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최초의 여성 총리가 탄생했다. 다카이치 사나에 자민당 총재가 21일 중의원 1차 투표에서 과반을 득표한 것.
'여자 아베'라고 불릴 정도로 극우 성향인 다카이치 총리의 등장으로 한일관계는 안갯속을 걷게 됐다.
이재명 정부는 과거사와 한일 양국의 협력 사안을 구분해 접근하는 '투 트랙' 실용외교 기조를 삼고 있으나 다카이치 총리가 과거 역사·영토 문제에서 강경한 발언을 쏟아냈고, 태평양전쟁 A급 전범이 합사된 야스쿠니신사도 정기적으로 참배해 왔다는 점에서 과거사 문제가 불거질 수 밖에 없다는 분석이다.
이 대통령과 다카이치 총리의 첫 만남은 오는 30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가 될 것으로 보인다.
'강경보수' 유신회와 새 연정 수립…중의원 1차 투표서 과반 득표
일본 집권 자민당 다카이치 사나에 총재가 21일 총리로 선출됐다. 일본이 1885년 내각제를 도입해 이토 히로부미가 초대 총리를 맡은 이후 제104대 총리이자 사상 첫 여성 총리다.
다카이치 신임 총리는 이날 임시국회 중의원(하원) 본회의에서 진행된 총리 지명선거 1차 투표에서 465표 중 과반(233표)을 넘는 237표를 얻었다.
총리 지명선거는 참의원(상원)에서도 별도로 실시되지만 결과가 다를 경우 중의원 투표를 우선시하기 때문에 다카이치 총재가 총리직에 오르는데 아무 문제가 없다.
다카이치 총리는 중의원 10선 의원으로 경제안보담당상, 총무상, 자민당 정무조사회장 등을 지냈다. 지난 4일 자민당 총재 선거에서 승리하며 당권을 잡았으나 1999년부터 자민당과 협력해 온 공명당이 연정에서 이탈해 위기를 맞았다.
하지만 강경 보수 성향 제2야당인 일본유신회를 새로운 연정 상대로 끌어들이는 데 성공하며 총리직에 올랐다.
다만 다카이치 내각의 국정 운영이 순탄치는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새로운 연정 상대인 유신회는 자당 의원이 입각하지 않기로 해 기존 자민당-공명당 연정보다는 협력 관계가 약할 수밖에 없다. 또 다카이치 총리가 유신회를 설득하는 과정에서 국회의원 정수 10% 축소 등 유신회 요구 사항을 대부분 수용했는데 일부 사안에 대해서는 자민당 내부에서 반발이 나오고 있다.
또 자민당과 유신회는 의석수를 합쳐도 과반이 되지 않는 소수 여당이어서 법안과 예산안을 통과시키려면 다른 정당과 협력이 필요하다.
중의원의 경우 자민당 196석, 유신회 35석으로 과반인 233석에 2석 모자란다. 참의원 의석수는 자민당 101석, 유신회 19석이다. 과반인 125석에는 5석 부족하다.
야스쿠니 신사 참배 등 '극우' 행보…한일관계 우려
다카이치 총리는 과거 야스쿠니신사를 꾸준히 참배하고, 역사·영토 문제에서 일본 극우 성향 발언을 거듭해 왔기에 향후 한일 관계에 악재가 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다만 지난해 총재 선거 당시에는 총리로 취임할 경우 야스쿠니신사를 참배하겠다고 공언했으나 올해는 "적절히 판단하겠다"며 다소 신중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현지 언론은 이달 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일본 방문,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등 외교 일정을 고려한 행보로 보고 있다.
특히, 북한, 중국, 러시아가 밀착하며 동북아시아 위기감이 한층 고조된 상황에서 다카이치 총리가 한미일 협력과 한일관계를 중시해 총리 재임 중에는 야스쿠니신사를 참배하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다카이치 총리도 지난달 토론회에서 "일미 동맹과 함께 일·미·한, 일·미·필리핀 협력을 심화해야 한다"며 "위기 상황에서 한국과 협력하며 대응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말했다.
전문가들도 당장은 '본심'을 숨길 것이라고 보고 있다. 당장 한일 협력이 국제무대에서 양국에 더 큰 이익을 주는 상황에서 이시바 전 총리와 이재명 대통령이 설정한 '미래지향적 한일관계 협력' 기조를 박살 내듯 깨진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다.
