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신문 김효인 기자】 전기차 사고가 증가하면서 보험금 지급을 둘러싼 소비자와 보험사 간 갈등이 새로운 분쟁 양상으로 번지고 있다. 전기차 배터리 손상이 발생한 사고에서 제조사가 ‘전면 교체가 필요하다’고 판단했음에도, 보험사가 이를 거부하고 소비자에게 부분수리를 강요한 사례가 잇따르면서다.
결과적으로 소비자는 배터리를 새로 교체하면 수천만원에 달하는 비용 부담과 함께 보험금 포기를 감수해야 하고, 부분 수리를 택하면 차량 보증이 상실되는 ‘이도 저도 못하는 선택’을 강요받고 있다.
23일 본지 취재에 따르면, 최근 삼성화재 전기차 보험 가입자들의 배터리 전체 교체 거부 사례가 잇따라 확인됐다. 대부분 사고는 차량 하부에 가해진 충격으로 배터리팩 손상이 우려되는 상황에서 발생했다.
실제 현대자동차 전기트럭을 운전하던 A씨는 지난 봄 차량 하부 충격으로 일부 배터리가 손상되자 제조사 서비스센터에서 전체 교체를 권고받았지만, 삼성화재는 자체 기술센터 판단을 근거로 부분 수리만 인정했다.
또 다른 사례에서도 차량 하부 충격으로 배터리가 손상되자 제조사는 교체를 권고했으나, 보험사는 전면 교체 시 보험금을 지급할 수 없다는 입장을 전달했다.
소비자, 보험금과 보증 사이 ‘딜레마’
이런 경우 소비자가 선택할 수 있는 길은 제한적이다. 제조사 판단에 따라 신품 배터리로 교체하면 보험금은 포기해야 하고, 보험사 지침에 따라 부분 수리를 받으면 향후 8년, 또는 12만km까지 보장되는 배터리 보증권은 상실된다.
현재 자동차보험 약관에는 ‘사고 이전 상태로의 복구’라는 원칙만 명시돼 있을 뿐, 전기차 배터리처럼 보증·안전·잔존 가치가 동시에 걸린 핵심 부품에 대한 명확한 기준은 없는 실정이다.이처럼 보험사·제조사·소비자 사이에서 기준이 모호하다 보니, 분쟁이 민원으로 번지는 사례도 발생하고 있다.
보험업계에서는 제대로 된 기준이 없는 상황에서 무조건 배터리 전면교체가 이뤄진다면 결국 과잉수리와 보험료 인상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한다.
한 보험사 관계자는 “충분히 모듈 단위로 고칠 수 있는 경미한 상황에서도 전체 교체를 요구한다면 이는 명백한 과잉수리”라며 “배터리 가격이 수천만원에 달하는 고가 부품인 만큼, 전체 교체 요구가 보험료 상승으로 이어지면 소비자 부담으로 직결될 수 있다”고 말했다.
안전과 비용…책임 논리 엇갈려
반면 제조사들은 배터리가 사고 충격·침수·열 손상에 민감한 고위험 부품으로, 일부 손상만으로는 안전을 담보할 수 없다고 강조한다. 실제 현대차·기아 등 완성차 업체는 배터리 하부가 사고나 침수로 충격을 받으면 배터리 팩 전체 교체를 권고한다. 모듈이나 셀만 교체할 경우 내부 전압 불균형, 열폭주 가능성 등을 제조사가 보증할 수 없기 때문이다.
실제 일부 배터리 손상 상태로 운행하다 사고가 발생할 경우에 대한 책임론도 민감하다. 화재 발생 시 진압이 어렵고 주변 차량·건물 피해나 인명 사고로 이어질 위험도 높기 때문이다.
정비 전문가는 “손상된 배터리를 부분수리 후 운행하다 화재가 난다면 그에 대한 책임 소재가 불분명할 수 있다”며 “보험사는 비용 효율성을, 제조사는 안전과 품질 보장을 우선해야 하므로 판단 기준이 서로 달라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정비 기술·인력이 전기차 보급 수준을 따라오지 못하고 있다는 점도 문제다. 현재 전국 4만5000개 정비업소 중 전기차 배터리를 모듈 단위로 진단하고 교체할 수 있는 곳은 거의 없는 실정이다.
대림대 김필수 미래자동차학부 교수는 “제조사는 책임 문제로 배터리 전체 교체를 고집하고, 보험사는 모듈 단위 수리로 충분하다고 주장하면서 양측 논리가 충돌하고 있다”며 “전기차는 아직 완전한 제품으로 자리 잡지 못했고, 안전 기준과 수리 체계도 충분히 마련되지 않아, 부분 수리만으로는 문제가 없다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이어 “국가 차원의 명확한 수리 기준 마련, 배터리 안전 검증 체계 구축, 보험 처리 원칙 정비 등 제도적 장치가 시급하다”며 “전기차 보급 확대 속에서 제도가 선제적으로 정비되지 않으면 소비자와 산업계 모두 큰 혼란을 겪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한편 삼성화재 관계자는 “차량 배터리에 대한 부분 수리가 가능하다는 판단 하에 안내했으나, 현재 해당 건에 대한 민원은 모두 해결된 상태”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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