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부동산 시장 과열을 진정시키기 위한 고강도 대책을 연달아 내놓은 가운데, 한국은행이 23일 기준금리를 현 수준(연 2.50%)에서 동결했다. 시장 일각에서 경기 둔화를 이유로 추가 인하 가능성을 점쳤지만, 한은은 부동산 과열과 환율 불안 등 복합 리스크를 고려해 '신중 모드'를 택했다.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는 23일 통화정책방향 회의에서 기준금리를 연 2.50%로 유지하기로 결정했다. 지난 6·27, 9·7, 10·15 부동산 대책에도 서울 아파트값 상승세가 이어지는 상황에서 추가 금리 인하는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아 집을 사는)' 수요를 자극해 시장 불안을 키울 수 있다는 판단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10월 둘째 주(13일 기준) 서울 아파트값은 2주 전보다 0.54% 올라 상승 폭이 확대됐다. 정부는 이에 서울 전역과 경기 12개 지역을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묶고, 15억 원 초과 아파트의 주택담보대출 한도를 2억~4억 원으로 낮추는 등 '10·15 대책'을 내놓은 상태다.
환율 불안도 한은의 금리 동결 배경으로 꼽힌다. 최근 원·달러 환율은 1,430원대를 오르내리며 불안정한 흐름을 이어가고 있다. 금리를 인하할 경우 원화 가치가 더 떨어져 환율 상승세가 굳어질 위험이 커지는 만큼, 통화당국이 섣불리 완화 기조를 강화하기 어렵다는 분석이다.
앞서 한은은 지난해 10월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인하하며 통화정책 방향을 완화 쪽으로 돌렸고, 이후 두 달 연속 금리를 내리며 경기 부양 기조를 이어왔다. 올해 들어서도 상반기 두 차례(2월, 5월) 추가 인하를 단행했으나, 하반기 들어 7·8·10월 세 차례 연속 동결을 선택했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지난 20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국정감사에서 "한은 입장에서는 유동성을 더 늘려 부동산 시장에 불을 지피는 역할을 하지 않으려 한다"고 밝히며 사실상 금리 동결 기조를 예고한 바 있다.
시장에서는 이번 결정이 '부동산 안정 우선, 경기부양 후순위'라는 한은의 입장을 재확인한 것으로 보고 있다. 한 시중은행 이코노미스트는 "정부의 부동산 규제 정책과 보조를 맞추면서, 환율 방어를 고려한 신중한 선택"이라며 "당분간 금리 인하 압박은 완화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한편 최근 반도체를 중심으로 한 수출 호조와 증시 상승에 따른 소비심리 회복, 내년 성장률 개선 기대 등도 금리 인하 명분을 약화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전문가들은 "부동산과 환율 불안이 진정되지 않는 한, 한국은행이 다음 달에도 금리를 내릴 가능성은 낮다"고 내다봤다.
[폴리뉴스 김지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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