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관 재개관·APEC 정상회의 맞아 13개 연작 중 '경제학'·'영혼성' 공개
전자초고속도로·고대기마인상 등 12점도 전시
(경주=연합뉴스) 박의래 기자 = 1989년 미국 신시내티에 머물던 백남준은 괴테의 저서 '파우스트'로부터 영감을 받아 1991년까지 '나의 파우스트'라는 이름의 연작을 만들어냈다.
백남준은 환경, 농업, 경제학, 인구, 민족주의, 영혼성, 건강, 예술, 교육, 교통, 통신, 연구와 개발, 자서전 등을 끝없이 탐구하는 인간이 도출해낸 문명의 기본 요소로 삼아, 각각을 제목으로 한 '나의 파우스트' 연작 13점을 만들었다.
경북 경주 우양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백남준 특별전에 전시 중인 '나의 파우스트 - 경제학'과 '나의 파우스트 - 영혼성'은 1992년 국립현대미술관에서 '나의 파우스트' 연작 13점이 모두 전시된 이후 30여 년 만에 처음 공개되는 작품이다.
우양미술관이 소장하고 있었으나, 작품이 고장 나 오랫동안 보관만 해오다가 올해 미술관 재개관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의 경주 개최를 맞아 복원해 전시하고 있다.
'나의 파우스트 - 경제학'은 3.1m 높이의 종교 제단처럼 텔레비전을 쌓아 놓고, 세계 각국의 지폐와 반짝이는 동전을 활용해 장식한 작품이다. 텔레비전, 전자 매체, 경제를 상징하는 오브제들이 얽혀 현대 사회에서 기술과 자본이 맺는 관계, 인간의 삶과 가치에 미치는 영향과 의미를 다룬다.
'나의 파우스트 - 영혼성' 또한 제단 형태로, 다양한 종교 심볼과 정신문화 상징 등을 영상과 오브제로 결합했다. 현대 문명 속에서 잃어버린 인간 정신의 본질을 다시 호출하고자 하는 작가의 의지를 표현했다.
1993년 대전 세계박람회(엑스포)에서 선보인 '전자초고속도로' 연작 중 하나인 '전자초고속도로 1929포드'도 눈길을 끈다. 1929년식 포드 모델 A 자동차 위에 전통 목가마를 결합한 형태다. 이동과 정착, 서구 산업 문명과 동양의 전통문화, 과거와 미래가 교차하는 백남준 특유의 시각 언어를 구현했다.
백남준은 1974년 '후기 산업사회를 위한 미디어 계획' 보고서에서 고속도로와 자동차 중심의 물류 기반 산업구조가 미래 사회에는 '전자초고속도로'를 통한 정보와 아이디어의 흐름이 중추가 될 것이라 예견했다. 오늘날 인터넷 세상을 미리 내다본 것이다.
전시장 입구에 들어선 '고대기마인상'은 경주와 현대미술의 만남을 상징한다.
1991년 우양미술관의 전신인 아트선재미술관 설립을 기념해 만든 작품이다. 텔레비전으로 형상화한 '기마인상(기사가 말을 탄 형상)'으로, 경주 금령총에서 출토된 '기마인물형토기'의 도상을 재해석했다. 백남준이 평생 천착해온 기술과 인간, 이동과 전파라는 주제와 맞닿아 있다.
이 밖에도 어린 시절 가족과 금강산 여행했던 기억을 담은 '금강산 여행기념', 동아시아 철학을 시각화한 '마음 심'과 '어질 인', 예술·기술·영성이 유기적으로 교차하는 지점을 시청각적 언어로 풀어낸 '음악 심' 등 총 12점의 백남준 작품을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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