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민광의 이집트 칼럼 #4] 와디 히탄의 기억: 태초에 예술이 태어나다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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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민광의 이집트 칼럼 #4] 와디 히탄의 기억: 태초에 예술이 태어나다①

문화매거진 2025-10-21 17:54:23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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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끝없이 펼쳐진 파윰의 와디 히탄 사막 길을 두 사람이 걷고 있다. 한때 바다였던 이 땅은 이제 고요한 모래의 파도 위로 인간의 발자국만 남는다 / 사진: 한민광 제공
▲ 끝없이 펼쳐진 파윰의 와디 히탄 사막 길을 두 사람이 걷고 있다. 한때 바다였던 이 땅은 이제 고요한 모래의 파도 위로 인간의 발자국만 남는다 / 사진: 한민광 제공


[문화매거진=한민광 작가] 이집트 ‘파윰(Fayoum)’ 서쪽 끝, 끝이 보이지 않는 사막의 품속에 자리한 ‘와디 히탄(Wadi al-Hitan, وادي الحيتان)’. 아랍어로 ‘고래의 계곡’이라는 뜻을 가진 이곳은, 이름 그대로 고래의 무덤이며 동시에 생명의 화석관이다.

카이로에서 남서쪽으로 약 220km 떨어진 이 땅은 지금은 한 방울의 물도 보이지 않지만, 약 4천만 년 전에는 넓고 깊은 바다였다.

이곳의 모래와 암석층은 그 바다의 숨결을 품고 있다. 하루에도 수십 번 색이 바뀌는 사막의 빛은 한때 바다 위로 반짝이던 물결의 흔적을 닮았다.

▲ 와디 히탄 박물관 내부에는 4천만 년 전 바다의 생명들이 복원되어 있다. 고래와 해양 파충류의 화석이 실제 크기로 전시되어, 사막 아래 숨겨진 바다의 시간을 보여준다 / 사진: 한민광 제공
▲ 와디 히탄 박물관 내부에는 4천만 년 전 바다의 생명들이 복원되어 있다. 고래와 해양 파충류의 화석이 실제 크기로 전시되어, 사막 아래 숨겨진 바다의 시간을 보여준다 / 사진: 한민광 제공


와디 히탄은 지질학자와 고생물학자들에게 ‘진화의 교과서’라 불린다. 이곳에서 발견된 고래 화석들은 육상 포유류가 바다로 돌아간 과정을 보여주는 결정적 증거다. 네 발로 걸었던 동물이 물속으로 되돌아가며, 다리는 퇴화하고 척추는 유연해지고, 귀의 구조는 수중 청각에 적응했다.

그 모든 변화의 흔적이 이 사막의 모래 속에 남아 있다. 그들은 지금도 모래 위에 누워, 바람에 맞으며 조용히 시간의 강을 건너고 있다.

▲ 모래 위 유려한 곡선을 그리며 이어진 것은 4천만 년 전 고래의 척추뼈다. 한때 바다를 헤엄치던 거대한 생명은 이제 사막 한가운데 누워, 시간의 흐름을 증언하고 있다. 바람과 모래가 덮고 드러내는 그 모습은 마치 자연이 만든 조각 작품 같다 / 사진: 한민광 제공
▲ 모래 위 유려한 곡선을 그리며 이어진 것은 4천만 년 전 고래의 척추뼈다. 한때 바다를 헤엄치던 거대한 생명은 이제 사막 한가운데 누워, 시간의 흐름을 증언하고 있다. 바람과 모래가 덮고 드러내는 그 모습은 마치 자연이 만든 조각 작품 같다 / 사진: 한민광 제공


그들의 곡선은 단지 생물학적 형태가 아니라, “자연이 만들어낸 가장 완벽한 선(線)”이다. 그 뼈의 리듬은 파도의 리듬을 닮았고, 그 형태의 유려함은 살아 있던 시절의 움직임을 연상시킨다.

생명은 사라졌지만, 형태는 남았다. 그 남은 형태가 바로 ‘예술’이다.

▲ 수천만 년의 바람과 모래가 깎아 만든 와디 히탄의 기암들은 마치 다른 행성의 풍경처럼 보인다. 사막의 침묵 속에서 자연은 스스로 조각가가 되어 시간의 예술을 완성했다 / 사진: 한민광 제공
▲ 수천만 년의 바람과 모래가 깎아 만든 와디 히탄의 기암들은 마치 다른 행성의 풍경처럼 보인다. 사막의 침묵 속에서 자연은 스스로 조각가가 되어 시간의 예술을 완성했다 / 사진: 한민광 제공


와디 히탄의 풍경은 처음 보는 사람에게 ‘비현실적’이다. 모래바람이 만든 곡선 언덕과 침식된 바위의 기묘한 형태들은 인간의 손이 닿지 않은 예술 작품처럼 보인다. 수백만 년 동안 바람은 이 땅의 유일한 조각가였다. 그는 강한 햇빛과 건조한 공기를 붓 삼아 바위의 표면을 조금씩 깎아냈다. 그 반복된 시간의 터치가 지금의 와디 히탄을 완성했다.

