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박물관들 허술한 보안에 잇달아 털려
"영화 같은 절도 사건"…'케이퍼 무비' 소환
'도둑들'·'이탈리안 잡'·'오션스 일레븐'…
최고 '꾼'들 모여 범행 모의…배신·음모 판쳐
(서울=연합뉴스) 서윤호 인턴기자 = ## 금고를 실은 보트가 이탈리아 베니스 한복판에서 경찰과 추격전을 벌인다. 그 사이 잠수복을 입은 도둑들이 물속에서 금고를 해체하고 있다. 보트에 실린 금고는 가짜다. 수중의 도둑들에게 주어진 시간은 7분. 보트가 경찰의 시선을 끄는 사이 수중의 도둑들은 금고를 해체하고 금괴를 훔쳐내는 데 성공한다.(영화 '이탈리안 잡')
## 프랑스 파리의 관광명소 루브르 박물관 한쪽 외벽에 사다리차가 세워진다. 형광 작업복을 입은 2명이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 창문 깨고 아폴론 전시실로 들어간다. 전동 절단 도구로 두 개의 방탄 진열장을 연 이들은 프랑스 왕실 보석을 훔친 후 다른 공범 2명이 끌고 온 전동 스쿠터를 타고 달아났다. 이들이 '임무'를 완수하는 데 걸린 시간은 고작 7분이었다. (19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 루브르 박물관)
2003년 할리우드 영화 '이탈리안 잡'의 '꾼'들이 7분만에 '미션'을 수행하던 모습은 즐겁게 구경만 하면 됐다.
그러나 지난 19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에서 실제로 7분 남짓만에 루브르 박물관이 털리자 프랑스가 발칵 뒤집어졌다. 이번 절도 사건으로 사라진 프랑스 왕실 보석의 가치가 1억 달러(약 1천432억원)를 상회한다는 보도가 나왔다. 100명의 수사인력이 뒤쫓고 있지만 아직 범인의 행방은 묘연하다.
심지어 그게 다가 아니었다. 지난달 16일에는 20대 중국인 여성이 파리 국립자연사박물관에서 6㎏ 상당 금덩이를 훔쳤다. 현지 검찰은 피해 규모가 약 150만 유로(약 24억원)에 달할 것으로 추산하며 해당 여성을 구속 기소했다고 21일 밝혔다.
최근 프랑스에서 잇달아 벌어진 대범한 도난 사건에 세계가 깜짝 놀란 가운데, 난다긴다하는 도둑들이 활개를 치는 '케이퍼 무비'(caper movie)들이 소환되고 있다.
케이퍼 무비란 도둑이나 사기꾼들이 모여 범죄를 모의하고 실행에 옮기는 범죄 장르 영화를 칭한다.
도둑의 시점으로 전개되며 관객이 '도둑이 언제 잡힐지'를 기다리기보다 '도둑이 언제 범죄에 성공할지'를 기대하도록 만드는 것이 특징이다.
각 범죄 분야 최고 기술자들이 모여 불가능해 보이는 계획에 도전하는 내용으로, 거액의 돈·금괴·보석을 노린다.
이번 루브르 박물관 도난 사건처럼 진귀한 보물을 노리는 영화로는 '엔트랩먼트'(1999)와 '도둑들'(2012)이 있다.
캐서린 제타 존스·숀 코너리 주연의 '엔트랩먼트'에서는 주인공들이 80억 달러가 들어 있는 계좌 암호와 교환하기 위해 보석이 박힌 중국의 황금 가면을 훔쳐낸다.
이정재·김혜수·전지현 등이 출연한 '도둑들'에선 홍콩의 카지노가 소유하고 있는 다이아몬드 '태양의 눈물'이 목표다.
이번에 루브르 박물관을 턴 도둑들은 박물관이 개장한 아침에 버젓이 사다리차를 타고 박물관 내부로 침입해 보안 유리 진열장을 깨고 보석을 손에 넣었다. 이들이 남들 앞에서 공개적으로 보석을 훔쳐갈 수 있었던 것은 마치 현장 작업자 같은 복장으로 '자연스럽게'(?) 움직였기 때문이다. 숱한 영화에서 익숙하게 보아온 '수법'이다.
누리꾼들은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박물관이 마치 옛날 영화처럼 속절없이 털린 것에 어이없어했다.
유튜브 이용자 'lll***'은 "사다리를 저렇게 대놓고 세워 도둑질하는데 모르는 게 말이 되냐"며 "프랑스는 은행 털기도 쉬울 것 같다"고 적었다.
