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라인 플랫폼의 이른바 '갑질' 행위를 규율할 때 피해자(입점업체)를 일일이 특정하도록 요구하는 현행 거래상지위 남용행위 규제가 플랫폼 특성과 맞지 않는다는 국책연구기관의 분석이 나왔다.
뉴시스 보도에 따르면, 특히 플랫폼 거래는 피해자와 가해자 관계가 단순하지 않고, 일부 이용자에게는 효율성을 높이는 효과도 발생할 수 있는 만큼 이를 반영한 새로운 규제 틀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조성익 한국개발연구원(KDI) 선임연구위원은 22일 이런 내용을 담은 KDI 포커스 '온라인 플랫폼 거래상지위 남용행위 규제 개선 방향' 보고서를 발표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온라인 플랫폼의 갑질 행위에 대한 기존 규율 방식은 전통적인 갑(甲) 기업을 염두에 두고 만들어진 탓에 플랫폼 사업 특성과 잘 맞지 않는 부분이 있다.
'거래상지위 남용행위'는 거래상지위를 가진 사업자(갑)가 거래상대방(을)에 불공정한 거래조건을 강제해, 부당하게 거래상대방의 이익을 착취하는 것을 뜻한다.
이에 대한 제재를 가하기 위해선 공정거래위원회(공정위)가 ▲거래상지위 존재 여부 ▲부당성을 확인해야 한다. 즉 '갑'에 거래상지위가 있는지 파악한 후 '갑'의 행위가 규제돼야 할 정도로 부당한지 검증하는 것이다.
거래상지위를 남용한 것으로 의심되는 기업이 '갑'인지 확인하기 위해서는 우선 피해기업 '을'부터 특정할 필요가 있다. 부당성을 입증하기 위해선 '을'이 입은 피해가 무엇인지 일일이 구체적으로 확인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현재 플랫폼 산업은 개별 기업 간의 일대일 거래가 아니라, 다수의 이용사업자와 소비자가 동시에 연결된 다면시장 구조를 기반으로 작동하는 경우가 많아, 이런 기존 규제 양태를 그대로 적용하기 어렵다는 한계가 있다.
즉 플랫폼의 거래 조건 변경은 개별 기업 간 협의가 아니라 전체 이용사업자에게 일괄 적용되는 일반 규칙 형태로 이뤄지기 때문에, 일부 피해자만 특정하거나 개별 피해를 입증하는 방식으로는 실질적인 피해를 포착하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특히 기존 규제에서는 거래관계의 이해당사자가 얻는 긍정적 효과에 대해 살피는 절차가 없다. 피해기업 '을'이 발생하더라도, 소비자나 다른 이용사업자에게는 긍정적인 경제적 효과가 생길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것이다.
가령 배달앱이 음식점의 수수료를 인상했지만, 소비자에게는 할인쿠폰으로 혜택을 환원하는 경우가 있다. 외견상 갑질처럼 보이지만 소비자 후생이 증가했다면 전통적 방식의 규율로는 효율성을 저해할 수 있다는 의미다.
조 연구위원은 "착취 가능성만 고려해 강력한 규제를 도입하면 플랫폼의 긍정적 효익까지 훼손될 수 있다"며 "피해자 특정 부담을 줄이고 효율성 증진 가능성을 함께 검토하는 균형 잡힌 제도 설계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조 연구위원은 향후 플랫폼의 거래상지위 남용행위를 판단할 때는 단순한 부당성뿐 아니라, 거래질서에 미친 영향과 제3의 이해당사자(소비자·다른 이용자)에 대한 긍정적 효과까지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는 제언했다.
구체적으로 조 연구위원은 ▲피해자를 특정하는 책임을 덜어 줄 것 ▲거래질서에 미치는 영향을 파악할 것 ▲효율성 증진 효과를 검토할 것 등을 요구했다.
피해자 특정 책임 경감과 관련해선 "피해자 일반의 공통된 사정에 집중해 일정한 조건을 만족할 경우 온라인 플랫폼의 거래상지위를 인정하고 규제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거래질서 영향 파악과 관련해선 "개별 피해자 하나하나에 가해진 피해 정도가 작더라도 피해자가 광범위하게 발생한 경우라면, 공정한 거래질서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이 상당할 가능성이 크다"며 "부당성 요건으로 기존 거래 내용의 불공정성에 '경쟁제한성'을 추가하는 것을 생각해 볼 수 있다"고 전했다.
아울러 조 연구위원은 장기적으로 온라인 플랫폼의 '착취형 남용행위'를 시장지배적지위 남용행위로 전환해 다루는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고 밝혔다.
그는 "플랫폼의 지위는 개별 상대방에 대한 상대적 우월성이 아니라, 자신이 만든 거래공간 안에서 발휘되는 절대적 지위에 가깝다"며 "시장점유율 기준 대신 거래조건 변경 능력 등을 중심으로 시장지배적지위를 입증하는 방향으로 제도를 정비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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