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패션 브랜드 '자라'로 더욱 유명한 스페인 대표 패션기업 '인디텍스그룹'의 경영권 분쟁 가능성이 고개를 들고 있다. 그룹을 소유한 '오르테가(Ortega)' 가문 내부의 내홍 가능성 때문이다. 주변의 예상을 뒤엎고 창업주 둘째 부인의 자녀에게 경영권이 넘어가면서 첫째 부인 자녀와의 다툼 가능성이 높게 점쳐지고 있는 것이다. 오르테가 가문이 소유한 인디텍스(Inditex) 그룹은 아르노(Arnault) 가문의 LVMH그룹에 이어 유럽 재계 서열 2위에 올라 있다. 주력 기업인 인디텍스의 시가총액은 약 1487억달러(약 211조원)에 달하며 그룹을 소유한 오르테가 가문의 재산 규모는 약 1290억달러(약 185조원) 수준으로 알려졌다.
스페인 최고 재벌의 은밀한 사생활…17년 정체 숨긴 혼외자 승계에 전 세계 '깜짝'
인디텍스그룹 창업주 아만시오 오르테가는 철도 근로자의 아들로 태어나 1963년 목욕가운 제작 공방 '콘펙시오네스 고아(Confecciones GOA)'를 설립하며 패션 산업에 첫발을 내디뎠다. 당시 첫 번째 부인이었던 로살리아 메라(Rosalia Mera)는 직접 재봉과 생산을 담당하며 사업을 적극 도왔다. 로살리아의 뛰어난 사업적 감각과 실무 능력 덕분에 사업은 빠르게 번창했다. 두 사람은 장녀 산드라 오르테가(Sandra Ortega)와 장남 마르코스 오르테가(Marcos Ortega)를 낳았다. 이들 중 장남 마르코스는 선천적 뇌성마비를 앓은 탓에 어렸을 적부터 지금까지 가족들의 보살핌을 받아야 했다.
1975년 아만시오는 지금의 인디텍스그룹을 만든 SPA 패션 브랜드 '자라'를 출범시키며 본격적으로 패션 프랜차이즈 사업에 진출했다. 당시 로살리아가 생산을, 아만시오는 영업 및 판매를 각각 담당했다. 이 시점에 제작 공방이던 '콘펙시오네스 고아'는 자라 제품 생산을 전담하는 제조 기반 업체로 탈바꿈됐다. 생산과 판매의 분리는 당시로서는 매우 혁신적인 구상이었으며 자라가 글로벌 패션 브랜드로 성장하는 원동력이 됐다. 이 구조를 설계하고 시행한 인물은 로살리아로 알려져 있다. 이후 아만시오는 1985년 인디텍스를 설립하며 글로벌 패션그룹의 지주 구조를 확립했다.
그런데 인디텍스 설립 이듬해인 1986년 아만시오와 로살리아는 돌연 이혼을 발표했다. 그 배경에는 아만시오의 불륜설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는 1984년 자라 사무직 직원이던 플로라 페레스(Flora Pérez)와의 관계를 맺었고 그 결과 혼외자인 마르타 오르테가(Marta Ortega)가 태어났다. 이혼 과정에서 로살리아는 인디텍스 설립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막대한 지분을 넘겨 받았다. 아만시오의 혼외 자녀 출산 사실은 아만시오가 플로라와 결혼한 2001년까지 외부에 전혀 알려지지 않았다.
1975년까지 간통이 형사 범죄로 분류될 정도로 가정 윤리에 보수적인 스페인의 사회적 인식 때문에 아만시오가 마르타의 존재를 17년 가량 숨겼다는 게 유럽 재계의 정설이다. 실제로 스페인 현지에선 창업 일등 공신인 조강지처를 배신했다는 것이 아만시오의 최대 흠결로 꼽히고 있다. 더욱이 아만시오가 2021년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면서 둘째 부인과의 사이에서 낳은 마르타를 후계자로 지목해 그에 대한 평가는 더욱 가혹해졌다. 일부 도시에선 자라 불매 운동까지 벌어졌을 정도였다.
