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신문 성기노 기자】일본 역사상 첫 여성 총리가 탄생했다. 오늘 집권 자민당의 다카이치 사나에 총재가 제104대 총리로 선출됐다. 일본에서 여성 총리가 선출된 것은 메이지 헌법에서 내각제를 도입해 1885년 초대 총리로 이토 히로부미를 선임한 이후 140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다.
다카이치 자민당 총재는 21일 소집된 임시국회 중의원 본회의에서 치러진 총리 지명 선거에서 전체 465표 중 237표를 얻고 승리했다. 1차 투표에서 과반(233표) 득표에 성공해 결선투표로 넘어가지 않고 승리를 확정했다.
자민당(196석)과 제2야당인 유신회(35석), 일부 무소속 의원이 다카이치 총재에게 투표한 것으로 보인다. 앞서 지난 10일 자민당은 공명당과 기업·단체의 후원금 규제 강화 부문에서 합의점을 찾지 못해 1999년부터 이뤘던 연정이 26년 만에 붕괴됐다. 이로써 자민당은 유신회를 새로운 연정 파트너로 삼고 공동 국정운영을 펼쳐 나갈 것으로 보인다.
다카이치 총재는 1993년 중의원 선거에서 처음으로 국회에 입성한 관록의 10선 의원이다. 보수 성향의 자민당 안에서도 아베 전 총리 뒤를 잇는 강경파로 분류된다. 총무상과 경제안보담당상, 자민당 정조회장 등을 지내 총리로서는 손색없는 정치적 경력도 쌓았다.
다카이치는 이날 나루히토 일왕의 내각총리대신 임명장을 받고 새 내각을 출범시킬 예정이다. 이로써 이시바 시게루 내각은 각료회의에서 총사퇴했다. 이시바 총리는 지난해 10월 1일 취임한 뒤 386일의 집권기를 끝내고 물러나게 됐다.
한편 일본 정치계에서 대표적인 ‘아베주의’ 계승자로 불리는 다카이치의 등극에 따라 향후 한일관계에는 상당한 영향을 받을 전망이다. 그는 과거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공개적으로 옹호했고 위안부 합의나 강제징용 판결 문제에 대해서도 “이미 해결된 사안”이라는 입장을 고수해왔다.
전임 총리였던 이시바와 달리 다카이치는 적어도 역사 문제에 있어서는 퇴행적인 행보를 거듭해왔다. 이는 한일관계의 단기적 경색 요인이 될 수 있다.
이번에 자민당이 공명당 대신 일본유신회와 손을 잡은 것도 향후의 대외정책 변화를 예고한다. 유신회는 오사카 기반의 개혁보수 세력으로 경제 자유화와 방위력 강화, 헌법 개정을 강하게 지지하는 포퓰리스트 정당으로 여겨진다.
이렇게 자민당-유신회 연정이 굳어지면 일본은 한층 더 안보 우경화와 자위대의 군사적 자율성 확대로 나아갈 가능성이 크다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민주당의 한 외교 관련 전문가는 이에 대해 “한일 관계에 당장 급격한 변화는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전임 이시바 전 총리와 이재명 대통령 간에 어렵사리 쌓아 놓은 신뢰와 협력의 기반이 쉽게 무너지지는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한일 간 안보 협력은 겉으론 공조를 말하더라도 실상은 자국의 이익을 극단적으로 추구하는 실리 위주의 동맹 성격을 띨 가능성이 높다”라고 전제하면서 “일본이 유신회와의 연정을 통해 안보 자율성을 강화하면 이는 곧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 속에서 일본이 더 큰 역할을 자임하겠다는 뜻이기도 하다. 한국 입장에선 미일 공조의 틈바구니 속에서 주체적 외교 공간이 줄어들 위험성이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이재명 정부는 일본의 안보 행보를 경계하면서도 한일 간 경제, 기술, 기후 협력같은 국익에 도움이 되는 실질적인 이해 영역을 중심으로 새로운 균형점을 찾아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재명 정부는 그간 대일 외교에서 윤석열 정부와 달리 ‘존엄한 외교’를 표방해왔다. 따라서 다카이치의 역사인식 발언이나 독도 관련 도발이 있을 경우 즉각적인 공식 항의와 외교 채널의 강력 대응이 예상된다. 더구나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대표 등의 대일 강경파들이 여당의 외교관계를 주도하고 있기 때문에 이 과정에서 정부와의 대응 수위 조절 등 갈등도 예상된다.
다카이치 내각이 미일 동맹을 강화하면 한국은 자연히 한미일 3각 협력 내에서 외교적 공간이 축소될 수 있다. 결국 이재명 정부의 외교력은 ‘역사와 현실을 동시에 다루는 능력’, 다시 말하면 서생의 문제의식과 상인의 실리를 동시에 추구해야 하는 시험대에 서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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