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압박에 탄소세 불발됐지만…해운업계 “임시방편 조치”

[이데일리 김기덕 기자] 글로벌 해운 탄소세 도입이 1년 연장되면서 국내 해운사들이 한숨을 돌리게 됐다. 국제해사기구(IMO) 규정으로 당장 2027년부터 순차적으로 선박 온실가스 규제 조치가 시행되면 연간 수천억 원을 내야 할 판이었지만 일부 시간이 벌게 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친환경 선박 전환에 대한 대원칙은 달라질 가능성이 없는 만큼 정부 차원에서 친환경 연료 수급과 지원 대책 등을 서둘러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IMO는 지난 14일부터 17일까지 해양환경협의회 2차 특별회기(MEPC ES2)를 열고 ‘선박 온실가스 감축을 위한 중기 조치’ 채택 여부를 논의했다. 앞서 IMO는 지난 4월 열린 제83차 해양환경보호위원회에서 이 조치를 승인했다. 하지만 이번 회의에선 다수의 회원국이 결정을 1년 연기하는 방안에 찬성 투표를 던져 결국 연기됐다.

당초 규제안은 국제 항해를 하는 5000톤(t) 이상 선박은 IMO가 정하는 선박 연료유의 온실가스 집약도 기준을 준수하고, 만약 이를 어기면 부과금을 내야 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당초 이번 회의에서 처리되면 2027년 3월부터 순차적으로 시행될 예정이었다. 궁극적으로는 2050년 ‘온실가스 넷제로’를 실현하기 위한 차원이다.

[이데일리 이미나 기자]

분위기가 달라진 것은 도널프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이같은 탄소세를 ‘녹색 사기세’라고 비판하면 주변국을 압박하면서다. 앞서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6일에도 소셜미디어에 “녹색 환상에 쓰기 위한 신종 녹색사기 관료체제 신설”이라고 맹비난하면서 IMO 회원국을 상대로 반대를 촉구했다.

결국 이번 회의에서 사우디아라비아의 제청으로 1년 연기안이 투표에 부쳐졌고 찬성 57개국, 반대 49개국, 기권 21개국으로 결국 1년 뒤 다시 논의하게 됐다. 익명을 요구한 한 관계자는 “미국 측이 IMO 회원국의 대사관을 통해 반대의사를 압박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만약 이를 찬성하는 국가들을 관세, 비자 제한, 항만 수수료 등으로 보복을 시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탄소세 도입이 당장 연기됐지만 중장기적으론 친환경 선박 전환은 불가피한 흐름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국내 선사들도 트럼프 행정부 이후 또는 그 이전에 탄소세가 시행되면 적게는 수천억원, 많게는 1조원을 훌쩍 넘기는 벌금을 내야할 것으로 추정된다. 현재 국내 선사들이 운항 중인 선박 중 친환경 선박 비중은 약 5.9%에 불과한 수준이다.

다만 아직 친환경 연료 수급 문제나 인프라 구축, 기술력 등이 따라오지 못해 정부 차원의 대책을 서둘러 수립해야 한다는 것이 해운업계의 주장이다.

업계 관계자는 “화석연료인 벙커씨유를 대체할 저탄소 미래 에너지원인 메탄올, 암모니아, 수소 등은 아직 기술 개발이나 안정성 검증이 되지 않은 상황”이라며 “무엇보다 많은 비용과 시간이 걸리는데다 수요에 비해 공급이 현격하게 부족한 구조적인 문제로 쉽지 않다”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당장 탄소세 부과 시점이 연기됐지만 앞으로 캐나다 등 북미, 호주 등 다른 지역에서 규제를 내놓을 경우 이중으로 압박을 받을 수 있다”며 “친환경선 전환 지원 대책에 대한 지원책을 서둘러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