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매거진=황명열 기자] 언박싱 프로젝트(이하 UBP)가 여섯 번째 시리즈 전시 ‘UNBOXING PROJECT: Reading(읽기)’를 오는 23일부터 11월 23일까지 뉴스프링프로젝트에서 개최한다.
이번 전시는 세대를 아우르는 한국 동시대 미술 작가 21인이 UBP의 커미션을 통해 제작한 신작 21점을 선보인다.
2022년 시작된 UBP는 ‘작은 작품이 지닌 커다란 가능성’을 탐구해온 전시 프로젝트다. 거대한 스케일과 스펙터클이 주는 감탄보다, 손바닥만 한 작품이 불러일으키는 섬세한 감동과 사유에 주목해왔다.
매회 새로운 주제 아래 ‘작은 박스 크기’의 작품을 선보이는 UBP는 각 주제를 반영한 제한된 틀 안에서 작가의 창작을 유도한다. 완성된 작품은 작가의 스튜디오에서 전시장으로 이동해 ‘언박싱’되고, 이후 소장가에게 전달된다. 이 일련의 과정 자체가 ‘작품의 순환적 생명’을 보여주는 퍼포먼스이기도 하다.
여섯 번째 전시인 ‘읽기’는 회화에서 중요한 조형 요소로 작용해온 ‘문자’를 주제로 삼는다. 문자와 이미지, 독해와 해석 사이의 경계를 탐색하며, ‘읽기’라는 행위를 시각예술의 차원으로 확장한다.
문자는 세상을 이해하고 소통하는 도구이지만, 예술 속에서 문자는 단순한 정보 전달을 넘어 다층적 의미를 품는 존재로 변형된다. 이번 전시는 ‘문자를 읽는 행위’와 ‘예술을 읽는 행위’를 교차시켜, 해석과 상상의 다양한 가능성을 제시한다.
참여작가들에게는 두 개의 캔버스를 경첩으로 연결한 이면화(diptych) 구조의 틀이 주어졌다. 책처럼 펼쳐지고 닫히는 구조는 ‘읽기’의 물리적 행위를 연상시키며, 관객에게 회화와 책의 경계가 교차하는 지점을 경험하게 한다.
각 작가는 문자와 이미지의 관계를 자신만의 방법으로 해석한다.
김아라는 전통 건축의 ‘井자 구조’와 훈민정음의 문자 형상을 도형으로 재구성해 언어와 구조의 근원적 질서를 탐구한다. 유승호는 문자와 점묘 이미지가 겹쳐지는 화면을 통해 비선형적으로 읽히는 ‘하이퍼텍스트’ 구조를 제시하며, 글과 그림의 해체와 재조합을 시도한다. 이순주는 두 개의 원과 경첩이 만들어내는 ‘응’의 형태를 통해 언어가 추상 조형으로 전환되는 과정을 실험하고, 한재열은 기호의 이면에 존재하는 사회적 사건을 소환하며 ‘읽기’의 불완전한 인식을 드러낸다.
또 김지영은 거친 파도 위에 겹쳐진 ‘잠시’라는 단어를 통해 망각된 비극을 언어로 호출하고, 김홍석은 “나는 이 글이 그림이라고 생각합니다”라는 문장과 이를 응시하는 인물을 통해 ‘읽기’와 ‘보기’의 전환을 실험한다. 노은주는 아기의 옹알이 같은 ‘말 이전의 말’을 그래픽 악보로 옮겨 언어가 탄생하는 감각적 순간을 회화로 번역한다.
로와정은 색실을 엮은 추상 구조를 통해 ‘we are on the same page’라는 문장의 출발점을 시각화하며 관계의 작동 원리를 탐색하고, 신민은 이미지와 문장을 엮은 신작에서 작가의 사적 스크랩북처럼 구성된 장면을 통해 자본주의 사회 속 지워진 존재들의 흔적을 드러낸다.
‘읽기’는 문자와 이미지를 단순히 병치하거나 혼합하는 데 그치지 않고, 두 요소의 관계를 재구성하며 ‘읽기’의 개념과 행위를 확장된 차원에서 질문한다. 작품 속 문자와 이미지는 충돌하거나 교차하며, 단일한 의미로 환원되지 않는 긴장과 불일치를 만들어낸다.
관객은 그 사이를 오가며 독해와 해석, 기록과 상상을 넘나드는 열린 사유의 장을 경험하게 된다. 이번 전시는 문자와 이미지를 통해 예술을 읽는 새로운 방법을 제시하며, ‘작품을 읽는다’는 행위 자체에 대한 근본적 성찰을 유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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