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연 회장이 대우조선 인수해 대박난 건 故 이건희 회장 조언 때문"

실시간 키워드

2022.08.01 00:00 기준

"김승연 회장이 대우조선 인수해 대박난 건 故 이건희 회장 조언 때문"

저스트 이코노믹스 2025-10-24 20:34:00 신고

3줄요약

 

패러디 삽화=최로엡 화백
패러디 삽화=최로엡 화백

 25일 고(故) 이건희 삼성 선대회장의 5주기에 맞춰 김승연(73) 한화그룹 회장과 아들인 김동관(41) 한화그룹 부회장이 선영에 조화(弔花)를 보내 눈길을 끌었다. 이같이 두 사람이 고 이건희 회장에게 조화를 보내 존경과 애도를 표하는 것은 매년 있는 일이다.  

 특히 김승연 회장은 2주기 추모식에 재계 총수 중 유일하게 직접 참석해, 고인에 대한 각별한 존경과 애도를 표하기도 했다.

  김승연 회장은 2020년 이건희 회장의 장례식장을 찾아 "가장 슬픈 날"이라고 표현한 것은 일반적인 조의 표현을 넘어선 지극히 개인적이고 정서적인 고백이었다. 이는 이건희 회장을 자신의 경영 철학과 삶에 근본적인 영향을 미친 존경하는 멘토 혹은 연장자(10살 차이)로 여겼음을 공공연히 선언한 행위다.

김승연 한화 회장의 대우조선 인수

 고 이건희 회장의 조언을 따른 것

  김승연 회장은 2008년 뜬금없이 대우조선해양을 무려 6조3000억원에 인수하겠다고 나서(우선협상대상자) 재계가 고개를 갸우뚱해 했다. 화약,화학 중심의 한화그룹이 대한생명(현 한화생명)을 과감하게 인수한지 6년만에 또다시 뜬금없는 대우조선해양을 또 인수했기 때문이다.

 이런 무리수로 인해 같은 해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져 예상밖으로 자금조달상 차질을 빚어 결국 인수계약을 파기해야만 했다. 이미 이행보증금 3000억원을 납부했기 때문에 산업은행과 반환소송이 10년간 이어지기도 했다. 한화는 1·2심에서는 졌으나 대법원에서  "이행보증금을 전액 몰수하는 것은 과하다"며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내  결국 1260억원만 되돌려 받는 부분 승소 판결을 받았었다. 

그러나 14년 뒤인 2022년 김승연 회장은 대우조선해양 인수를 재추진해 2조원에 인수해 끝내 성공했다. 첫 인수가격 6조3000억원에 비하면 헐값이었다.

  이와관련 한화그룹의 한 전직 고위임원은 "김승연 회장이 조선업 분야에 잠시도 눈을 떼지 않고 10년 넘게 끝까지 집착한 것은 바로 고 이건희 삼성 회장의 조언을 잊지 않았기 때문"라며 "두 사람간 회동 때 대우조선해양은 무조건 한화가 가져와야 된다고 김승연 회장에게 권유한 것"이라고 귀띔했다.   

  어찌됐건 현재와 같이 한화그룹이 대우조선해양을 인수해 방산·조선·항공 분야를 아우르는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육해공 방산통합 기업'으로 클 줄은 그 누구도 예측하지 못했었다.

 그런데 이같은 한화그룹의 급성장 뒤에는 김승연 회장이 고 이건희 회장의 경영조언을 경청한 덕이 적지 않다는 얘기다.

  김승연 회장이 이건희 회장에게

  '형님'으로고 한 개인적 유대는?

 우연한 하와이 만남과 화답 일화

 한화그룹 관계자에 따르면 김 회장은 이건희 회장을 '형님'이라고 부르며 따랐고, 두 사람은 재계 총수들 사이에서도 특히 가깝게 지내는 사이로 알려져 있었다.  이처럼 개인적 유대감과 재계 서열에 대한 존중은 이후 중요한 경영 사안을 논의할 수 있는 신뢰의 토대가 되었다는 게 재계인사들의 설명이다.

 두 총수의 관계를 결정적으로 발전시킨 계기는 2002년 초 하와이에서의 우연한 만남이었다. 이건희 회장은 당시 호흡기 질환 등의 이유로 따뜻한 기후의 하와이를 선호하며 매년 겨울 요양을 위해 머물렀다. 그런데 김승연 회장이 전지훈련 중인 한화이글스 야구단을 격려하기 위해 하와이에 방문했었다고 한다.

 이건희 회장은 김승연 회장의 방문 소식을 듣고 격려 차원에서 한화이글스 회식용으로 양주를 선물했다고 한다. 이건희 회장의  비공식적이고 인간적인 제스처에 김승연 회장은 깊은 인상을 받았고, 이를 단순한 호의가 아닌 재계 대선배의 각별한 배려로 받아들였다. 김승연 회장은 이에 대한 답례 차원에서 그해 4월 이건희 회장의 서울 한남동 영빈관인 승지원(承志園)을 방문해 오찬 회동을 가졌다고 한다. 

이 만남은 김승연 회장이 한화그룹의 숙원 사업이었던 대한생명(현 한화생명) 인수에 성공하여 그룹 덩치를 재계 5위로 끌어올리는 기염을 토한 직후에 이루어졌다. 삼성생명을 소유하고 있던 이건희 회장의 승지원 초대는 김승연 회장의 과감하고 성공적인 M&A 전략을 사실상 재계에서 공인해 준 것으로 해석됐다. 한화생명에 대한 경영조언은 당연했다.

