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율의 시시각각] 언어마저 무기가 된 대한민국 국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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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율의 시시각각] 언어마저 무기가 된 대한민국 국회

경기일보 2025-10-21 19:06:56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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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요사이 국회 선진화법의 존재가 새삼스럽게 다가온다. 국회 선진화법이 없었다면 아마 이번 국정감사는 유례를 찾기 힘들 정도의 난투극으로 점철됐을 것이기 때문이다. 국회 선진화법의 제정 취지는 잃어버린 국회의 품격을 찾자는 것이었다. 난투극을 벌이지도 말고, 회의실을 점거하지도 말며, 품격 있는 언어로 좀 국정을 풀어 달라는 취지였다는 것이다. 사실 이런 국회 선진화법이 있다는 사실도 우리 정치판의 서글픈 현실을 반영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언어와 글 이외에는 인간의 사고(思考)를 표현할 수 있는 수단은 없는데 국회 선진화법이 필요할 정도로 말보다 ‘행동’이 앞섰다면 이는 국회의원의 품격은 고사하고 인간적 됨됨이를 의심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요즘 국정감사를 보면 인간의 사고를 표현할 수 있는 수단인 언어조차 무기가 되고 있는 것 같아 참담하다.

 

일단 자신들이 속한 상임위와 무관한 문제를 두고 여야 의원들 간 비속어가 오간 것은 정말 유감스러운 일이다. 결국 해당 의원들의 갈등은 사법 영역으로 넘겨질 모양이다. 다른 상임위에서는 이른바 반말 논란이 벌어졌는데 이런 갈등은 이번 국감의 ‘주제’가 두 가지밖에 없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생각한다. 하나는 조희대 대법원장 문제이고 다른 하나는 김현지 대통령실 제1부속실장 문제다. 그런데 이 두 가지 문제는 공통점이 있다. 아무리 여야 의원들이 격돌한들 자신들의 주장이 옳다는 것을 증명하기가 어렵다는 것이 그것이다.

 

우선 조 대법원장의 문제를 생각해 보면 이렇다. 민주당이 조 대법원장에게 따지려는 것은 이재명 대통령의 공직선거법 사건 파기 환송 문제다. 그런데 해당 문제는 정치적 영역도 존재하기는 하지만 사법부의 판결에 대한 내용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즉, 사법적 판단 영역이라는 것인데 이럴 경우 민주당이 아무리 의회의 절대적 다수당이라 하더라도 사법권의 독립성을 침해해 삼권분립을 훼손한다는 소리를 들을 수밖에 없다. 또 조 대법원장이 민주당의 요구에 응답할 가능성도 거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자칫 민주당은 소기의 목적도 달성하지 못하면서 삼권분립을 훼손한다는 역풍에만 직면하는 난처한 상황에 빠질 수 있다. 이런 민주당에 대항하기 위한 카드로 국민의힘은 김현지 실장 문제를 꺼내 들고 있다.

 

그런데 김 실장이 현재 실정법을 어겼다는 구체적인 증거가 있는 것은 아니다. 단순히 의혹 제기 수준이어서 과도한 측면이 있다는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국민의힘이 계속 김 실장의 국감 출석을 요구할 경우 역시 여론의 역풍을 맞을지 모른다. 하지만 여기서 주목해야 할 부분이 있다. 국민의힘이 계속해서 ‘사법부의 수장인 조 대법원장은 국정감사장에 불러냈으면서 왜 김 실장은 부를 수 없느냐’고 파상공세를 펼치면 여론은 국민의힘의 주장에 동조할 수도 있다는 점이 그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정치는 구구절절이 설명해야 하는 존재가 아니라 말 한마디로 끝내야 하는 존재라는 점이다. 이런 차원에서 보면 지금 국민의힘은 김 실장이 조 대법원장보다 위에 있느냐고 주장하는데 이런 말 한마디는 여론을 움직일 수 있다. 어쨌든 이번 국감은 이 두 인물이 지배하는 국감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는 유감스럽게도 국감에 임하는 양 정당의 소재 빈곤을 여실히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진짜로 따질 것이 있었다면 두 인물이 국감의 중심에 서지는 않았을 것이다.

 

국감은 본래 입법부가 행정부의 업무를 감사하는 것이다. 여당이든 야당이든 모두 입법부의 일원이다. 여당도 대통령 소속 정당이기 이전에 입법부의 일원이라는 말이다. 정권은 5년이지만 민주당의 생명력은 그보다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길 것이기 때문에 여당이기 이전에 입법부의 일원으로 행동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그런데 지금 우리나라 정치판에서는 이런 합리성을 찾을 수 없다. 그러니 지금 국정감사가 이 모양인 것이다. 우리나라 정치판에 합리성이 돋보이는 날이 올까 정말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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