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썰 / 임나래 기자] 2조5000억원이 ‘휴면자금’으로 금융권 장부 속에 멈춰 있다.
서민금융진흥원에 따르면 2021년부터 2024년 8월까지 금융기관이 이관한 휴면자금은 총 2조4954억원이며, 이 중 1조1079억원(44.4%)은 여전히 주인을 찾지 못했다. 회계상 부채로 잡히지만 운용되지 못하는 ‘비활성 자산’으로 남아 자금 효율과 수익성을 떨어뜨리고 있다. 특히 고령층 비율이 높아, 기술 중심으로 진화한 금융 시스템이 사람 중심의 포용성에서는 오히려 후퇴했다.
이 같은 비효율을 해소하려면 제도 개선과 함께 고령층 접근성을 높이는 실질적 금융 포용 대책이 시급하다.
◇흐르지 않는 돈, 비효율의 덩어리
휴면자금은 회계상 ‘부채(고객 예치금)’로 잡히지만, 운용이 제한돼 투자나 대출로 활용할 수 없다. 결국 이자 수익을 내지 못하는 비활성 자산으로 남아 자금 운용 효율 저하와 수익성 둔화를 초래한다.
한 은행권 관계자는 “예금은 기본적으로 대출의 재원이라 단순히 수익성에 부정적이라고만 볼 순 없다”고 말했다. 다만 “서민금융진흥원으로 이관된 후에는 부채로만 남기 때문에 비효율이 발생한다”고 덧붙였다.
즉, 돈의 순환이 멈추면서 유동성이 막히는 구조가 만들어진 셈이다.
이관 이후에도 채무 책임은 여전히 금융권에 남는다. 이 때문에 휴면자금 지급·통지·홍보에 필요한 행정비용이 지속적으로 발생한다. 금융권에는 비생산적 업무 부담이, 감독기관에는 비효율적 관리 구조가 반복되는 ‘이중 비효율’이 고착되고 있다. 결국 이러한 구조적 비효율은 은행에 대한 소비자 불신으로 이어진다.
◇노령층 집중, 금융 포용의 사각지대
2024년 신규 발생한 65세 이상 차주의 휴면예금(160억원)과 보험금(788억원)은 전체 출연액(3170억원)의 29.9%를 차지했다. 기술적으로 금융은 고도화됐지만, 사람 중심의 포용은 여전히 뒤처진 현실을 보여준다.
경기도 부천시에 거주하는 전모씨(75)는 “집 근처 지점이 없어지고 나서 웬만한 일 아니고서는 은행에 잘 가지 않는다”며 “그냥 통장에 돈이 있든 없든 신경을 안 쓰게 된다”고 말했다.
은행권은 최근 몇 년간 창구 인력을 줄이고 모바일·비대면 중심으로 전환하고 있다. 그러나 고령층의 디지털 금융 이용률은 여전히 절반 수준에 머물러 있다.
한국은행의 ‘2024년 지급수단 및 모바일금융서비스 이용행태 조사’에 따르면, 60대 이상(1459명) 중 최근 한 달 내 모바일 금융서비스를 이용한 비율은 53.5%(758명)로 절반을 간신히 넘었다.
결국 “접근할 수 없어서 못 찾는 구조적 문제”가 드러난다. 금융의 디지털 전환이 빠르게 진행되는 동안, 금융 포용의 사각지대는 점점 넓어지고 있다.
◇형식적 통보 넘어, 실질적 접근으로
현행 제도는 ‘형식적 통보’에 머물러 있다. 현행법(서민금융진흥원법)은 30만원 이상 예금에 한해 휴면 전 한 달 전에 한 번만 통보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고령층의 경우 문자나 앱 알림을 인지하기 어려워 사실상 무용지물에 가깝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한시적 이동점포가 아닌, 고령층이 상시적으로 은행 업무를 볼 수 있는 이동점포 운영이 필요하다”며 “고령층을 위한 금융문화 커뮤니티 프로그램과 전담 상담·방문 안내 제도도 마련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시스템적 한계도 뚜렷하다. 또 다른 은행권 관계자는 “실명제 아래에서는 고객 의사 없이 예금을 임의로 처리할 수 없기 때문에 법적·시스템적으로 한계가 있다”며 “고객정보 접근 제한, 권한 문제, IT 인프라 등도 적극적 대응을 어렵게 하는 요인”이라고 설명했다.
결국 금융권의 적극적 대응과 시스템·제도 개선이 병행될 때 비활성화된 휴면자금이 줄고, 금융 포용성 또한 강화될 수 있다. 기술 중심의 디지털화가 아닌 ‘접근 가능한 금융 설계’로의 전환이 금융 신뢰 회복의 출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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