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님의발자취38] 자연의 근본 '좌우 대칭'을 깬 '좌우 비대칭성'을 발견한 양전닝(103) 타개

실시간 키워드

2022.08.01 00:00 기준

[님의발자취38] 자연의 근본 '좌우 대칭'을 깬 '좌우 비대칭성'을 발견한 양전닝(103) 타개

저스트 이코노믹스 2025-10-23 09:55:00 신고

3줄요약
패러디 삽화=최로엡 화백
패러디 삽화=최로엡 화백

  20세기 물리학의 가장 영향력 있는 거목 중 한 명인 양전닝(Chen Ning Yang·楊振寧) 교수가 103세의 나이로 최근 영면했다. 그의 서거는 단순한 한 세대의 종언을 넘어, 미시 세계의 근본 법칙을 재정립하고 통일장론의 씨앗을 뿌린 지적 혁명의 한 장이 닫혔음을 의미한다. 양 교수는 중국 출신 최초의 노벨 물리학상 수상이라는 상징적 성취뿐 아니라, 오늘날 입자 물리학의 성공적인 틀인 표준 모형을 지탱하는 수학적 언어를 창조하며 , 인류의 과학적 지평을 영구적으로 확장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자연의 근본'으로 믿던 대칭성을 깨다

 좌우 비대칭성의 발견 (P-Violation)

 양전닝 교수의 생애 중 대중적으로 가장 잘 알려진 업적은 동료 이론 물리학자 리정다오(Tsung-Dao Lee·2024년 작고)와 함께 1957년 노벨 물리학상을 공동 수상하게 한 패리티(Parity, P) 비보존 이론이다. 당시 35세였던 양 교수는 이 업적으로 최연소 수상자 중 한 명이 됐다.   

 오랫동안 물리학자들은 모든 물리 법칙이 공간 반전, 즉 거울상에 대해 불변해야 한다는 패리티 보존을 절대적인 진리로 믿었다. 이는 '거울 세계'에서도 물리 법칙이 동일해야 한다는 의미였다. 

그러나 1950년대 초, K 중간자(Kaon)의 붕괴 과정에서 관찰된 τ−θ 역설은 이 신성불가침의 원칙에 의문을 제기했다. 양전닝-리정다오는 1956년 이 역설을 해결하기 위해, 모든 상호작용이 아닌 약한 상호작용(Weak Interaction)에 한해서만 패리티 보존의 법칙이 위반될 수 있다는 혁명적인 가설을 제시했다.  이는 단순한 가설이 아닌, 입자의 스핀(각운동량)과 운동량 방향 사이에 비대칭성이 존재함을 실험적으로 입증할 구체적인 방법을 담고 있었다.

우젠슝 실험으로 입증: '거울 세계'의 종말

 양전닝-리정다오 이론은 중국계 미국인 물리학자 우젠슝(Chien-Shiung Wu) 박사 팀에 의해 즉시 실행에 옮겨졌고, 그 결과는 물리학계에 충격을 안겼다.

 우젠슝 팀은 극저온(약 0.01 K)에서 강력한 자기장을 이용해 코발트-60(Co60) 핵의 스핀 방향을 정렬시킨 후, 이 핵들이 베타 붕괴를 일으키며 방출하는 전자의 계수율을 측정했다. 실험 결과, 전자는 핵의 스핀 방향과 반대 방향으로 더 많이 방출되는 명확한 비대칭성을 보였다 .  

 이 비대칭성은 '약한 상호작용'이 패리티 보존을 위반한다는 결정적인 증거였으며 , 인류는 자연 현상을 통해 왼쪽과 오른쪽, 즉 실제 세계와 거울상 세계를 운영적으로(operationally) 구별할 수 있게 됐다 . 패리티 불변성의 붕괴는 기존의 이론적 매개변수를 두 배로 증가시켰으며 , 시간 반전 불변성(T-invariance) 등 다른 근본 대칭 법칙에 대한 재검토를 촉발하며 '입자 물리학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특히 양전닝 교수의 지적 유산 중 전문가들이 궁극적으로 가장 중요하다고 평가하는 것은 1954년 로버트 밀스와 함께 제안한 양-밀스 게이지 이론(Yang–Mills Theory)이다.

