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전사 통폐합 5대 방안…“5개를 1개로” Vs “한전·한수원 개혁도”

[이데일리 최훈길 기자] 이재명 대통령이 공공기관 통폐합을 예고한 가운데, 한국전력(015760) 자회사인 발전5사의 구조개편을 놓고 발전사 노조와 시민사회 단체가 5가지 통합 시나리오를 제시했다. 석탄화력 중심의 발전사 5곳을 1개로 통합하자는 의견과 한전과 한국수력원자력까지 포함해 전방위 개편을 하자는 주장이 맞섰다. 기후에너지환경부가 검토 중인 재생에너지공사 신설에 대해서도 찬반이 팽팽하게 엇갈렸다.

한국노총 산하 전국전력산업노동조합연맹(전력연맹), 민주노총 산하 전국공공운수노동조합 발전지부(발전노조)는 22일 서울 중구 서울 중구 패스트파이브 시청1호점에서 에너지정의행동 주최로 열린 ‘기후정의의 눈으로 본 발전공기업 역할과 통합의 과제’ 토론회에서 “지금은 발전사 통합 논의의 골든타임”이라며 발전사 관련 5대 통폐합 방안을 제시했다.

전력연맹은 한국수력원자력을 제외한 현행 발전사 5개(남동·남부·동서·서부·중부발전)를 대상으로 4가지 통합 방안을 제시했다. 이는 △1개 발전사로 단일화 △화력발전 2개사와 재생에너지 공사로 이원화 △석탄, LNG, 재생에너지 등 발전원별 3개사로 분할 △배전·판매·분산자원 관리를 통합하는 지역별 에너지공사로 개편하는 방안이다. 발전노조는 한수원까지 포함한 발전 6개사를 1개 발전사로 통합하는 방안을 별도로 제안했다.

이재명 대통령이 8월13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나라재정 절약 간담회에서 “너무 많아서 숫자를 못 세겠더라”며 “공공기관 통폐합도 대대적으로 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사진 맨오른쪽은 김용범 정책실장, 사진 가운데는 우석진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다. (사진=뉴시스)

앞서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8월13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에서 열린 ‘나라 재정 절약’ 간담회에서 “너무 많아서 숫자를 못 세겠더라”며 “공공기관 통폐합도 대대적으로 해야 할 것”이라고 예고했다. 대통령실은 강훈식 대통령 비서실장을 팀장으로 하는 공공기관 통폐합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해 관련 논의를 진행 중이다.

김성환 기후부 장관은 지난 14일 국회 기후에너지환경노동위원회 국정감사에서 발전사 통폐합 관련해 “아직 공식적인 논의 단계는 아니지만 곧 의견 수렴에 착수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재명 정부는 ‘2040년까지 석탄화력발전 폐지’를 국정과제로 채택하고 관련해 발전사 통폐합을 검토 중이다.

발전사에서도 탈석탄 기류 속 현행 발전5사 체제가 지속가능 하지 않다고 보고 통폐합이 불가피하다는 분위기다. 또한 IMF 외환위기 이후 김대중 정부에서 공기업 구조조정, 시장경쟁 촉진 일환으로 한전에서 발전5사가 분리됐는데, 그동안 발전5사 체제가 실효성이 없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차별성 없는 ‘무늬만 발전5사’라는 쓴소리도 나온다. 이에 따라 정부·공공기관 모두 통폐합 필요성엔 공감하고 있지만, ‘통폐합을 어떻게 할지’를 놓고선 이견이 크다.

남태섭 전력연맹 사무처장은 “탈석탄, 재생에너지 확대로 화석연료 중심의 발전5사를 이대로 두면 10년 안에 적자 기업이 되고, 결국 국민 부담만 커질 것”이라며 “현실적인 상황을 고려해 한수원은 빼고 화력발전 5개사를 재편해 하나로 통합하고 재생에너지 역할을 부여해야 한다”고 말했다.

