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셔틀외교’ 재가동한 李, 다카이치 日 총리 등장에 외교력 시험대

[이데일리 황병서 기자] 다카이치 사나에 자민당 총재가 21일 일본 총리로 취임했다. 한일 관계가 새로운 국면을 맞을 것으로 보인다. 이재명 대통령이 취임 후 ‘셔틀 외교’를 복원하며 관계 정상화를 이끈 가운데, 강한 안보 노선과 보수 성향으로 알려진 다카이치 총리와 어떤 관계를 이어갈지 주목된다.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신임 총리(사진=AFP)

다카이치 총리는 이날 열린 임시국회 중의원 본회의 총리 지명선거에서 465표 중 237표를 얻어 과반을 넘겼다. 참의원 투표 결과가 다르더라도 중의원 결정을 우선하기 때문에 총리직에 오른다. 그는 일본이 1885년 내각제를 도입한 이래 제104대 총리이자 사상 첫 여성 총리다. 10선 중의원 의원인 다카이치 총리는 경제안보담당상, 총무상, 자민당 정무조사회장 등을 지냈다. 세습 정치인이 아닌 자수성가형 여성 정치인으로 ‘유리천장’을 깬 인물로 평가받는다. 여기에 이재명 대통령도 축하 메시지를 낼 가능성이 큰 것으로 전해졌다.

고(故) 아베 신조 전 총리의 핵심 측근으로, ‘아베노믹스’의 후계자이자 보수층의 지지를 받아온 다카이치 총리의 등장은 한일관계의 불확실성을 키운다는 분석도 있다. 그가 자국 우선주의를 강화할 경우 과거사 문제와 셔틀외교 복원 등 한일 협력에 차질이 빚어질 수 있다는 전망이다.

다카이치 총리는 위안부 문제 등 과거사에 강경한 입장을 보여왔다. 독도에 대해서도 일본의 영유권을 꾸준히 주장해왔다. 지난달 27일 자민당 총재 선거 토론회에서는 “‘다케시마(독도의 일본 명칭)의 날’ 행사에 내각 장관이 당당히 참석해야 한다”며 “독도가 일본 영토임을 분명히 해야 한다”고 말했다.

다만, 그는 한일 관계의 중요성도 인식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지난달 24일 자민당 총재 후보 토론회에서 “한일관계를 심화시키고, 안보 환경을 고려해 한미일 3국 협력을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또 미·일 동맹을 유지하되, 미일 무역 협정의 불평등 문제에 대해 한국과의 협력을 통해 대응할 여지를 시사했다.

한일 양국은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를 계기로 정상회담 등의 방식을 통해 만날 가능성이 크다. 다카이치 총리의 첫 방한이 될 이번 회담이 향후 한일관계의 방향을 가늠할 분수령이 될 전망이다. 이재명 대통령 역시 한일관계를 “앞마당을 함께 쓰는 이웃”으로 표현하며 “오른손(과거사)으로 싸워도 왼손(안보·경제 등 협력)은 잡아야 한다”고 말해왔다. 이 때문에 이번 변화는 긴장과 기회가 공존하는 ‘새로운 국면’이 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국내 전문가들은 다카이치 총리가 보수 성향임에도 불구하고 초기에는 신중한 행보를 보일 것으로 내다본다.

이지평 한국외대 특임교수는 “다카이치 총리가 강경 보수이긴 하지만 한일 관계가 워낙 중요한 시점이고 정권 기반도 조금은 약해서 초기에는 조심스럽게 정권을 운영할 가능성이 높다”며 “(한일 간의) 극심한 충돌은 없을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경제뿐 아니라 안보 측면에서도 일본이 한국을 필요로 한다”며 “한국과 관계가 있는 고이즈미 신지로 농림수산상을 방위상에 내정한 것도 (한일 간) 안보 협력을 이어가려는 의도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이재명 대통령이 21일 용산 대통령실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