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빛이 번지는 호수 가장자리, 물안개 사이로 붉은빛의 나무들이 서 있다. 물속에 뿌리를 담근 채 잎을 물들이는 이 나무는 낙우송이다. 뿌리 일부가 물 위로 솟아오른 형태로, 마치 나무가 숨을 쉬는 듯한 모습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낙우송을 ‘붕어나무’라고 부른다.
낙우송은 북미가 원산으로 호수나 늪, 강가 등 물가에서 잘 자란다. 일반적인 침엽수는 낙엽이 지지 않지만, 낙우송은 가을이면 잎이 황갈색으로 변해 낙엽처럼 떨어진다. 침엽수이면서 낙엽이 지는 특이한 구조를 가진 셈이다. 높이는 50m에 달하고, 수피는 붉은 갈색으로 세로로 갈라져 벗겨진다.
국내에서는 순천만, 담양, 경주 보문호, 양평 두물머리 등에서 자생 혹은 조경용으로 자라고 있다. 가을철 호수에 낙우송이 만들어내는 풍경은 그 자체로 하나의 명소다. 특히 물안개가 피어오르는 새벽 무렵, 낙우송 군락이 물에 비친 모습은 한국의 가을을 대표하는 장면으로 꼽힌다.
물속에서도 살아남는 구조
낙우송은 물에 잠겨도 썩지 않는다. 다른 나무들이 수분 과다로 뿌리가 숨을 못 쉬어 죽는 것과 달리, 낙우송은 스스로 산소를 흡수하는 공기뿌리를 낸다. 이 공기뿌리는 지면 위로 솟아올라 공기 중의 산소를 받아들여 줄기와 잎으로 보낸다. 이런 구조 덕분에 물가나 늪지에서도 수십 년 이상 생존할 수 있다.
잎은 선형으로 부드럽고, 길이는 2cm 안팎이다. 여름엔 짙은 녹색이지만 가을이면 황갈색으로 물들어 낙엽처럼 떨어진다. 침엽수 중 이런 특성을 가진 나무는 거의 없다. 꽃은 4~5월에 피며, 열매는 구형의 구과로 지름이 3cm 정도 된다.
낙우송은 겉모습이 메타세쿼이아와 닮았지만 잎 배열이 다르다. 메타세쿼이아는 잎이 서로 마주나고 낙우송은 어긋나며 자란다. 메타세쿼이아가 건조한 대지형을 선호하는 반면, 낙우송은 습지형을 선호한다. 이런 차이로 인해 낙우송은 도로변보다는 공원 연못, 호수, 저수지 주변에 자란다.
천 년을 견디는 장수목
낙우송은 장수하는 나무로도 알려져 있다. 북미 지역에서는 2600년 넘게 생존한 개체가 발견됐다. 이처럼 오랜 세월을 버티는 이유는 단단한 조직과 방부성 때문이다. 습기나 벌레에 쉽게 손상되지 않아 건축재와 토목재로 쓰였다. 예전에는 배의 선체나 교량의 기둥을 만드는 데도 이용됐다.
멕시코의 국목인 멕시코낙우송(Taxodium mucronatum)은 낙우송속의 상록성 종으로, 잎이 사계절 푸르다. 세계에서 가장 굵은 나무 ‘아르보 델 툴레(El Árbol del Tule)’가 바로 이 종이다. 줄기 둘레는 40m가 넘고 수령은 수천 년에 달한다. 낙우송속 식물들은 지구의 기후 변화에도 적응해 살아남은 고대 식물로, ‘살아 있는 화석’이라 불린다.
가을 호수를 붉게 물들이는 나무
국내에서도 낙우송은 가을철 풍경을 완성하는 나무로 꼽힌다. 순천만습지, 담양 메타세쿼이아길, 경주 보문호, 양평 두물머리 등은 낙우송 군락으로 유명하다. 특히 호수 위로 비치는 붉은 단풍빛은 여행객들의 발길을 붙잡는다. 사진가들은 물안개가 낀 새벽을 노려 낙우송이 만들어내는 반영을 담는다.
낙우송은 땅이 축축하고 통풍이 잘되는 곳이면 잘 자라지만, 공기뿌리가 도로를 밀어 올릴 수 있어 도심의 가로수로는 부적합하다. 대신 습지 복원, 인공 연못, 하천변 조경 등에는 유용하다. 수질 정화에도 도움을 주고, 뿌리 주변은 곤충과 물새의 서식지다.
가을이 깊어질수록 낙우송의 색은 붉게 타오른다. 물속에서도 꿋꿋이 서 있는 낙우송은 계절의 변화를 품은 채 조용히 물결 위에 그림자를 드리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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