본처·후처 자녀 간 냉랭한 기류, 여론은 본처 자녀에 한 표…"창업주 사망 이후 장담 못해"
주목되는 점은 첫째 부인과의 사이에서 낳은 산드라와 후계자로 지목한 마르타의 미묘한 관계다. 이복자매 관계인 두 사람은 일절 교류를 하지 않고 있다. 사업상으로 대주주와 경영자 관계임에도 공식석상에 함께 모습들 드러낸 사례가 전무하다. 마르타의 두 번의 결혼식에서도 산드라의 모습을 볼 수 없었다. 마르타는 서지오 알바레즈(Sergio Alvarez)와 이혼한 뒤 스페인 명문가 출신인 카를로스 토레테(Carlos Torreta)와 재혼했다. 과거 한 스페인 현지 언론은 "2013년 로살리아가 세상을 떠나고 산드라는 플로라와 마르타에 대한 관심을 끊었다"며 "그들의 세상에는 서로가 없고 완전히 단절됐다"는 논평을 내기도 했다.
유럽 현지에서는 산드라와 마르타가 지금 당장은 불화설이 없지만 향후 유산 상속에 과정에서 크게 맞붙을 것이라는 전망이 주를 이루고 있다.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긴 했지만 여전히 아만시오 개인 재력이 상당하기 때문이다. 산드라가 친부 재산의 소유권을 주장하고 나설 경우 인디텍스그룹 지배구조에도 상당한 변화가 불가피할 전망이다. 현재 아만시오는 '폰테가데아 이베르시오네스(Pontegadea Inversiones, S.L.)'와 '파틀러 파르티시파시오네스(Partler Participaciones S.L.U.)' 등 자신이 소유한 두 곳의 투자회사를 통해 지주사인 인디텍스 지분 각각 50.01, 9.28%를 쥐고 있다.
현재 인디텍스는 자라를 비롯해 △풀앤베어(Pull&Bear) △마시모 두티(Massimo Dutti) △자라홈(Zara Home)△ 벌쉬카(Bershka) 등의 패션 자회사를 소유하고 있다. 또 △원자재 구매업체 코미텔(Comitel) △섬유제조사 콘펙시오네스 고아 △물류회사 자라 로지스틱(Zara Logistic) 등의 최대주주에 올라 있다. 그룹 자체적으로 생산부터 유통, 판매 등의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는 셈이다.
스페인 재계 등에 따르면 아만시오가 마르타를 후계자로 낙점한 만큼 조만간 지분 50.01%를 쥐고 있는 '폰테가데아 이베르시오네스'를 물려주며 자연스럽게 경영권을 이양하는 식으로 경영승계를 매듭지을 것으로 점쳐진다. 다만 그 과정에서 '유산 소송'이라는 변수 발생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산드라 역시 아만시오의 자녀인 이상 동등한 배분을 요구할 자격이 있기 때문이다. 이럴 경우 마르타 중심의 지배구조 구축에 상당한 차질이 예상된다.
산드라는 이미 어머니 로살리아에게 물려받은 투자회사 '로스프 코루나 파르티시 파시오네스(Posp Corunna Participanciones S.L.)'를 통해 인디텍스 지분 5.05%를 소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유산의 균등 분배를 요구한다면 산드라는 뇌성마비를 앓고 있는 동생 마르코스의 법적 대리인 자격으로 마르타보다 두 배 이상의 지분을 확보할 가능성도 존재한다. 새엄마인 플로라까지 유산 상속에 나서 4명이 지분을 나눠가진다 해도 산드라 소유 지분율은 마트라에 비해 최소 5% 이상 높아진다.
스페인 현지 여론 또한 산드라 쪽으로 크게 기울어져 있다. 아만시오의 첫째 부인인 로살리아를 두고 '자라의 공동창업주나 마찬가지인데도 불륜으로 버림받았다'는 동정 여론이 상당한 편이다. 산드라 또한 수십 년간 장애인 동생을 돌보며 장애인 복지 단체에 꾸준히 기부 활동을 해온 덕분에 국민적 호감을 사고 있다. 반면 마르타에 대해선 혼외자 신분에 경영권을 차지한데다 첫째 남편을 버리고 스페인 명문가 자녀와 두 번째 결혼을 했다는 비판 여론이 상당한 편이다. 앞서 마르타가 회장에 올랐을 당시 인디텍스 주가가 무려 6% 가까이 떨어지기도 했다.
유럽 패션업계 관계자는 "아직까진 마르타가 안정적으로 그룹을 이끌고 있고 산드라 측의 움직임도 감지되진 않는다"며 "그러나 아만시오가 세상을 떠난 이후 개인 재산의 상속 방식과 산드라가 어떤 선택을 할 지 여부에 따라 인디텍스그룹 내부에 상당한 혼란이 생겨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겉으로는 꽤 안정적으로 보이지만 오르테가 가문의 내부 균열은 언제든 터질 수 있는 시한폭탄과 같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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