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6월 22일 / 케이프타운 시내. 렌터카 Hertz 오피스 / 쓸쓸하고 쌀쌀한 초겨울
케이프타운에 도착해서 묵은 우리의 첫 숙소는 에어비앤비. 시내 근처 조용한 골목에 단독주택과 멀끔한 빌라가 줄지어 있었고, 그중 여러 집이 숙소로 나와 있었다. 평창동 같은 아주 높은 담장의 부촌은 아니지만 큰길 뒤편으로 들어가면 작은 정원과 낮은 대문이 있는 번듯한 집들이 이어진다.
세컨하우스로 돌리는 집이 많은 동네인가? Steven’s house인데 상세 주소가 안 나와서 간판이 있나 싶어 골목을 몇 번 돌다가, 마침 지나가는 사람이 있어 반신반의하며 “스티븐네 집을 아세요?” 하니까 바로 이 집이라며 손가락으로 가리켜준다. 이상하다. 스티븐이 특이한 이름인가? 동네 사람이 어떻게 알지?
에어비앤비 독채는 10만원, 호스텔은 1인 2만원 정도. 우리는 네명. 가격이 비슷하니 자유여행 온 기분 내자며 처음 며칠은 에어비앤비에서 묵었다. 첫날은 근처 마트에서 소고기와 와인을 사 와 넓은 거실에 짐을 풀고, 소파에 기대 그간의 삶을 서로 속성으로 풀었다.
주방에서 죄다 꺼낸 유럽식 식기구들이 식탁에서 반짝였다. 다락 식 2층엔 대각선 창이 있어 누우면 밤하늘이 보였고, 1층 안방에는 바깥으로 불쑥 튀어나온 통유리 샤워실이 있었다. 이 집 주인은 달빛 샤워를 좋아하나 봐.
3일째는 호스텔이 4명에 600랜드라서 싸다 싸다 하면서 왔는데 밤새 너무 추워서 승모근을 잔뜩 세우고 잤다. 내가 여행 준비하느라 신경을 못써 내심 미안해하던 사람들이 꿈에 나와 나를 외면해서 잘못했다고 엉엉 울다가 깼는데, 꿈에 나왔던 미국에 있는 친구에게 좋은 소식이 와 있었다. 임신했다는! 우리 통한 거야, 신기해라!
아침엔 성욱이가 렌터카 키를 트렁크에 꽂아둔 채로 부러뜨려서 차를 바꾸러 시내 사무실로 갔다. 남아공 와서 하루에 한 번씩 뭔가를 부수는 파괴왕 성욱이. 나간 김에 나미비아 대사관에 들러 비자 신청도 했다. 증명사진이 없는 친구들은 내가 정연이에게 받은 포켓포토로 급히 뽑았다. 네 명분 서류를 바리바리 챙겨 제출하고, 시내를 걸었다.
2017년 6월 22일 / 케이프타운 도심 / 5시면 해가 지는 겨울
케이프타운 도심은 우리나라 여의도처럼 높게 솟은 건물들이 줄 맞춰 서 있는데도 1층에는 모든 가게가 저마다 철장을 걸어 잠갔다. 한국처럼 노래를 크게 틀어서 눈길을 잡기도, 문을 활짝 열어 호객하지도 않는다. 간판이 화려하지도 번쩍번쩍하는 네온사인도 없다.
“정말 용건이 있는 사람만 오세요. 벨을 누르면 직원이 문 열고 철장 열어서 들여보내 줄 거예요.” 유리로 뒤덮인 번쩍번쩍한 건물, 각종 글로벌 브랜드 간판을 꼭대기에 붙인 화려한 건물들인데 드나드는 이가 없다. 겨울이라 바람이 세찬 이유도 있지만 어떻게 이렇게 행인이 없지? 다 건물 안에 틀어박혔나?
크고 웅장한 거리를 지키는 건 허름한 차림의 사람들 몫이다. 쓰레기 수거 차를 타고 쓰레기통을 옮기는 사람들, 쓰레기통이 수거된 자리를 정리하는 노숙자, 건물 앞에서 수레에 과일을 파는 이, 주차 요원, 주차 요원인 척하면서 돈 뜯어 간 놈. 사람들은 앞니가 곧잘 빠져있고 빛바랜 외투를 입은 채 도심 아스팔트와 건물을 따라 회색빛이다. 찬 바람에 잔뜩 웅크리느라 고개를 치켜들어서 그런지 더 날카로워 보인다.
5시면 해가 지기 시작해서 6시면 아주 깜깜해진다. 어둑어둑해지면 불안해져서 “얘들아, 오늘 맥주 먹을 거면 지금 차 타고 나가서 사 오자” 할 정도. 일반 마트나 편의점에는 와인만 팔고 맥주를 안 팔아서, 리커숍(술 가게)을 가느라 마트를 늘 두 번 갔다. 그래도 상점 직원들은 친절하다. Thank you라고 하면 여기 사람들은 이렇게 말한다.
My pleasure, my pleasure.
여성경제신문 윤마디 일러스트레이터 madimadi-e@naver.com
*국가 : 남아프리카공화국
아프리카 대륙 최남단의 다인종 민주공화국으로, 광물·제조·농업·관광이 경제의 축이다.
행정 수도가 기능별로 나뉜다: 프리토리아(행정)·케이프타운(입법)·블룸폰테인(사법).
2022년 총인구는 약 6200만명.
*도시 : 케이프타운
남아공 서남단 케이프 반도와 테이블만(Table Bay) 일대를 포함하는 도시이자 서케이프주(웨스턴케이프)의 주도, 남아공의 입법 수도다.
테이블마운틴과 해안선이 만드는 지형으로 유명하다.
면적: 약 2446~2461km² : 제주도의 약 1.3배
인구: 약 477만명(2022) — 서울의 절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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