"보통 영화에서는 탈출해 도망친 건 연막이고 관람객에 절도범이 섞여있다"(유튜브 이용자 'Dia***')·"영화 제작 예약"(네이버 이용자 'ban***') 등 영화와 이번 사건을 견주는 댓글도 있었다.
파리 국립자연사박물관의 금 도난 사건을 두고도 박물관 보안 수준이 형편없다는 반응이 이어졌다.
감식 결과 박물관 문 2개가 절단기로 잘려지고 금덩이가 전시된 진열장 유리는 용접기로 파괴돼 있었다. 현장 주변에선 절단기와 드라이버, 용접기 연료용 가스통 3개, 톱 등이 발견됐다.
네이버 이용자 'hyo***'는 "침투하는 것도 모르고 3시간 동안 작업하는 소음도 나몰라라 했냐"며 "CCTV를 통한 감시도 안 하는 것 같다"고 썼다.
프랑스 박물관 절도 사건들이 보안 허술 탓에 벌어진 것과 달리 케이퍼 무비의 시나리오는 점점 복잡해진다.
보안 기술이 첨단화되고 전문 지식이 필요해질수록 기술자의 종류도 다양해진다. 보안 시스템을 무력화하기 위한 해킹 기술자, 침투에 능한 잠입 기술자, 금고를 열 수 있는 기술자는 기본. 여기다 작전을 총괄하는 인물과 운전수 등이 추가된다.
조지 클루니·브래드 피트 등 호화 출연진을 자랑하는 '오션스 일레븐'(2001)에서는 11명, '도둑들'에서는 10명, 박신양 주연 '범죄의 재구성'(2004)에서는 5명의 각 분야 전문 '꾼'들이 뭉친다.
케이퍼 무비에서는 아슬아슬한 묘기도 빠지지 않는다.
'엔트랩먼트'에서는 베이커(제타 존스)가 박물관에서 가면을 훔쳐 나오기 위해 촘촘한 보안 레이저 선을 절묘하게 피해 움직이는 서커스 같은 묘기를 펼친다.
범죄 영화는 아니지만, 쫓기는 와중에 불가능한 임무를 수행해야 한다는 점은 같은 '미션 임파서블' 시리즈에서도 온갖 묘기가 나온다. 특히 1편(1996)의 와이어 침투 신은 아날로그 묘기 중의 묘기다. 미국 중앙정보국(CIA) 본부 컴퓨터실에서 정보를 빼내야 하는 상황에 몰린 헌트(톰 크루즈)는 와이어에 의지한 채 천정에서 컴퓨터실로 침투하는 미션을 감행한다. 비밀번호·음성인식·망막스캔 등 온갖 신분 증명 절차를 거쳐야 들어갈 수 있는 곳이기 때문.
또 '이탈리안 잡'의 대표적 장면으로는 미니 쿠퍼의 현란한 도심 도주신이 꼽힌다. 좁은 골목과 계단은 물론이고 지하철 터널과 지하 하수도까지 생쥐처럼 요리조리 질주하는 기막힌 자동차 액션이 펼쳐진다.
그런가 하면 '캐치 미 이프 유 캔'(2003)의 프랭크(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는 능수능란한 화술과 타고난 두뇌로 기자·파일럿·의사·변호사로 자유자재 '둔갑'하며 사기 행각을 펼친다.
사랑, 배신, 복수도 버무려진다.
'이탈리안 잡'의 찰리(마크 월버그)는 같이 훔친 금괴를 혼자 빼돌린 스티브(에드워드 노턴)에게 복수하기 위해 그의 금괴를 다시 훔치기로 한다.
'타짜'(2006)의 고니(조승우)도 처음에는 자신이 누나에게서 훔쳤던 돈을 갚기 위해 도박 기술을 배우지만, 이후 스승 평경장(백윤식)을 죽인 것으로 추정되는 아귀(김윤석)에게 복수하기 위해 도박을 이어 나간다.
'오션스 일레븐'에서 동료를 모으는 오션(조지 클루니)의 목적은 돈뿐만 아니라, 돈이 있는 카지노를 경영하는 전처 테스(줄리아 로버츠)의 마음을 돌리는 데도 있다.
또 최고 범죄 전문가들이 모여 최선의 계획을 짜지만 한번씩은 상황이 틀어지기 마련이며 '플랜 B'가 가동된다. '꾼'들은 서로를 믿지 못한다.
'도둑들'에서는 마침내 열어젖힌 금고가 비어 있었고, '범죄의 재구성'에서는 난공불락 한국은행에서 50억원을 터는 데 성공하지만 돈이 사라지고 만다.
케이퍼 무비 결말은 대체로 '팝콘 영화'답게 경쾌하게 마무리된다.
루브르 박물관 절도 사건은 어떻게 마무리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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