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썰 / 최소라 기자] 코스피가 사상 처음 3800선을 돌파하며 새 이정표를 세웠지만, 상승의 온기는 일부 대형주에만 집중되고 있다. 외국인 매수세가 반도체와 2차전지 등 대형 성장주에 몰리면서 ‘코스피 독식 구조’가 심화되고 있다. 중소형주와 코스닥은 여전히 변두리에 머물고 있다.
◇대형주 쏠림, 지수 상승의 이면
21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지난달 1일부터 이날까지 ‘코스피 대형주’ 지수는 23.6% 올라 같은 기간 코스피 상승률(20.5%)을 웃돌았다. 반면 ‘코스피 중형주’와 ‘소형주’ 지수는 각각 4.9%, 1.2% 상승에 그쳤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일부 종목이 지수를 견인한 반면, 대다수 종목은 상승장을 체감하지 못하고 있다.
코스닥도 사정은 비슷하다. 같은 기간 코스닥 지수는 9.5% 상승에 그쳤으며, 코스닥 대형주는 10.0%, 소형주는 3.1% 상승에 머물렀다.
결국 ‘3800시대의 주역은 소수의 대형 반도체였다’는 해석이 나온다.
◇외국인 매수와 머니무브, 쏠림의 구조적 배경
이번 랠리의 중심에는 외국인 자금이 있다. 지난달부터 이날까지 외국인은 유가증권시장에서 13조원어치 주식을 순매수했다.
순매수 상위권은 ▲삼성전자 ▲삼성전자우 ▲두산에너빌리티 ▲SK하이닉스 등 대형주가 대부분이다.
이 기간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주가는 각각 84%, 179% 급등했다. 두 기업의 시가총액 합계는 995조 원으로, 코스피 전체의 30%를 웃돈다.
이경민 대신증권 연구원은 “외국인 수급이 2차전지와 반도체 대형주로 집중되면서 코스피의 상승 동력이 특정 업종에 편중됐다”고 분석했다.
또 하나의 배경은 이른바 ‘머니무브(Money Move)’다.
이재명 정부 출범 이후 부동산 규제가 강화되면서 부동산 대신 주식시장, 그중에서도 안정성과 자산가치가 높은 대형주로 자금이 이동한 셈이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유동성이 풍부할 때는 자산가치가 큰 코스피 대형주로 자금이 먼저 몰리는 경향이 있다”며 “부동산 규제가 강화된 지금, 자산가들이 대체 투자처로 코스피 대표주를 택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반도체 중심 장세, 내년까지 이어질 듯
증권가는 대형주 중심의 장세가 단기 현상에 그치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김동원 KB증권 연구원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글로벌 메모리 반도체 및 HBM 시장의 80%를 점유하면서도 경쟁사 대비 각각 52%, 26% 할인 거래되고 있다”며 “가격 매력이 여전히 높다”고 진단했다.
이재만 하나증권 연구원도 “반도체 업종의 주가수익비율(PER) 기준으로 약 27%의 추가 상승 여력이 남아 있다”며 “코스피는 반도체만으로도 약 9% 추가 상승이 가능하다”고 분석했다.
결국 외국인 자금이 유입되는 한, 반도체 중심의 ‘대형주 독주’ 구도는 내년까지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는 게 중론이다.
◇실적 모멘텀 중심 확산 조짐…“온기, 중소형주로 번질까”
다만 이번 상승세가 대형주에만 머물지는 않을 전망이다.
이성훈 키움증권 연구원은 “9월까지는 반도체 일변도의 장세였지만 최근에는 2차전지, 자동차, 전력기기, 증권 업종 등으로 상승세가 확산되는 조짐이 나타난다”며 “본격적인 실적 시즌에 진입하면서 실적 모멘텀을 가진 개별 종목 중심으로 강세가 퍼질 것”이라고 말했다.
한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도 “삼성전자·SK하이닉스 등에서 차익을 실현한 자금이 점차 중소형주로 이동할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봤다.
김민규 KB증권 연구원은 팬데믹 당시를 상기시키며 “2021년 코스피가 3000선을 처음 돌파했을 때도 초반에는 대형주가 주도했지만 이후 중소형주로 상승세가 확산됐다”며 “이번에도 유사한 흐름이 재현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고배당주에도 주목해야 한다”며 보험, 증권, 유틸리티 업종을 유망 종목으로 꼽았다.
결국 시장의 다음 분기점은 ‘반도체 독식’ 이후 자금이 어디로 흘러가느냐에 달려 있다는 분석이 힘을 얻고 있다.
◇대형주 독식의 시대, 균형으로 갈 수 있을까
‘코스피 3800 시대’는 한국 자본시장의 양극화를 다시 드러냈다.
단기적으로는 외국인 수급과 반도체 업황 개선이 지수를 견인하겠지만, 장기적으로는 실적 기반의 중소형주와 고배당주로 자금이 분산되는 구조적 전환이 이루어질지가 향후 시장의 지속성을 결정할 전망이다.
Copyright ⓒ 직썰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본 콘텐츠는 뉴스픽 파트너스에서 공유된 콘텐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