호사카 유지 세종대학교 교수는 다카이치 총리가 지난달 24일 일본 기자클럽이 주최한 자민당 총재 선거 후보 토론회에서 '미일 관세 협상의 불평등이 드러나면 재협상을 할 수 있다'는 입장을 내놓은 것을 언급하며 "미국과 문제가 안정되기 전까지는 한일관계는 협력 쪽에 힘을 실을 것으로 보인다"라고 예상했다.
이와는 반대로 야스쿠니신사 참배가 일본 내 보수층을 결집할 카드라는 점에서 2013년 12월 아베 신조 전 총리처럼 불시에 야스쿠니신사를 찾을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아사히는 다카이치 총리가 야스쿠니신사 참배를 계속 보류하면 현직 총리의 참배를 원해 그를 지지했던 사람들이 불만을 표출할 가능성이 있다면서 "다카이치 총리는 아베 전 총리 사례도 참고해 대응을 정하게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다카이치 총리가 야스쿠니신사를 참배하지 않더라도 한일 간 영토·역사 문제에서 발언 수위를 높이거나 대응을 강화할 가능성도 있다.
그는 지난달 혼슈 서부 시마네현이 매년 2월 22일 개최하는 '다케시마(竹島·일본이 주장하는 독도 명칭)의 날' 행사에 보내는 정부 대표를 차관급인 정무관에서 장관으로 격을 높여야 한다고 밝혔다.
결국 향후 한일관계는 이재명 대통령과 이시바 전 총리가 재개한 '셔틀 외교'에 달렸다는 분석도 나온다. 지난 6월 취임한 이 대통령은 이시바 전 총리와 지난달까지 세 차례 회담하며 셔틀 외교 중요성을 확인하고, 양국 공통 과제에 함께 대처해 나가기로 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오는 31일 경주에서 개막하는 APEC 정상회의 참석을 계기로 이 대통령과 회담할 것으로 보인다. 첫 대면에서 어떤 만남이 이뤄질지에 관심이 모아진다.
李 대통령 "중대한 시기 상생협력 강화하자…내주 만남 고대"
대통령실 "다카이치 日 신임 총리와 활발한 교류 이어가길 희망"
이재명 대통령은 21일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신임 총리에 "중대한 시기에 총리와 함께 양국 간, 양 국민 간 상생 협력을 한층 강화해 나가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이날 오후 페이스북을 통해 다카이치 총리 취임에 축하 인사를 전하며 이같이 말했다.
이 대통령은 "한일 양국은 앞마당을 함께 쓰는 이웃으로서 정치, 안보, 경제, 사회문화와 인적교류 등 다양한 분야에서 협력관계를 발전시켜 왔다"며 "60년 전에는 상상하기 어려웠던, 약 1200만명의 양국 국민이 서로를 방문하는 시대를 맞이했다"고 했다.
이어 "이제 우리는 새로운 한일관계의 60년을 열어가야 하는 중대한 전환점에 서 있다"며 "그 어느 때보다 불확실성이 높아진 국제정세 속에서 한일관계의 중요성 역시 어느 때보다 커지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셔틀외교를 토대로 양국 정상이 자주 만나 소통할 수 있길 바란다"고 했다.
다음 주 경주에서 개최되는 APEC(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 정상회의 초청 의사도 밝혔다.
이 대통령은 "다가오는 APEC 정상회의가 개최되는 경주에서 총리님을 직접 뵙고, 건설적인 대화를 나눌 수 있길 고대한다"며 "다시 한번 취임을 진심으로 축하드린다"고 했다.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은 이날 오후 브리핑을 통해 "외교 경로를 통해서도 축전 전달 등 필요한 조치를 할 예정"이라며 "그간 한일 정상 간 신뢰와 소통을 기반으로 한일 관계가 개선되고 발전돼 온 바, 신임 총리와도 활발한 교류를 이어나가길 희망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일 양국은 APEC을 계기로 양자 정상회담을 추진 중이다. 다카이치 총리 취임과 동시에 실무 차원 접촉이 이뤄지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강 대변인은 이와 관련해 "실무진 차원에서 논의가 진행되는 것으로 외교채널을 통해서 협의 중"이라며 "정상이 바뀌었기 때문에 (정상회담을) 기대하고 있다"고 했다.
[폴리뉴스 김승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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