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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일 이데일리 취재를 종합하면 경기 성남에서 가족으로부터 ‘캄보디아에 간 뒤 연락이 끊겼다’며 실종 신고된 김모(26)씨는 통장을 넘기고 대금을 받기 위해 지난 6일 출국했다. 김씨의 마지막 위치는 캄보디아 포이펫 지역인 것으로 알려졌다.
김씨는 당초 통장을 조직에게 넘긴 뒤 현지에서 선금 500만원을 받고 통장을 범죄에 활용할 수 있는지 테스트를 거친 뒤 500만원을 더 받기로 약속한 것으로 파악됐다. 하지만 김씨는 한국과 연락이 끊겼고 조직으로 추정되는 이는 가족에게 전화를 걸어 “(김씨가) 납치됐으니 2만 테더(USDT·한화 약 3000만원)을 보내라”고 협박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씨처럼 대포통장을 넘긴 뒤 대금을 받기 위해 캄보디아에 갔다가 납치되는 한국인이 급증하고 있다. 대포통장은 1개 당 2500만~3000만원 선에서 거래되고 있다. 대포통장과 계좌는 범죄 조직이 가장 구하기 어려워하는 범죄 필수품이다. 통장은 돈을 세탁하는 데 필요한데, 국내에서 보이스피싱 피해가 늘며 금융기관의 계좌 개설 절차가 까다로워졌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최근 몇 년 새 100만~200만원 선이던 대포통장 가격이 수천만원대로 뛰었다는 게 현지 사정을 잘 아는 이들의 설명이다.
문제는 이른바 ‘장’(통장을 뜻하는 은어)을 ‘장집(통장을 구하는 사람)’에게 넘기는 과정에서 예상치 못한 일이 발생했을 때다. 급전이 필요한 사람이 조직에게 장을 넘기다가 일명 ‘누르는 사고(장집이 돈을 가로채는 것)’가 발생하거나, 장이 ‘링 걸리는 경우’(금융당국 모니터링에 걸려 계좌가 일시적으로 정지되는 상황을 뜻하는 은어)가 대표적이다.
이렇게 되면 캄보디아 현지로 불러들인 통장 주인을 고문하거나 감금한 채 통장에 묶인 돈을 대신 갚으라고 협박하며 범행이 이뤄진다. 지난 18일 한국으로 송환된 피의자 64명 중 일부도 이 같은 경로로 캄보디아에 입국한 것으로 추정된다. 현지 사정을 잘 아는 A씨는 “미얀마, 캄보디아에는 아직도 (한국에 돌아오지 않은 사람들이) 많다”고 했다.
이와 반대로 통장을 넘겼지만 정작 장집과 연락이 끊겨 돈을 받지 못한 이들도 적지 않다. 큰 돈을 노리고 통장 거래에 가담해도 실제 얻는 것은 없을뿐더러 금전적, 신체적 피해만 입고 있는 것이다. 텔레그램 관련 채팅방에는 통장을 받아놓고 대가를 지급하지 않는 장집의 텔레그램 이름, 나이, 사진, 거주 지역 등과 함께 주의하라는 글이 공유되고 있다. ‘우연이라는 텔레그램 이용자이자 장집에게 통장을 넘기고 4800 테더를 받기로 했지만 연락이 끊겼다‘는 식의 제보가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사기 등의 피해를 입었다고 하더라도 타인에게 계좌를 넘기면 형사 처벌 대상이다. 이 경우 전자금융거래법에 따라 5년 이하 징역이나 30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할 수 있다. 여기에 범죄에 쓰일 것을 알았다면 사기 방조죄로도 처벌받는다. 경찰 관계자는 “사안에 따라 범죄단체 조직법의 조직원으로 가담한 게 될 수도 있다”며 “통장 1개라도 타인에게 명의를 넘기는 것은 범죄”라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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