 양-밀스 이론은 기존 전자기학의 아벨리안(교환 가능한) 게이지 대칭을 뛰어넘어, 비가환(Non-Abelian, 비교환) 게이지 대칭을 기반으로 하는 새로운 수학적 언어를 구축했다 . 이는 아인슈타인의 일반 상대성 이론과 유사하게, 국소적 대칭성(Local Symmetry)이 물리적 동역학, 즉 힘을 결정한다는 심오한 원리를 미시 세계에 적용한 것이다.  

양-밀스 이론은 수학적 우아함에도 불구하고, 초기에는 질량을 가져야 하는 매개 입자(게이지 보존)에 대한 물리적 설명이 부족했기 때문에 약 20년간 '잠복기'를 거쳐야만 했다. 

 마침내 1970년대 들어 자발적 대칭성 깨짐 개념이 도입되면서 상황이 바뀌었다. 이 메커니즘은 게이지 보존에게 질량을 부여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었고, 양-밀스 이론은 비로소 현실 세계의 기본 힘을 기술하는 핵심 언어로 채택됐다. 

 오늘날 표준 모형(Standard Model)은 양-밀스 이론 위에 세워져 있다 

  1. 전기약력: SU(2)×U(1) 게이지 군을 기반으로 전자기력과 약력을 통일적으로 설명한다 .

  2. 양자색역학(QCD): 강력(Strong Force)을 설명하는 SU(3) 게이지 군은 양-밀스 이론의 한 형태다 .

미해결의 과제: 질량 간극 문제

 양-밀스 이론은 여전히 21세기 과학의 핵심 난제를 안고 있다. 바로 질량 간극(Mass Gap) 문제다.  

 이론이 강력 상호작용을 올바르게 기술하려면, 양자 입자들이 양의 질량을 가져야 한다는 속성이 존재해야 한다. 이는 실험적으로는 확인되었지만 , 이 질량 간극이 이론적으로 왜 발생하는지에 대한 엄밀한 수학적 증명은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 '양-밀스 존재 및 질량 간극 문제'는 클레이 수학 연구소(CMI)가 지정한 7대 밀레니엄 현상 문제 중 하나로, 물리학과 수학 모두에서 근본적인 새로운 아이디어를 요구하고 있다.   

철학적 귀결: 다시 중국 국적 회복

 양전닝 교수는 위대한 과학적 발견자였을 뿐만 아니라, 그의 발언과 삶의 선택을 통해 복잡한 문화적 정체성을 고민한 사상가였다.  양전닝 교수의 가장 유명한 발언은 1957년 노벨상 수상 연설에서 나왔다. 그는 자신을 "중국 문화와 서양 문화, 그 조화와 갈등 속에서 태어난 산물"이라고 규정했다.  

그는 또 "나는 나의 중국 유산과 배경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며, 동시에 인간 문명의 서양 기원인 현대 과학에 헌신하고 있음을 말하고 싶다"고 밝혔다. 이 발언은 20세기 초 서구 문명의 팽창과 이에 대응하려 했던 중국 근대 지식인의 내적 고뇌를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그는 연설에서 1900년 의화단 사건(Boxer War)을 언급하며, 서구 문화와의 충돌이 자신의 개인적 삶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고 설명했다.  의화단 사건이란 1899년~1901년 사이에 일어난 중국의 대규모 반외세,반기독교 민란이다.

 1964년 미국 시민권을 취득했던 , 양전닝 교수는 2015년 이례적으로 미국 시민권을 포기하고 중화인민공화국 국적을 취득하며 중국으로 돌아갔다. 이 결정은 그의 생애 후반부에서 가장 큰 상징적 행위였다.   