 또 이건희 회장은 이 자리에서 당시 재계의 주요 화두였던 '인재경영'과 '준비경영'을 통해 국내 기업의 경쟁력을 한 단계 높이는 역할을 하고 있었다. 김승연 회장이 삼성의 가장 상징적인 공간인 승지원에서 조언을 구하고 경청한 것은, 단순한 비즈니스 협력을 넘어 이건희 회장을 자신의 전략적 나침반으로 삼았음을 의미한다.

  이에앞서 이건희 회장과 김승연 회장의 개인적인 유대는 두 그룹 창업주 세대부터 이어져 온 재계의 역사적 흐름 속에 자리 잡고 있다. 특히 창업주인 호암(湖巖) 고 이병철 회장과 현암(玄巖) 고 김종희 회장은 호(號)에 바위 '巖' 자를 공유하고 있었다는 상징적인 연결고리가 있다. 이러한 계보적 유사성은 두 그룹이 한국 경제 발전의 주축으로서 비슷한 야망과 깊은 역사적 뿌리를 공유했음을 시사하며, 이는 후대 총수들이 상대방을 대하는 태도에 간접적인 영향을 미쳤을 수 있다.

한화·삼성간 빌딜 성사도

이건희-김승연의 합작품

  이건희-김승연 관계의 개인적 신뢰가 기업 구조조정이라는 전략적 성과로 구체화된 것은 2014년 삼성과 한화 간의 '빅딜'이었다. 이 거래는 삼성테크윈, 삼성탈레스, 삼성종합화학, 삼성토탈 등 삼성의 방산 및 화학 계열사 4개사를 한화가 인수하는 내용으로, 당시 한국 재계 역사상 가장 큰 규모의 그룹 간 빅딜이었다.

 이 거래는 두 그룹의 후계 승계 구도와도 밀접하게 맞물려 있었다.

 삼성그룹에게는 이건희 회장의 장기 와병 공백 속에서 이재용 부회장이 경영 전면에 나서 사업 구조 재편의 큰 틀을 직접 챙기는 과정이었으며, 전자와 금융 중심으로 그룹 구조를 단순화하고 이재용(57)회장의 주도권을 확고히 하는 결정이었다. 특히 화학 부문이 승계 구도에서 제외되면서 이부진 사장의 역할은 대폭 축소되었고, 이 빅딜은 사실상 '이재용 식 삼성그룹'의 출발 신호탄으로 평가되었다.

 한편 한화그룹에게 이 빅딜은 김승연 회장의 '창조적인수합병(M&A)' 철학의 방점을 찍는 사건이었다. 이 인수를 통해 한화는 국내 방산 사업 1위, 석유화학 사업 1위로 도약하는 발판을 마련했으며 ,이 거래의 성공은 김승연 회장이 건강 문제와 법적 문제 이후 경영일선에 복귀할 수 있는 강력한 명분을 제공하기도 했다.

 특히 중요한 것은 중국 사업 관련  이건희 회장의 조언이었다.

 한화는 레저, 석유화학, 정보통신 분야에서 중국 시장 진출 전략을 본격적으로 발표한 직후였다. 이에 대해 이건희 회장은 한국 기업들이 중국 시장을 "잘 활용해야 하지만, 대비책을 마련하는 일도 중요하다"고 강조했다고 한다. 이러한 조언은 이건희 회장의 '준비 경영' 철학을 담고 있으며, 이는 경쟁사 최고 경영자에게 제공하기 힘든, 미래 시장의 리스크 관리 방안에 대한 구체적이고 깊이 있는 통찰이었다. 이러한 수준의 솔직하고 전략적인 조언 교환은 두 사람 사이에 극도의 신뢰 관계가 구축되어 있지 않았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양사간 후계자 주도의 협상

이재용-김동관 라인도 탄탄

  한편 2014년 빅딜 협상은 선대 총수들의 신뢰를 바탕으로 후계자들이 주도하여 완성했다는 점에서 특히 의미가 크다. 당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김동관 한화솔라원 영업실장(CCO)은 복잡하게 얽힌 4개 계열사의 지분 처리 및 기업결합 이슈를 조정하는 막후 조정자(幕後調定者) 역할을 수행하며 협상을 진두지휘했다.

나이 차이는 있지만 평소 막역한 사이였던 당시 이재용 부회장(1968년생)과 김동관 실장(1983년생)은 하버드대 동문(이재용 부회장: 경영학 박사 수료, 김동관 실장: 정치학과 졸업)이라는 공통분모도 가지고 있었다. 이들 후계자 라인의 긴밀한 친분 관계는 임원급 협상 과정에서 난항이 불거질 때마다 이를 원활하게 해결하는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이처럼 빅딜은 단순히 기업 간의 거래를 넘어, 선대에서 구축된 신뢰 채널이 다음 세대로 이전되어 전략적 목표를 달성하는 데 성공적으로 활용된 사례였다.

 

 

Copyright ⓒ 저스트 이코노믹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본 콘텐츠는 뉴스픽 파트너스에서 공유된 콘텐츠입니다.

다음 내용이 궁금하다면?
광고 보고 계속 읽기
원치 않을 경우 뒤로가기를 눌러주세요

실시간 키워드

  1. -
  2. -
  3. -
  4. -
  5. -
  6. -
  7. -
  8. -
  9. -
  10. -

0000.00.00 00:00 기준

이 시각 주요뉴스

알림 문구가 한줄로 들어가는 영역입니다

신고하기

작성 아이디가 들어갑니다

내용 내용이 최대 두 줄로 노출됩니다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이 이야기를
공유하세요

이 콘텐츠를 공유하세요.

콘텐츠 공유하고 수익 받는 방법이 궁금하다면👋>
주소가 복사되었습니다.
유튜브로 이동하여 공유해 주세요.
유튜브 활용 방법 알아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