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환기36] 이론상 영국보다 앞섰던 프랑스는 왜 산업혁명을 못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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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환기36] 이론상 영국보다 앞섰던 프랑스는 왜 산업혁명을 못했을까?

저스트 이코노믹스 2025-10-21 20:10:00 신고

패러디 삽화=최로엡 화백
패러디 삽화=최로엡 화백

 동심원처럼 퍼져나간 영국의 산업혁명

 당시 서유럽의 상황이 어떠했기에 이와쿠라 사절단은 이런 판단을한 것인가?

에릭 홉스봄이 말한 산업혁명과 시민혁명이라는 ‘이중혁명’의 성과인 근대의 실체가 드러난 시점은 1830~1840년대였다. 홉스봄은 『혁명의 시대』에서 이렇게 강조했다.

 "세계 시장을 가진 영국만 제외하고 1848년까지 유럽의 산업화는 그다지 인상적이지 않았다. (…중략…) 여전히 산업상의 호황과 불황이 아니라 농업의 풍·흉년에 지배되고 있었다.”

“홈스봄이 내린 전체적인 결론은 변화의 양상보다는 변화 자체가 진행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중략…) 변화가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1848년 당시까지 산업세계란 호수에 둘러싸인 섬들에 불과했다.” 

그러나 한 세대 뒤에는 상황이 근본적으로 바뀌었다. 아래의 지도는 산업혁명이 동심원처럼 퍼져나가는 과정을 표시한 것이다.

 1840년대 영국 산업화의 완성 → 1850년대 벨기에, 네덜란드, 프랑스 일부 지역 → 1860년대 독일의 중북부, 프랑스 파리 인근 →1870년대 폴란드, 체코, 독일 남부, 프랑스 중남부 → 1880년대 스웨덴, 노르웨이, 동부 유럽, 그리고 러시아의 유럽 지역으로 퍼져나갔다.

 이때까지도 남부 유럽은 산업화를 이루지 못했다.

제프리 삭스 컬럼비아대학교 교수는 『지리 기술 제도』에서 산업혁명 시대를 이렇게 설명했다. 영국에서 시작한 산업혁명은 마치 ‘연못에 돌을 던지면 파문이 동심원을 그리며 퍼져나가듯’이 영국과 인접할수록 더 빨리 전달됐고, 멀리 떨어진 나라일수록 늦게 파문이 전달되듯 산업화가 늦어졌다는 것이다. 산업적인 기술, 기술 노하우의 전파 용이함 외에도 영국으로부터(혹은 자국 내에서) 석탄을 공급받는 등의 용도의 육해상 수송망도 필요했기에 산업혁명의 고향인 영국과의 인접성은 매우 중요했다.

“1820~1850년 사이에 벨기에, 네덜란드, 프랑스 등 영국 근처의 회사들을 필두로 산업화가 퍼져나갔고, 19세기 후반에는 스칸디나비아, 독일, 이탈리아, 스페인 등 더 멀리 떨어진 나라들에 확산됐다. 그리고 마침내 19세기 말에는 동유럽과 러시아에도 도착했다.” 

유럽 대륙은 나폴레옹 전쟁이 끝난 1820년 무렵에 새로운 평화가 찾아와서 어느 시대보다 더 큰 규모의 변화가 일어났다.

좀 더 상세히 살펴보자.

산업혁명에 관한 책은 넘치고 넘친다. 서구에서 연구한 것을 소개하는 책도 많다. 그러나 그 시기와 의미를 한국의 입장에서 파헤치는 책은 별로 없다. 이제부터 우리 입장에서 살펴보고자 한다. 산업혁명은 단 한 나라 영국에서 시작됐다. 영국은 모든 산업 사회의 어머니였다. 프랑스, 독일 등 서유럽도 영국의 산업혁명을 도입하여 저마다의 방법으로 발전시킨 것이다.

