중시하는 조리 방식이 어우러져 지금의 붕장어 문화를 만들어냈다.
단백질과 콜라겐이 풍부한 가을철 보양식
붕장어가 오랫동안 보양식으로 여겨진 이유는 영양 구성이 뛰어나기 때문이다. 100g당 단백질이 20g 이상 들어 있고, 지방은 적다. 불포화지방산 비율이 높아 혈중 콜레스테롤을 낮추고 DHA(불포화지방산)와 EPA(에이코사펜타엔산)가 혈관을 깨끗하게 유지하는 데 도움을 준다. 또한 비타민 A와 E도 풍부해 피로 해소와 피부 재생에 좋다.
'동의보감'에서는 붕장어는 기력을 돋우고 원기를 회복시키는 식재로 언급돼, 여름철 보양식으로 자주 쓰였다. 예로부터 ‘힘이 나는 생선’이라 불린 이유도 이 때문이다.
붕장어 껍질에는 콜라겐이 많아 노화 방지에도 도움이 된다. 껍질째 구워 먹으면 영양 흡수율이 높고, 지방이 적으면서도 고소한 맛이 강해 다이어트 중에도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다. 붕장어 뼈에는 칼슘과 인이 풍부해 성장기 어린이나 노년층에게도 좋다.
전국에서 만나는 붕장어 명소
이처럼 영양이 풍부한 붕장어는 제철을 맞으면 맛까지 절정에 이른다. 불판 위에서 익어가는 소리와 고소한 향만으로도 입맛이 살아난다. 붕장어 가격은 대체로 1인분에 2만 5000원에서 3만 5000원 선이며, 산지에서는 이보다 조금 더 저렴하게 즐길 수 있다. 지역마다 손맛과 조리법이 달라 같은 붕장어라도 맛의 차이가 조금씩 느껴진다.
먼저 부산 기장 ‘해송칠암붕장어’ 일광 해안가를 따라 붕장어 식당이 줄지어 있는 곳이다. 대부분 당일 잡붕장어를 바로 손질해 숯불에 굽기 때문에 겉은 바삭하고 속은 촉촉하다. 지방이 입안에서 녹듯 퍼지고, 살짝 탄 껍질 향이 입맛을 돋운다.
다음으로 전남 여수의 ‘대성장어’는 남해 특유의 완만한 수온과 깨끗한 바다 환경 덕분에 붕장어가 특히 잘 자라는 곳이다. 붕장어의 탄력 있는 살결이 특징이며, 고추장 양념구이와 간장 양념구이가 모두 인기가 좋은 메뉴다.
마지막으로 서울 서초구 방배동의 ‘통영 붕장어’는 도심 속에서도 남해의 맛을 그대로 느낄 수 있는 곳이다. 통영 앞바다에서 직접 공수한 붕장어를 매일 공급받아 손질 후 초벌로 한 번 굽고, 주문 즉시 숯불에 올려 겉은 바삭하고 속은 촉촉하게 완성한다.
기본 간장양념 외에도 고추장 양념, 소금구이 등 선택 폭이 넓으며, 뼈 튀김과 장어탕까지 함께 즐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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