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정상회담이 표류 중인 가운데, 러시아가 '전쟁의 근본 원인'이 해소돼야 휴전이 가능하다는 기존 입장을 반복했다. 서방 언론은 미국이 러시아 주장을 비현실적이라고 보고 있다고 보도했다.
뉴시스 보도에 따르면, 타스통신에 따르면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은 21일(현지 시간) "러시아 입장은 푸틴-트럼프 알래스카 합의 이후 바뀌지 않았다는 점을 공식적으로 강조한다"며 "트럼프 대통령은 당시 즉각적 휴전보다 지속 가능한 평화가 필요하다고 밝혔고, 우리는 이 기조를 고수하고 있다"고 했다.
그는 우크라이나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가입 금지 및 나토 세력권 후퇴, 우크라이나 내 러시아어 사용 인구 자율권 보장, 우크라이나 탈(脫)나치화 등 '근본 원인 해소' 요건을 열거하고 "이것을 다루지 않고 즉각 휴전을 요구하는 것은 알래스카 합의와 모순된다"고 주장했다.
푸틴 대통령은 우크라이나가 동부 돈바스(도네츠크·루한스크) 전역을 양보하면 남부 자포리자·헤르손의 점령지 일부를 반환하고 전쟁을 멈추겠다고 트럼프 대통령에게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물밑에서는 나토 전선 후퇴, 우크라이나 내 러시아 영향력 인정 등 러시아의 초기 요구가 모두 수용돼야 휴전에 응할 수 있다는 입장을 견지했던 것으로 보인다.
특히 8월 알래스카 정상회담 당시 트럼프 대통령도 '즉각 휴전 후 협상'이 아닌 '평화 협정 직행'을 지지했다는 점을 내세워 미국이 자국 입장을 수용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서방 언론에 따르면 트럼프 행정부는 러시아의 원론 고수로 대화 진척이 어렵다고 판단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17일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을 만나 돈바스 전역 양보를 압박했으나, 회담 말미에는 현 전선을 동결하고 영토 협상을 개시한다는 입장으로 조정한 것으로 전해진다.
CNN은 익명의 소식통을 인용해 "러시아가 극단주의를 벗어나지 못했다는 것이 행정부 관계자들의 견해"라고 보도했고, WSJ도 "미국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와의 평화 협정을 불가능하게 하는 영토적 야망에 집착하고 있다고 결론지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유럽에서도 러시아의 과도한 요구로 트럼프 행정부가 물러섰다는 해석을 내놨다. BBC에 따르면 익명의 유럽 고위 외교 당국자는 로이터에 "러시아는 너무 많은 것을 요구했고, 트럼프 대통령이 부다페스트 협상에 임할 수 없다는 것이 미국 측에 분명해졌다"고 평가했다.
한편 러시아는 서방 보도를 일축하며 정상회담 보류를 부인하고 있다.
라브로프 장관은 "CNN을 비롯한 많은 서방 언론은 허위 정보 유포 캠페인을 벌인다"고 했다. 키릴 드미트리예프 대통령특사도 "언론이 다가오는 정상회담에 훼방을 놓기 위해 왜곡 보도를 하고 있다. (회담) 준비는 계속되고 있다"고 보탰다.
그러나 현재 양국간 고위급 접촉은 중단된 상태로 보인다. 트럼프 대통령은 21일 "나는 헛된 만남, 시간 낭비를 원하지 않는다"며 "이틀 안에 입장을 내겠다"고 밝힌 상황이다.
뉴욕타임스(NYT)는 백악관 관계자 2명을 인용해 "라브로프 장관과 루비오 장관 통화 이후 트럼프 대통령 참모들은 고위급 대면 회담이 불필요할 것으로 판단했다"고 보도했다. WSJ도 "라브로프 발언을 보면 러시아는 여전히 협상에 응할 의사가 없다는 것이 확인된다"는 행정부 고위 관계자 진단을 전했다.
오는 26~27일 말레시이아에서 열리는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아세안) 정상회의를 계기로 양국간 고위급 접촉이 재개될 가능성에 대해서는 전망이 엇갈린다.
CNN은 행정부 고위 관계자를 인용해 아세안 정상회의에서 장관급 회동이 열릴 가능성이 있다고 봤으나 WSJ는 "루비오와 라브로프 모두 (아세안 정상회의에) 참석하지만 예정된 회동은 없다"고 보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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