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스경제=고예인 기자 | 인공지능(AI) 시대의 핵심 부품인 6세대 고대역폭메모리 ‘HBM4’ 시장의 패권을 잡기 위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전쟁이 본격화됐다. 최근 두 회사가 나란히 HBM4 실물을 공개하며 기술력을 과시하고 양보 없는 자존심 대결을 예고했다.
HBM3와 HBM3E 시장을 선점하며 ‘HBM 절대 강자’로 군림한 SK하이닉스는 HBM4에서도 자신감을 보이고 있는 가운데 삼성전자는 ‘D램 33년’의 아성을 지키기 위해 HBM4로의 완벽한 부활을 노리며 D램 1위자리를 되찾겠다는 목표다.
업계에서는 삼성전자가 이르면 올해 말부터 HBM4 양산에 돌입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최근 엔비디아와 HBM4 공급을 위한 인증 작업도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전자,‘1c D램·수율 90%’로 기술 리더십 부활
HBM3E 시장에서 다소 부진했던 삼성전자는 HBM4를 통해 ‘메모리 명가’의 위상을 되찾겠다는 각오다. 삼성전자가 내세운 가장 큰 무기는 ‘기술 초격차’다. 최근 ‘반도체대전(SEDEX) 2025’에서 공개한 HBM4는 업계 최초로 10나노급 6세대(1c) D램을 적용했다는 점에서 차별화된다. 경쟁사가 5세대(1b) 공정을 활용하는 것과 비교해 한 세대 앞선 미세 공정을 도입, 성능과 효율을 한 단계 끌어올린 것이다.
삼성전자의 HBM4는 표준 규격보다 높은 최대 11Gbps의 데이터 처리 속도를 구현하면서도 전력 효율은 HBM3E 대비 40%나 개선했다. 더욱 놀라운 점은 양산의 핵심 지표인 수율이다. 삼성전자는 HBM4에 적용되는 로직 다이 수율을 이미 90% 수준까지 끌어올렸다고 밝히며 시장의 예상을 뛰어넘었다. 통상 60%를 양산 가능 수준으로 보는데, 이를 훨씬 웃도는 수치는 대량 생산에 대한 자신감의 표현이자 원가 경쟁력 확보를 의미한다.
삼성전자는 이르면 올해 말부터 양산에 돌입해 엔비디아의 차세대 AI 칩 ‘루빈’ 등에 공급, 단숨에 HBM 시장 주도권을 가져오겠다는 전략이다.
◆SK하이닉스, ‘안정성·고객 신뢰’로 HBM 왕좌 수성
현 HBM 시장의 챔피언인 SK하이닉스는 ‘안정성’과 ‘고객 신뢰’를 바탕으로 왕좌를 지키겠다는 전략이다. SK하이닉스는 올해 2분기 기준 글로벌 HBM 시장에서 62%의 압도적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으며 HBM3E로 한정하면 70%를 넘어서는 독보적인 1위다. 지난 9월 세계 최초로 HBM4 개발 완료를 공식화하며 기술력을 입증했고 주요 고객사인 엔비디아와의 굳건한 파트너십을 통해 시장 지배력을 공고히 하고 있다.
SK하이닉스의 HBM4는 시장에서 충분히 검증된 10나노급 5세대(1b) 공정을 기반으로 한다. 이는 새로운 공정 도입에 따른 위험 부담을 줄이고 고객사가 원하는 수준의 성능과 품질을 안정적으로 공급하는 데 초점을 맞춘 전략이다.
곽노정 SK하이닉스 사장은 “주요 고객사가 원하는 성능과 속도 기준을 모두 충족했으며 양산성도 확보했다”고 자신감을 내비쳤다. 곽 사장의 이같은 발언은 엔비디아를 비롯한 고객사들과의 내년 물량 협상이 사실상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었음을 시사하는 발언으로 풀이된다. HBM3, HBM3E를 연이어 성공시키며 쌓아 올린 ‘최초’라는 타이틀과 두터운 고객 신뢰를 HBM4에서도 이어가겠다는 것이다.
◆전문가들 “결국은 고객의 선택…내년 하반기 승부 갈릴 것”
전문가들은 두 회사의 HBM4 경쟁이 내년 하반기 본격화될 것으로 전망하며 승패는 결국 엔비디아와 같은 핵심 고객사의 선택에 따라 갈릴 것으로 보고 있다. HBM4 시장 역시 전세계 AI칩 시장을 지배하고 있는 엔비디아가 키를 쥐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삼성전자가 내세운 ‘1c 공정’과 ‘높은 수율’은 분명 매력적인 카드지만 SK하이닉스가 그동안 쌓아온 안정적인 공급 능력과 품질에 대한 신뢰 역시 쉽게 깨기 어려운 벽이라는 분석이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삼성전자가 기술적 우위를 점한 것은 사실이나 SK하이닉스는 이미 주요 고객과 HBM4 로드맵을 공유하며 끈끈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며 “결국 누가 더 고객이 원하는 스펙과 물량을 제때 공급하느냐의 싸움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삼성전자가 남은 기간 동안 실제 양산 능력과 품질을 증명해 고객의 마음을 돌릴 수 있느냐가 관건이라는 의미다.
2026년 71조원 규모로 폭발적 성장이 예상되는 HBM 시장. ‘기술의 삼성’과 ‘신뢰의 하이닉스’ 중 누가 AI 시대의 진정한 승자가 될지 전 세계 반도체 시장의 이목이 쏠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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