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컬처 이준섭 기자] 연말 무대를 수놓을 기대작 '라이프 오브 파이(Life of Pi)'가 드디어 한국 초연을 맞는다.
12월 2일 GS아트센터에서 개막하는 이번 공연은 소설과 영화로 이미 전 세계 관객의 사랑을 받은 이야기를 무대 위에서 재창조하며, 관객에게 몰입과 사유를 동시에 요구한다. 그러나 작품의 진정한 가치는 서바이벌 서사에 있지 않고, 시대적 배경과 사회적 메시지, 철학적 질문을 동시에 담아낸 데 있다.
이야기는 1970년대 인도를 배경으로 시작된다. 다문화적, 다종교적 환경 속에서 성장한 소년 파이는 힌두교, 기독교, 이슬람교를 동시에 받아들이며 신앙과 정체성을 탐색한다. 이는 오늘날 글로벌 사회에서 개인이 겪는 정체성 혼란과 신념 선택 문제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동시에 가족과 공동체 속에서 성장하며 경험하는 문화적 규범과 사회적 기대는, 인간 존재를 둘러싼 복잡한 윤리적 환경을 드러낸다.
무대 연출의 핵심은 퍼펫과 무브먼트를 결합한 시각적·신체적 언어다. 벵골 호랑이 ‘리처드 파커’ 퍼펫은 단순한 상징이 아니라, 인간과 자연 사이 긴장과 공존을 상징한다. 퍼펫의 살아 있는 움직임과 시선은 관객이 공포와 연민, 긴장과 이해를 동시에 체감하게 한다. 고래와 해파리 군무, 미어캣이 뛰노는 섬 장면은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허물며, 인간이 자연과 공존하는 방식과 생존 윤리를 관객에게 질문한다.
각 장면에는 사회적 메시지가 녹아 있다. 예를 들어, 파이가 배 위에서 고립된 채 리처드 파커와 생존을 위해 협력하는 과정은 개인과 타자, 인간과 자연이 공존할 때 발생하는 긴장과 균형을 보여준다. 이는 현대 사회에서 다문화적 충돌과 협력, 공동체적 공존을 은유적으로 표현한 장면이다. 미어캣이 뛰노는 섬에서는 집단 내 작은 사회의 질서와 규범, 생존 전략을 관찰할 수 있는데, 이는 인간 사회에서의 협력과 경쟁, 생존 전략의 미묘함을 반영한다.
배우들의 연기도 이러한 메시지를 강화한다. 파이 역의 박정민과 박강현은 극한 상황 속에서 인간 본성과 신념, 정체성을 탐색하는 모습을 섬세하게 그려낸다. 아버지와 어머니 역의 조연들은 가족과 사회적 규범, 전통과 현대적 가치 사이에서 발생하는 갈등과 성장을 현실적으로 보여주며, 시대적·사회적 맥락을 극에 자연스럽게 녹여낸다.
무대 경험 자체도 관객에게 철학적·사회적 질문을 던진다. 거대한 고래가 바다를 가르며 솟구치는 순간, 리처드 파커의 눈빛, 미어캣이 뛰노는 섬은 단순한 시각적 환상을 넘어, 인간과 자연, 개인과 사회, 생존과 윤리 사이의 균형을 고민하게 만든다. 라이브 온 스테이지(Live on Stage)라는 형식은 단순한 기술적 장치를 넘어, 관객과 작품, 그리고 사회적 현실 사이의 새로운 대화를 창출한다.
결국 ‘라이프 오브 파이’는 경이로움과 예술성, 인간성뿐 아니라 사회적 메시지와 시대적 통찰까지 결합한 작품이다. 올 연말, 이 공연은 단순한 관람을 넘어, 감각적·철학적·사회적 체험을 동시에 제공하며, 기존 공연과는 다른 차원의 몰입을 가능하게 한다.
뉴스컬처 이준섭 rhees@nc.p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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