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1인당 구매력, 대만보다 낮아…인플레이션이 격차 벌려

[사진=연합뉴스]

한국 국민이 실제로 느끼는 1인당 국내총생산(GDP) 수준이 대만보다 연간 약 2만 달러 낮다는 국제통화기금(IMF) 분석이 나왔다. 명목 GDP만 보면 올해 한국이 22년 만에 대만을 따라잡을 것으로 보이지만, 실제 체감과 더 가까운 구매력평가(PPP) 기준 1인당 GDP에서는 이미 큰 차이가 벌어져 있다는 것이다.

IMF가 지난 15일 발표한 '세계경제전망' 보고서에 따르면, 올해 한국의 PPP 기준 1인당 GDP는 6만5,080달러로 예상된다. 지난해(6만2,885달러)보다 3.5% 늘어난 수치다. 반면 대만은 8만5,127달러로, 한국보다 약 2만 달러가 더 높게 나타났다. 세계 순위로 보면 한국은 35위, 대만은 12위에 자리했다.

PPP 기준 GDP는 나라별 물가 차이를 반영해 실제 생활 수준을 비교하는 수치다. 같은 돈으로 살 수 있는 재화와 서비스의 양을 기준으로 삼기 때문에, 물가가 낮을수록 더 높게 평가받는다. 한국의 PPP 1인당 GDP는 1980년 2,200달러, 1990년 7,741달러, 2000년 1만7,432달러, 2010년 3만2,202달러, 2020년 4만7,881달러 등으로 꾸준히 올라왔다.

대만도 비슷한 기간 동안 상승폭이 컸다. 1980년엔 3,214달러였던 것이 2020년에는 5만7,996달러, 올해는 8만5,127달러까지 늘어났다. 명목 GDP로만 보면 올해 대만이 3만7,827달러, 한국은 3만5,962달러로 둘의 차이는 크지 않지만, PPP 기준에서는 이미 확연한 격차가 났다.

IMF는 한국과 대만 사이에 실질 구매력 차이가 벌어진 주된 요인으로 인플레이션, 즉 물가 상승률 차이를 꼽았다. 코로나19 이후 한국은 연간 물가 상승률이 꾸준히 대만보다 높았다. 한국은행 자료를 보면, 한국의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2021년 2.5%, 2022년 5.1%, 2023년 3.6%, 2024년 2.3%였던 반면, 대만은 1.97%, 2.95%, 2.49%, 2.18%로 한국보다 상대적으로 안정적이었다.

물가 안정은 실질 구매력 유지를 위해 중요하다. 대만의 올해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주요 투자은행 전망을 기준으로 1.7%, 내년에는 1.5%로 예측된다. 반면 한국은 기본 생필품 가격이 많이 올랐는데, 한국은행 조사 결과 가공식품 4.2%, 수산물 6.4%, 축산물 5.4% 등 품목별 물가 상승폭이 컸다.

이와 관련해 이재명 대통령은 최근 국무회의에서 "왜 식료품 물가만 이렇게 오르나"라며 정부 역할을 지적했다. 이에 대해 한국은행 경제연구원장과 총재는 인건비와 임대료 상승, 농가 생산성 저하, 농산물 공급 다양성 부족 등을 원인으로 꼽았고, 구조 개혁과 시장 개방 등의 장기적 대응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번 IMF 보고서를 보면 한국 국민의 체감 경제력과 실제 생활 수준이 명목 GDP와는 다를 수 있다는 점을 다시 생각하게 한다. 숫자로만 보면 한국 경제가 대만을 따라잡는 듯 보이지만, 물가와 실질 구매력 차이까지 고려하면 실제로 느끼는 경제력에는 아직 격차가 있다.

경제 전문가들은 "단순히 GDP 성장률이나 명목 수치만으로 국민 생활 수준을 평가하는 건 한계가 있다"며, "소비자 체감 물가와 PPP 기준 GDP를 함께 고려하는 정책이 필요하다"고 조언한다. 필수품·생필품 가격 상승처럼 '실제 피부에 와닿는 경제력' 문제는 사회적 부담으로도 이어질 수 있어, 정책적 대응이 그만큼 중요하다는 목소리도 크다.

한편 한국의 PPP 기준 1인당 GDP는 2026년 6만7,554달러, 2027년 7만274달러, 2030년 7만8,971달러까지 점진적으로 오를 것으로 전망된다. 대만은 2026년 8만8,565달러에서 2030년 10만4,567달러로 늘 전망이라, 당분간 양국의 격차는 쉽게 좁혀지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폴리뉴스 이상명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