황인철 녹색연합 기후에너지팀장도 “탈석탄 과제를 앞에 둔 발전5사와 한수원이 처한 상황이 다르고, 한수원이 포함되면 재생에너지 확대 미션이 모호해질 수 있다”며 “우선 발전5사를 통합하는데 집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반면 민주노총은 탈석탄뿐만아니라 탈핵까지 고려해 한수원도 통폐합 대상에 포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발전노조 제용순 위원장은 “탈석탄과 탈핵을 함께 봐야 하고, 원래 한전은 하나의 회사였기 때문에 발전5사와 한수원도 하나로 통합해야 한다”며 “정의로운 에너지 전환은 발전사 6개를 1개로 통합해 재생에너지를 추진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노총 산하 전국전력산업노동조합연맹(전력연맹)과 민주노총 산하 전국공공운수노동조합 발전지부(발전노조)가 22일 제시한 발전사 통폐합 5대 시나리오. (자료=전력연맹, 발전노조)

한수원뿐만아니라 한전까지 포함해 전력시장 전반을 개편할지에 대해서도 의견이 엇갈렸다. 전력시장 개편은 한전이 전력판매 시장을 독점하는 구조를 개혁하는 것이 핵심이다. 현행 전기사업법에 따라 한전은 독점적으로 전기를 구매하고 판매할 수 있는 권한을 갖고 있다. 이를 두고 기후위기 시대에 신산업을 키우고 재생에너지를 확대하려면 한전의 독점 판매 구조를 깨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22일 토론회에서도 권경락 플랜1.5 활동가는 “이재명 대통령과의 타운홀 미팅에서 ‘한전이 전기 판매를 독점해 혁신적인 기업이 나오기 어려운 상황이기 때문에 한전 독점이 깨져야 한다’는 지적이 나왔다”며 “이번 통합을 논의하면서 한전 독점 부분까지 포함해 시민사회에서 대안과 입장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발전6사와 한전 간 소유·경영 관계에 대해서도 어떻게 바꿀지 검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반면 이헌석 에너지정의행동 정책위원은 “지난 20여년간 전력산업 재편은 아무도 건들고 싶지 않은 벌집”이라며 “이번에 판매시장 개방, 전력산업 구조개편 논의까지는 하지 않았으면 한다. 이 논의에 빠지면 발전사 통합, 재생에너지 확대 관련해 효과적으로 논의하는 게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말했다.

김성환 기후에너지환경부 장관은 본격적으로 신재생 확대 등 에너지 전환에 나설 방침이다. 사진은 김 장관이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는 모습. (사진=뉴시스)

정부가 검토 중인 재생에너지 공사를 신설하는 방안을 놓고도 엇갈린 의견이 나왔다. 앞서 김성환 장관은 지난 14일 국감에서 발전사 통폐합 관련해 “재생에너지 공사를 만들어 석탄발전을 전환하는 방법이 있다”며 재생에너지 공사 신설 가능성을 시사했다. 재생에너지 공사를 신설해 속도감 있게 재생에너지를 확대하겠다는 구상을 내비친 것이다.

하지만 시민단체와 발전사 노조는 재생에너지 공사 신설이 기존 인력의 구조조정으로 이어질 수 있다며 우려를 표했다. 이헌석 에너지정의행동 정책위원은 “재생에너지 공사를 만들면 (인력 구조조정 우려로) 정의로운 전환이 어렵다”며 “정의로운 전환을 위해서는 통합한 한 회사가 석탄화력과 재생에너지를 함께 맡아야 한다”고 말했다. 남태섭 전력연맹 사무처장도 “해상풍력은 대규모 자본, 기술, 인력을 갖춰야 한다”며 “발전5사를 통합한 한개 발전공기업이 재생에너지를 맡아야 한다”고 말했다.

관련해서도 반론이 제기됐다. 한수원 관계자는 청중 발언을 통해 “한수원 사례를 보면 메인이 원자력이기 때문에 신재생을 적극 추진하는 게 쉽지 않다”며 “발전5사를 통합해 석탄화력과 신재생을 함께 두면 화력이 메인이 되기 때문에 신재생 추진이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신재생 에너지를 확대하려면 신재생을 전문으로 목숨 걸고 하는 재생에너지 공사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토론회 사회를 맡은 박정은 전 참여연대 사무처장은 22일 토론회에서 “발전사는 통합 이후 해상풍력 등 재생에너지 확대 과제를 얼마나 잘 수행할 수 있을지 시민사회와 정부에 설득력 있는 방안을 준비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사진=에너지정의행동)

박정은 전 참여연대 사무처장은 “기후정의의 눈으로 본 발전공기업 역할은 발전사 통합 이후 재생에너지를 확대하는 역할”이라며 “기술적 전환과 인적 역량 측면에서 현재 발전사는 충분한 준비가 부족하다”고 꼬집었다. 박 전 처장은 “발전사는 통합 이후 해상풍력 등 재생에너지 확대 과제를 얼마나 잘 수행할 수 있을지 시민사회와 정부에 설득력 있는 방안을 준비해야 한다”며 구체적인 이행 방안 마련을 주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