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뉴스투데이 김진영 기자] 캄보디아 등 동남아 지역에서 ‘고수익 아르바이트’를 내세운 해외취업 사기에 속은 한국 청년 피해가 잇따르고 있다. 하지만 주요 플랫폼들이 정부와 협력해 자율 규제와 AI 기반 필터링을 강화하는 등 대응 체계를 고도화하고 있는 만큼 이번 사태의 본질을 채용(HR) 플랫폼의 관리 부실로만 단정하기는 어렵다는 평가가 나온다. 다만 규제의 손이 미치지 않는 커뮤니티나 SNS 등 비공식 구인 경로가 새로운 범죄 통로로 부상하고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김건 국민의힘 의원실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캄보디아에서 접수된 한국인 대상 취업사기 신고는 226건으로 이미 지난해 전체(220건)를 넘어섰다. 정부의 단속 강화에도 피해가 급증하고 있다는 점에서 불법 구인 네트워크가 제도권 밖으로 빠르게 이동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현행 ‘직업안정법 제34조’는 거짓 구인광고를 금지하고 있으나, 적용 대상이 ‘직업소개사업자’로 한정돼 있다. 이로 인해 일반 채용포털은 규제의 직접 대상에서 제외, 행정기관이 개입할 법적 근거도 미비하다. ‘정보통신망법 제44조의7’ 역시 명백한 불법성이 입증된 경우에만 차단을 허용하고 있어 모호한 해외취업 공고나 과장 광고는 사실상 제재가 어렵다는 지적이다.
이 같은 제도적 공백 속에서 불법 구인 글은 빠르게 음지로 확산되고 있다. 정부의 단속이 강화되자 범죄조직은 텔레그램·엑스(구 트위터)·교민 커뮤니티·디시인사이드 등 비공식 채널로 이동했다. 채용 공고가 차단되면 곧바로 ‘생활형 아르바이트’, ‘여행 동행’, ‘사진 촬영 알바’ 등으로 위장해 재등장하는 식이다. 모니터링 사각이 되풀이되는 가운데 단속 효과가 체감되지 않는 상황이다.
특히 인스타그램에서는 ‘단기 고수익’, ‘동남아 출장’, ‘촬영 아르바이트’ 등의 해시태그를 활용해 노출을 유도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당근 커뮤니티 지역 게시판에도 여행 동행을 빌미로 한 접촉 글이 반복적으로 올라오며 유사 수법이 확산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채용 목적이 아닌 커뮤니티형 SNS로 범위가 옮겨가면서 기존 구인·구직 감시 체계의 한계가 드러나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에 인스타그램 측은 “커뮤니티 가이드라인에 따라 사기성 구인 광고는 플랫폼 내에서 허용되지 않는다”며 “AI 기반 자동화 도구와 인적 검토를 통해 위반 계정과 광고를 삭제하거나 정지 조치하고 있다”고 밝혔다. 메타는 지난해 ‘스캠 센터’와 연관된 계정 200만개 이상을 삭제, 정부·민간 부문과 협력해 악의적 사기 행위 차단을 위한 정보 공유와 대응을 이어가고 있다.
당근 관계자 역시 “당근알바뿐 아니라 커뮤니티 영역에서도 여행 동행 관련 게시글에 대한 모니터링과 필터링을 강화해 실시간 미노출 조치를 시행 중”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이번 사건 관련 주의 안내나 피해 방지 공지가 게시될 수도 있어, 모든 키워드를 일괄 차단하기보다는 모니터링을 통해 범죄 유발 가능성이 있는 게시글을 선별적으로 차단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정부도 뒤늦게 대응에 나섰다. 고용노동부는 지난 22일 ‘안전한 채용환경 조성을 위한 채용플랫폼 간담회’를 열고 허위 구인 공고 근절 방안을 논의했다. ‘고수익 보장’, ‘숙식 제공’ 등 특정 문구를 자동 차단하는 AI 필터링과 이미지 기반 탐지 기술을 민간 자율규약 형태로 확산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HR 플랫폼들은 이미 선제 조치에 들어갔다. 잡코리아는 6월부터 해외 근무지 공고에 주의 문구를 자동 노출하고, 9월부터 캄보디아 등 일부 국가는 사전 검수·승인 절차를 의무화했다. 사람인은 기업회원 등록 시 3개월 이내 사업자등록증명원 제출을 요구, 해외 근무지 공고에는 근로조건 명시를 의무화했다. 또 AI 기반 모니터링과 24시간 검수 체계를 운영해 불량 공고를 실시간 차단하고 있다.
알바몬은 구직자 피해 방지를 위해 허위 공고 검증 절차를 강화하고, 채용 내용과 실제 근무조건이 다를 경우 해당 게시물을 즉시 마감·제재하는 시스템을 운용 중이다. 알바천국은 해외취업 공고 등록 시 국외유료직업소개사업등록증 제출을 의무화, 서류가 없는 공고는 등록 자체가 불가능하다. 당근알바도 지난 8월부터 해외취업 관련 게시글을 전면 금지하고 있다.
서울경찰청도 대응에 착수했다. 해외 체류 한국인 대상 납치·감금 사건에 대응하기 위해 44명 규모의 전담 태스크포스(TF)를 꾸리고, 사이버수사대를 투입해 단순 게시물 삭제를 넘어 계좌·IP 추적 등 본격 수사에 착수했다. 경찰은 “불법 구인광고임을 인지하고도 게시한 운영자에 대해서는 방조 혐의 적용이 가능하다”고 전했다.
하지만 현장에서는 단속만으로는 한계가 명확하다는 관측도 나온다. 청년층 고용 불안이 장기화하며 구조적 압박이 누적된 결과라는 것이다. 실제로 지난달 청년층(15~29세) 고용률은 45.1%로 17개월 연속 하락했고, 신규채용 비중도 26.6%로 역대 최저를 기록했다. 전문가들은 이번 사태를 “단순 범죄가 아니라 일자리 절벽 속에서 청년들이 내몰린 구조적 현실의 단면”으로 해석한다.
실제 취업난이 장기화되면서 불법 구인광고가 해외 교민 사회와 온라인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확산하고 있다. 중국 교민 커뮤니티에는 ‘해외 TM 직원 모집’, ‘태국 채팅 아르바이트’ 등 글이 하루 수십 건씩 올라오며 “캄보디아는 안전하다”, “빚을 정리하고 새출발하라”는 문구로 청년층과 교민을 현혹하고 있다.
이 같은 수법은 일본·미국·베트남 등 교민 사이트로 번지며 국내 디시인사이드 ‘징역 갤러리’ 등에서도 새벽 시간대를 노린 불법 게시물이 올라오고 있다. 텔레그램과 엑스 등 해외 기반 플랫폼은 단속의 사각지대로 수천 명이 참여한 단체방에서 “출국 가능한 명의자 구함” 등 불법 거래 글이 공개적으로 유통. 계정이 차단돼도 곧바로 새로운 계정이 생성돼 근본적 차단이 어려운 구조다.
김광석 한국경제산업연구원 경제연구실장은 “정부의 규제가 공식 플랫폼에 머무는 한, 커뮤니티·SNS를 통한 범죄 유입은 막기 어렵다”며 “청년을 쉬게 하는 지원보다 실제 취업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만종 호원대 법경찰학과 교수는 “채용 단계부터 범죄 네트워크가 움직였지만 정부 대응이 늦어 구인 광고가 이미 음지로 퍼졌다”며 “인신매매가 의심되는 구인 글은 자동 필터링과 즉시 차단이 이뤄지는 해외 사례처럼 선제 대응 체계를 구축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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