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00억 달러(약 500조 원) 규모의 대미 투자 협상에서 '현금 투자 비율'을 둘러싸고 한미 양국이 팽팽히 맞서고 있다.
김정관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24일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어떤 수준이 적절한지에 대해 양쪽이 크게 맞서고 있다"며 "우리는 투자 규모가 작아져야 한다는 쪽이고, 미국은 조금 더 늘려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김 장관은 김용범 대통령실 정책실장과 함께 미국을 다녀왔다. 이들은 하워드 러트닉 미국 상무장관과 만나 한미 관세 협상 후속 방안을 논의한 뒤, 이날 새벽 귀국했다.
김 장관은 "협상 시한을 별도로 정하지 않고, 우리 측 입장이 끝까지 반영되도록 노력하고 있다"고 밝혔다. 또 "협상은 양국의 상호 이익, 상업적 합리성, 외환시장 충격 최소화라는 세 가지 원칙을 바탕으로 진행 중"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미국 측도 지속적인 협의 끝에 우리 외환시장에 미칠 파장을 어느 정도 이해하고 있다"면서도 "하지만 미국이 요구하는 현금 투자 규모는 국민경제나 시장에 미치는 영향 때문에 쉽게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강조했다. 이어 "미국이 초기 투자를 먼저 하라고 요구했던 부분도 상당부분 접었다"고 덧붙였다.
김용범 정책실장 또한 이날 인천공항에서 "일부 진전은 있었지만 핵심 쟁점에선 여전히 평행선을 달리고 있다"며 "APEC 정상회의 전 타협은 현실적으로 기대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앞서 한미 양국은 지난 7월 관세 협상에서 미국의 대(對)한국 상호관세율을 25%에서 15%로 내리는 대신, 한국이 총 3,500억 달러 규모의 대미 투자에 나서기로 합의했다.
하지만 구체적인 현금 투자 비율을 놓고 이견이 계속되고 있다. 한국은 전체 투자액 중 약 5% 이내만 현금으로 하고, 나머지는 보증 형태로 충당하자는 입장이다. 반면 미국은 일본 방식처럼 '백지수표식 직접 투자'가 더 많이 포함되길 요구하고 있다.
최근 우리 정부는 일정 부분 현금 투자 비율을 다소 늘리더라도, 8년에 걸쳐 연 250억 달러씩 분할 투자하는 등 재정 부담을 줄이는 방안을 제안한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외환시장 안정, 재정 여력을 감안할 때 단기간에 막대한 현금을 투입하는 건 부담스럽다는 생각이 정부 안에 확고하다.
이재명 대통령 역시 전날 공개된 CNN 인터뷰에서 "양국 간 조율에 시간이 필요하다"며 "서두르지 않겠다"는 뜻을 내비쳤다.
이처럼 한미 양국이 좀처럼 입장 차이를 좁히지 못하면서 이번 APEC 정상회의에서 극적인 타결을 이루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힘을 받고 있다.
[폴리뉴스 이상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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