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특별검사를 통해 대한민국 공무원 사회에 드리워진 충격적인 그림자는 참으로 믿기 힘들 정도다. 법치주의 근간을 뒤흔드는 일련의 사건들, 특히 계엄 과정에서 불거진 각종 의혹들, 편파 수사 등으로 얼룩진 사법시스템, 더 나아가 마약 반입을 묵인한 세관·경찰·검찰의 카르텔 구조까지 거대한 비리와 불법이 조직적으로 자행됐음이 밝혀지고 있다. 이러한 일들은 단순한 개인의 일탈이 아니라 체계적이고 구조적인 부패가 뿌리 깊이 박혀 있음을 실감케 한다.
이러한 거대한 불법과 비리가 가능하려면 필연적으로 그 이익을 향유하는 상부의 지시자와 이를 계획하고 모의하며 최종적으로 직무를 수행하는 하부의 집행자들이 존재하기 마련이다. 이들은 모두 공무원이라는 이름으로 세금과 봉급을 받고 법과 정의를 지키는 직무를 부여받은 사람들이다. 비리와 불법을 지시한 상위 권력자가 처벌받고 비난받아야 함은 지극히 당연하다. 그렇다면 상위권력자 밑에서 그 지시를 받아 직무를 수행한 이들은 어떠할까. 그들은 보통 “지시에 따랐을 뿐”이라고 변명하곤 한다. “위에서 시켜서 했을 뿐 잘 모른다”며 눈을 감는다. 이 같은 변명으로 그들은 과연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까.
인류 역사상 가장 끔찍한 비극 중 하나였던 나치 독일의 전범재판에서도 이와 똑같은 변명이 있었다. 학살을 수행한 장교가 “명령에 따랐을 뿐”이라고 항변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에 대해 정치 철학자 한나 아렌트는 그 맹목적인 복종과 사유의 부재야말로 죄를 면할 수 없는 악의 본질임을 지적한 바 있다. 자신의 행위에 대한 윤리적인 판단을 멈추고 시스템의 부속품이 되는 순간 그 행위의 평범성과 일상성은 무서운 악이 될 수 있다. 악의 평범성은 자신이 저지르고 있는 악에 대해 둔감해지고, 악이 일상화되며, 선과 악의 구분을 더 이상 할 수 없게 되는 몰가치 판단의 심각성을 경고한다.
여기에 더해 공직사회 특유의 폐쇄적인 연대의식은 이러한 심각성을 더욱 공고히 한다. ‘다른 사람들도 그렇게 한다’거나 ‘대세에 묻어 간다’ 식의 사고가 그렇다. 이러한 집단적 동조 심리는 불법행위에 대한 개인의 책임감을 무디게 만들고 결국 시스템 전체의 도덕적 해이를 가져올 수 있다. 불법행위에 대한 책임감을 모두의 몫으로 희석시키고 결국 부정부패의 고리를 끊을 수 없게 만든다.
이러한 현상을 소위 ‘악의 연대’라 칭하기도 한다. 이꽃님 작가의 소설 “여름을 한 입 베어물었더니”에는 아이의 불법적인 행위를 동네 사람 전체가 눈감아 주는 모습이 그려져 있다. 표현하자면 ‘선을 위한 악의 연대’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필자는 선을 위한 경우라도 ‘악의 연대’는 용서받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 하물며 사적 이익이나 특정 권력 집단의 이익을 위해 행해지는 ‘악을 위한 악의 연대’는 더 말할 이유가 없다. 공직자의 책무를 개인이나 특정 집단의 사익을 위해 악용하는 행위는 국가와 국민 전체에 대한 배신이기 때문이다.
공직자는 국가와 국민 전체에 대한 봉사자이며 그 직무 수행은 법령과 양심에 따라 이뤄져야 한다. 이는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요구되는 공직자에 대한 의무사항이다. 평범한 일상 속에 스며들고, 서로 눈감아 주는 불법과 비리에 이제는 보다 냉정해져야 한다. 이순신 장군이 한 것으로 구전되는 말이 있다. “백성으로 살아갈 때에는 밭을 갈며 살아가면 되나 나라의 부름을 받았을 때에는 목숨을 바칠 각오를 해야 한다.” 공직을 맡은 자라면 누구나 가슴에 새겨야 할 경구다. 지시가 부당할 때 침묵하지 않고 불법이 벌어질 때 외면하지 않는 것, 그것이 공직자로서의 최소한의 책무다. 부정과 부패가 만연한 시대에 올곧은 공직자가 참으로 그리운 요즘이다.
Copyright ⓒ 경기일보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본 콘텐츠는 뉴스픽 파트너스에서 공유된 콘텐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