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 깊어지면 갯벌에도 변화가 찾아온다. 바람이 차가워질수록 진흙 속에서 여름 내내 숨죽이던 생명들이 하나둘 모습을 드러낸다. 그중에서도 유독 괴상한 생김새로 눈길을 끄는 생선이 있다. 바로 ‘개소겡’이다.
개소겡은 한눈에 보면 마치 외계 생물을 떠올리게 하는 기묘한 얼굴을 하고 있다. 눈은 작고 입은 훨씬 크며, 그 안에는 바늘처럼 날카로운 이빨이 촘촘히 박혀 있다. 몸은 뱀장어처럼 길고 미끄럽다. 이런 생김새 때문에 처음 보는 사람은 깜짝 놀라 먹는 생선이라고는 상상하지 못한다. 하지만 전라도 어민들에게 개소겡은 오래된 갯벌의 맛을 품은 귀한 생선이다.
갯벌 속 ‘에일리언’이라 불리는 물고기
개소겡은 망둑엇과에 속하는 바닷물고기로, 한국 서남 연해를 비롯해 일본 남부와 필리핀, 인도차이나 등 아열대 해역에 분포한다. 전라도 지역에서는 ‘대갱이’라 부르는 것이 일반적이다. 몸길이는 약 30cm 정도로 길고 원통형이며, 꼬리 쪽으로 갈수록 납작해진다.
개소겡의 가장 큰 특징은 시력이 거의 퇴화했다는 점이다. 대신 머리 윗부분의 피트 기관으로 주변 온도 변화를 감지하며, 뱀처럼 움직임을 느껴 순식간에 먹잇감을 낚아채는 포식자다. 갯벌 속에서는 대롱 모양의 굴을 여러 개 파고 그 안에서 수컷과 암컷이 함께 산다. 보통 3~5개의 구멍을 만들어 놓고, 깊은 진흙 속에 몸을 숨긴 채 생활한다. 외국에서는 이런 생김새를 낯설어한다. 일본과 말레이시아, 호주 등지에서는 ‘에일리언 피시’라 불리며 신기한 생물로 소개되곤 한다.
귀한 사람만 맛볼 수 있었던 생선
한국에서는 오래전부터 개소겡을 식용으로 즐겨왔다. 민물을 따라 갯벌로 들어오는 습성이 있어, 순천만·보성만·고흥 일대 어민들은 이를 이용해 봄부터 여름 사이 물살이 잔잔해질 때 미리 그물을 설치했다. 새벽녘이 되면 그물에 걸린 개소겡을 건져 올렸다.
예전에는 철마다 시장에 오를 만큼 흔했지만, 지금은 거의 보기 어렵다. 한때 순천·보성·여수 일대에서는 ‘대갱이철’이 따로 있을 정도로 풍어를 자랑했다. 그러나 남획과 환경 변화로 개체 수가 급격히 줄어 이제는 일부 지역에서만 소량 잡힌다.
당시에는 잡히는 양이 많았지만 대부분 일본으로 수출돼 일반 사람들은 맛보기 어려웠다. 전해지는 말에 따르면 귀한 손님이 오거나 잔치가 있을 때만 상에 올랐다고 한다. 일본에서는 대갱이를 남성의 스태미너를 돕는 보양식으로 여겼으며, 지방이 거의 없고 단백질 함량이 높아 피로 해소에 좋고 오메가3 지방산이 풍부해 혈액순환을 돕는다고 알려져 있다.
‘명태포 맛’ 나는 진미
개소겡은 주로 말려서 무침이나 구이로 먹는다. 특히 전라도에서는 손질한 개소겡을 말린 뒤 불에 노릇하게 구워 밥반찬으로 내거나, 매콤한 양념에 버무린 ‘개소겡 무침’으로 즐긴다.
잡은 개소겡은 쉽게 상하기 때문에 배 위에서 바로 손질해야 한다. 내장을 제거하고 살을 펼쳐 말린 다음, 굵은 뼈가 부서질 때까지 여러 번 두드리면 속 뼈가 잘게 부서지면서 살과 분리된다. 이렇게 손질된 개소겡은 바삭하면서도 쫄깃한 질감이 살아나고, 명태포처럼 고소한 향이 돌아 씹을수록 은은한 단맛이 퍼진다.
무침을 만들 때는 먼저 구운 개소겡을 한입 크기로 찢어 뜨거운 상태로 준비한다. 양념장은 고추장 1과 1/2큰술, 간장 1큰술, 올리고당 1큰술, 다진 마늘 2/3큰술, 참기름 1큰술을 섞어 만든다. 여기에 개소겡을 넣고 바로 무치면 양념이 살에 깊이 배어든다. 마지막으로 깨 조금 뿌려주면 새콤달콤하면서도 구수한 풍미가 밥반찬으로 제격이다.
또 다른 조리법으로는 잘게 부순 개소겡 가루를 중불에서 덖다가 고추장을 넣고 천천히 볶아내는 ‘개소겡 고추장’이 있다. 밥 위에 한 숟가락 올리면 짭조름한 향이 퍼지며 식욕을 돋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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