“다른 지역들은 열정적인 기업가나 강력한 정부가 주도하거나 또는 양쪽이 협력하여 모방했다. 벨기에, 프랑스, 프로이센, 미국처럼 지리적으로나 문화적으로 영국과 가까운 나라들이 처음 모방에 나서면서 산업혁명이 두 번째 단계로 들어섰다. 1880년대에는 러시아와 일본에서 세 번째 단계가 시작됐다.” 

“이론상 프랑스는 자본주의가 가장 발달해야 할 제도적 조건을 갖추고 있었다. 실질적으로 기술의 수준과 금융업 또한 발달하였다. 그러나 프랑스의 경제발전은 프랑스 혁명 이후 오히려 지속적으로 느리게 발전하였다. 이러한 사태가 초래된 것은 프랑스 혁명 자체 때문이었다.” 

“대다수 유럽 사회가 소수의 근대화 선두 주자의 침략에 대응하고 앞선 기술, 경제, 제도, 정치적 노하우를 빠르게 습득하는 따라잡기 근대화를 위해 치열하게 노력했던 것은 사실이다. (…중략…) 대다수의 유럽국가에서 근대성은 새로운 지식, 문화, 권력의 여러 원천 간의 문명적 단축과 압착을 수반하는 민족주의적 프로젝트였다.” 

산업혁명은 영국만의 독점적 성취였다. 어느 정도 성숙한 단계에 도달한 이후에야 이웃 국가들에 퍼졌으며 시간이 흐름에 따라 유럽을 넘어 아시아에도 도달한 것이다.

영국과 유사한 인적, 제도적, 상업적 조건을 갖추고 있던 네덜란드 조차 자생적으로 산업화에 도달하지 못하고 1831년에야 비로소 시작된 산업화는 1840년에 취임한 빌럼 2세 때부터 본격적으로 전개됐다.

세계의 패자로서 자타가 인정했던 영국은 산업혁명의 중요한 4대 발명품이 모두 자국에서 나옴으로써 ‘나 홀로’ 비약할 수 있는 토대를 쌓았다. 4대 발명품은 면직물 분야에서 3대 발명품(1764년 하그리브스의 제니 방적기, 1769년 리처드 아크라이트의 수력 방적기, 1779년 크롬프턴의 뮬 방적기)이 가동되고 혁명적으로 산업을 변화시킬 트리거인 제임스 와트의 증기기관이 1776년 3월 8일 운전을 개시함으로써 이뤄졌다.

 1776년은 애덤 스미스의 『국부론』(3월 9일)과 미국의 독립선언(7월 4일)이 일어난 해로 매우 중요한 해였다. 특히 와트는 기존의 증기기관에 동력장치와 별도의 압축기를 도입하는 두 가지 뛰어난 혁신을 이루어 ‘탄광에서 물을 퍼내는 고비용 장치를 수천 가지의 용도로 사용할 수 있는 저비용 (범용) 장치’로 바꿔놓았다. 구텐베르크의 인쇄술을 제외하면 와트의 증기기관은 근세의 가장 중요한 발명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증기기관은 산업시대와 근대 경제를 탄생시켰다. 증기기관은 경제적 모더니티(근대성)를 가져왔을 뿐만 아니라 증기기관이 없었다면 지난 200년 동안의 다른 기술적 진보는 불가능했을 것이다.”

 이런 앞선 발명품들이 누적되는 과정을 통해 1780년대부터 영국은 본격적인 산업혁명이 일어나면서 비약적인 발전을 이루었다.

“1780년대의 특정 시점에 인류 역사상 최초로 인류의 생산력을 속박하던 굴레가 벗겨지고 재화가 무한대로 증식할 수 있는 일종의도약을 이루었다.” 

“최초의 면 공장은 1740년대에 건설됐으며 그 동력원은 가축이나 물이었다. 1780년대 이전에는 증기기관을 이용한 면 공장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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