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신문 권신영 기자】청년 남성들을 중심으로 성선호장애로 진료받는 인구가 증가하고 있지만, 개념의 불명확성과 치료·연구 체계의 부재로 성범죄 예방과 관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전문가들은 성범죄의 발생과 재발을 막기 위해 처벌보다 치료 중심의 접근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23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더불어민주당 박희승 의원이 국민건강보험공단(이하 공단)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를 본지가 단독 입수했다. 이 자료에 따르면 지난 6월 기준 성선호장애로 진료를 받은 환자는 348명으로, 지난해 상반기(316명)와 비교했을 때 약 10%(32명)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국내 성선호장애란 한국질병분류정보센터(KCD)상 질병코드 F65로 설정돼 있으며 해당 지표는 성범죄를 저질러 성선호장애를 진단받은 인원과는 별개로 집계됐다. 보통 성범죄 발생 이후 피의자에게 진단되는 성선호장애는 법무부 산하 국립법무병원에서 확인 받는 경우가 많은데, 범죄 피의자의 경우 급여가 정지되기 때문에 건강보험으로 집계하는 통계에 포함되지 않았다.
공단 자료를 보면 국내 성선호장애 진료 유형은 ▲물품음란증 ▲노출증 ▲관음증 ▲소아성애증 ▲가학피학증 등으로 분류된다. 이 중 가장 많이 나타나는 유형은 관음증으로, 올해 상반기 기준 전체 중 33.6%(117명)를 차지했다. 이어 노출증 11.4%(40명), 소아성애증 4.6%(16명) 등 순이었다.
2015년부터 지난 6월까지 전체 성선호장애 진료 인원 4300명 중 대부분이 남성(99.4%)이었으며, 올해 상반기 기준 348명은 전부 남성이었다. 2017년까지 여성 진료 기록이 매년 5~10명으로 꾸준히 존재했으나 2019년 7명을 제외하고 2018년부터 매년 진료받은 여성은 매년 5명 미만으로 극소수였다.
연령별로 봤을 때는 2030세대에 성선호장애 진료 인원이 많이 분포해 있었다. 올해에도 기준 20대가 125명(35.9%)으로 가장 많았고, 그다음으로 30대 107명(30.7%), 40대 50명(14.3%)이 뒤를 이었다.
국내에서는 이 같은 성도착장애에 대한 연구와 진료 시설이 미비할 뿐만 아니라 용어 정의조차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성선호장애를 가지고 있더라도 병의원에 방문하지 않는 암수(暗數)율이 훨씬 높을 것으로 추정되는 까닭이다.
한국은 국제질병분류 제10판(ICD-10·1990)을 근거로 성선호장애를 규정하고 있다. 다만 ICD가 성선호장애를 상위 범주로 두고 그 하위에 성도착증(물품음란증, 노출증, 관음증, 소아성애증 등)을 포함한 것과 달리, 한국은 두 용어를 사실상 동일한 의미로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미국정신의학협회의 정신질환진단 및 통계편람 제5판(DSM-5·2013)에서는 ‘성도착증 장애(Paraphilic Disorder)’라는 개념을 새로 도입해 단순히 비정상적 성적 취향이 있는 사람과 그로 인해 고통을 겪거나 타인에게 피해를 주는 사람을 구분했다. 즉 미국에서는 모든 성도착을 질병으로 보지 않고 선호와 질병을 구분해 개인에게 실제 문제가 되거나 타인에게 해를 끼치는 경우에만 ‘장애’로 보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일반인들이 성선호장애에 대해 진료를 받는 수가 늘어나는 현상에 대해 유병률 자체가 늘어났거나 질환을 스스로 인지하고 병원을 찾는 환자들이 늘어났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성범죄 발생을 막기 위해 성선호장애에 대한 진단과 치료가 이뤄져야 한다는 주장도 있었다.
단국대 심리치료학과 임명호 교수는 본보와의 통화에서 “통계상 드러나는 환자 수는 빙산의 일각일 뿐 실제로는 그 수가 훨씬 많을 것이다. 국내 인식이 나쁜 질환이다 보니 성도착장애로 진단을 받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며 “범죄 발생 이후 국립법무병원에서 진단받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짚었다.
그러면서 “외국에서도 윤리적 논란이 많지만, 결국 이를 정신적 장애로 본다면 처벌이 아닌 치료가 우선돼야 한다”며 “성선호장애의 원인이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고, 호르몬 수치 역시 개인차가 커 명확한 기준을 만들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결국 제도와 인식 개선이 선행되지 않으면 치료 접근은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뒤이어 임 교수는 예방적 관점의 개입 필요성도 강조했다. 그는 “관음증, 노출증, 접촉증 같은 비교적 경한 형태의 성적 편향은 초기에 치료하면 더 심각한 형태의 범죄나 소아성애증으로 발전하는 것을 막을 수 있다. 결국 예방이 가장 중요하다”고 했다.
하버드 의과대학 임상 조교수이자 법의정신과 전문의인 르네 소렌티노(Renée Sorrentino, MD) 박사 역시 2016년 Psychiatric times(정신과 전문의를 대상으로 하는 동료 심사를 거친 의학 전문 영문 간행물)기고를 통해 “비정상적 성적 취향을 가진 사람들 중 일부만이 성범죄를 저지른다”고 강조한 바 있다.
그는 “성폭력의 비용과 결과는 굉장히 크다. 성폭력 피해로 인해 미국에서 매년 약 4500억 달러의 손실이 발생한다”며 “성범죄를 예방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성범죄에 대한 진단과 효과적인 치료”라고 설명했다.
박 의원은 “우리나라는 외국과 달리 성선호장애에 대한 사회적 인식과 연구가 아직 부족한 측면이 있다. 병원을 찾는 경우도 드물 것”이라며 “질환이라는 인식과 함께 조기 진단과 적절한 치료를 통해 예방·관리정책에 만전을 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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