그는 2017년 인터뷰에서 1964년 미국 귀화가 "오랫동안 고려한 매우 고통스러운 결정"이었다고 회고하며, 아버지가 돌아가실 때까지 자신의 중국 시민권 포기를 용서하지 않았다는 고통스러운 사실을 밝혔다. 이 깊은 개인적 상처는 그의 삶을 관통하는 짐이었다.  

2015년 국적 회복에 대해 그는 "나의 늦은 아버지의 피가 내 혈관에 흐르고, 중국 문화가 내 혈관에 흐른다"고 설명하며 , 이는 단순한 거주지 선택을 넘어, 문화적 정체성을 복원하고 가족적 화해를 이루려는 깊은 철학적 귀결이었음을 시사한다. 

 양전닝 교수는 자신의 연구 전반에 걸쳐 '수학적 우아함'을 추구하는 철학을 견지했다. 그는 "자연은 대칭성 법칙의 단순한 수학적 표현을 활용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하며 , 대칭성과 군론(Group Theory)이 물리학에서 필수적인 역할을 한다는 믿음을 강조했다.  이러한 수학적 깊이는 그가 남긴 다른 기념비적인 업적, 즉 통계역학의 근간을 이룬 리정다오-양전닝 정리(Lee–Yang Theory) 와 2차원 가해계(Integrable Models)에서 중요한 양전닝-백스터 방정식(Yang–Baxter Equation) 에도 고스란히 반영되어 있다.  

양전닝-리정다오 관계 파탄 눈길

 한편 양 교수의 삶은 개인적인 차원에서도 많은 화제를 낳았다. 양전닝과 리정다오의 협력은 패리티 비보존이라는 기념비적인 성과를 낳았지만, 노벨상 수상 이후 연구 기여도 및 명예를 둘러싼 논란으로 인해 두 천재 과학자의 관계는 냉각됐고, 이는 학계의 유명한 역사적 파탄으로 남아 있다.  

 양전닝 교수는 첫 부인 사망 후인 2004년, 82세의 나이에 당시 28세였던 대학원생 웡판(Weng Fan)과 재혼하며 중국 사회 안팎에서 큰 논란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이는 한 시대의 지적 거장이 공인으로서 겪어야 했던 사생활 침해와 대중적 관심의 경계를 보여주는 에피소드이기도 하다. 

 '미완의 대칭성'으로 남아 

양전닝 교수의 지적 유산은 두 개의 봉우리로 요약된다. 하나는 인류의 우주 이해를 영원히 바꾼 패리티 비보존의 실험적 혁명이며, 다른 하나는 21세기 물리학에 여전히 미해결 난제를 던지고 있는 양-밀스 게이지 이론의 수학적 영속성이다.  그의 생애는 과학적 진보의 최전선에서 서구 문명의 도구를 사용하면서도, 궁극적으로 자신의 문화적 뿌리에 충실하고자 했던 현대 중국 지식인의 가장 완벽하면서도 가장 고통스러운 초상화로 남을 것이다. 양전닝 교수가 추구했던 대칭성의 원리처럼, 그의 삶 또한 동서양 문명과 과학, 그리고 철학적 정체성 사이에서 균형을 찾아 헤맨 하나의 거대한 궤적이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 

 

 

Copyright ⓒ 저스트 이코노믹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본 콘텐츠는 뉴스픽 파트너스에서 공유된 콘텐츠입니다.

다음 내용이 궁금하다면?
광고 보고 계속 읽기
원치 않을 경우 뒤로가기를 눌러주세요

실시간 키워드

  1. -
  2. -
  3. -
  4. -
  5. -
  6. -
  7. -
  8. -
  9. -
  10. -

0000.00.00 00:00 기준

이 시각 주요뉴스

알림 문구가 한줄로 들어가는 영역입니다

신고하기

작성 아이디가 들어갑니다

내용 내용이 최대 두 줄로 노출됩니다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이 이야기를
공유하세요

이 콘텐츠를 공유하세요.

콘텐츠 공유하고 수익 받는 방법이 궁금하다면👋>
주소가 복사되었습니다.
유튜브로 이동하여 공유해 주세요.
유튜브 활용 방법 알아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