▲ 바람과 시간의 조각이 만들어낸 바위들은 물고기의 머리, 코끼리의 발처럼 생명을 닮았다. 자연은 의도하지 않았지만, 그 무의식 속에서 예술의 형상을 빚어냈다. 와디 히탄의 바위들은 말없이 존재하면서도, 창조의 기억을 조용히 증언하고 있다 / 사진: 한민광 제공
▲ 바람과 시간의 조각이 만들어낸 바위들은 물고기의 머리, 코끼리의 발처럼 생명을 닮았다. 자연은 의도하지 않았지만, 그 무의식 속에서 예술의 형상을 빚어냈다. 와디 히탄의 바위들은 말없이 존재하면서도, 창조의 기억을 조용히 증언하고 있다 / 사진: 한민광 제공


바위 중에는 기이하게도 동물의 형상을 닮은 것들이 많다. 물고기의 머리, 코끼리의 발, 혹은 인간의 옆얼굴 등. 그것은 우연이지만, 동시에 자연이 만든 ‘무의식적인 예술’이다. 인간의 조각가가 상상으로 만들어내는 형태를, 자연은 무심히 창조했다. 그 차이가 인간 예술과 자연 예술의 경계일 것이다. 자연은 ‘보이기 위해’ 만들지 않는다. 단지 존재할 뿐이다. 그 ‘무심함’ 이야말로 가장 순수한 미학이 아닐까?

하루 동안만 이곳에 머물러도 색의 변화는 수십 번 반복된다. 아침에는 금빛, 정오에는 하얗게 빛나고, 해 질 무렵에는 붉은 주황빛으로 타오른다. 이 변화는 누가 의도한 것도, 조작한 것도 아니다. 그러나 그 조화는 어떤 화가의 붓질보다 정교하다. 빛과 바람이 만들어낸 모래 위의 추상화…  그것이 와디 히탄의 본모습이다. 사막의 표면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모래의 결마다 다른 음영이 스며 있다.

그 결의 무늬가 파도의 흔적처럼 반복되고, 그 사이로 화석의 흰빛이 반사된다. 이 풍경 속에는 수천만 년의 시간이 겹쳐져 있다. 그 겹침이 바로 예술의 층위다. 예술이 단순한 순간의 결과가 아니라 시간의 누적된 숨결이라는 것을 와디 히탄은 보여준다.

▲ 와디 히탄의 아침. 해가 떠오르며 사막과 고래의 뼈를 황금빛으로 물들인다.수천만 년의 시간이 빛 속에서 깨어나 생명의 기억이 다시 숨을 쉰다 / 사진: 위키피디아 제공
▲ 와디 히탄의 아침. 해가 떠오르며 사막과 고래의 뼈를 황금빛으로 물들인다.수천만 년의 시간이 빛 속에서 깨어나 생명의 기억이 다시 숨을 쉰다 / 사진: 위키피디아 제공


고래 화석을 따라 걸으며 문득 그런 생각이 든다. ‘예술이란 생존의 흔적일지도 모른다.’ 진화는 생존을 위한 전략이지만, 그 과정에서 생명은 스스로의 형태를 빚는다. 그 형태가 기능을 넘어 아름다움으로 느껴질 때, 그것은 예술이 된다.

진화는 ‘스스로 살기 위한 변화’였지만, 그 결과는 ‘아름다움’이었다. 마치 인간이 무언가를 이해하지 못해도 그 아름다움 앞에서 멈춰 서듯, 자연은 우리에게 설명 대신 감탄과 경외감을 남긴다. 그것이 와디 히탄의 진짜 우리에게 하고자 하는 이야기다.

▲ 사막 한가운데 자리한 와디 히탄 박물관은 자연과 완전히 어우러진 건축물이다 / 사진: 한민광 제공
▲ 사막 한가운데 자리한 와디 히탄 박물관은 자연과 완전히 어우러진 건축물이다 / 사진: 한민광 제공


와디 히탄의 박물관은 자연의 일부처럼 보인다. 돔 형태의 건물은 마치 모래언덕이 살짝 부풀어 오른 듯하고, 벽의 질감은 주변 바위와 구분되지 않는다. 태양 아래 그 건물은 빛에 녹아 사라졌다가, 그림자 속에서 다시 모습을 드러낸다. 건축가들은 이곳에서 “자연을 모방하는 건축”이 아닌 “자연에게 허락받은 공간”을 만들고자 했다.

건축이 자연을 담는 그 순간, 인간의 예술은 겸손해진다. 이곳에서 인간은 창조자가 아니라, 관찰자이며 기록자다. 자연이 보여주는 선과 색, 질감과 리듬을 배워 그것을 다시 담아내는 일… 그것이 와디 히탄이 가르치는 예술의 태도다.

▲ 한 남자가 사막 위에 드러난 고대 고래의 화석 앞에 조용히 서 있다. 수천만 년의 시간이 잠든 자리에서, 인간은 잠시 과거와 마주 선다 / 사진: 한민광 제공
▲ 한 남자가 사막 위에 드러난 고대 고래의 화석 앞에 조용히 서 있다. 수천만 년의 시간이 잠든 자리에서, 인간은 잠시 과거와 마주 선다 / 사진: 한민광 제공


바람은 말이 없다. 그러나 그것은 이 사막의 유일한 화가다. 그 침묵 속에서, 우리는 예술의 본질을 배운다. 예술이란 결국 말하지 않으면서 말하는 것, 멈춰 있으면서 움직이는 것이다. 시간은 그려지고, 공간은 조각된다. 그리고 인간은 그 안에서 잠시 내가 어떤 존재인지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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