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로 다 허는 거여. 기쁘나 슬프나 원통허나 애통허나. 그걸로 풀고 사는 거여.”(아비)
‘서편제’의 또 다른 변신이다. 그간 영화(1993), 뮤지컬(2010), 창극(2013) 등으로 제작돼 온 ‘서편제’가 이번에는 소리극으로 재탄생했다. 국립정동극장의 개관 30주년 기념작 ‘서편제; The Original’(디 오리지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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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 연출가 고선웅과 한승석 음악감독이 네 번째 호흡을 맞춘 신작이다. 원작은 이청준(1939~2008)의 단편소설이다. 고 연출이 그의 연작 단편소설 ‘남도사람’(1976) 중 ‘서편제’ ‘소리의 빛’ ‘선학동 나그네’를 각색했다. 소리꾼 부녀가 진정한 소리를 찾아 유랑하는 이야기다. 최대한 원작 텍스트를 그대로 담아내 ‘디 오리지널’이라는 수식어를 붙였다.
각색과 연출을 맡은 고선웅은 최근 기자들과 만나 “서편제는 내 인생작”이라며 “원작 이야기의 본질에 충실한 작품으로 만들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어 “영화를 본 후 원작 소설을 바로 찾아 읽었다. 좁은 단칸방에서 아비와 딸이 소리와 대화를 주고받는데, 우주가 펼쳐지고 인생의 길이 보이는 점이 참 인상적이었다”면서 “국립정동극장으로부터 ‘서편제’ 무대화를 제안받았을 때 바로 응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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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극’에 걸맞게 판소리(고수)의 북장단과 소리꾼의 성음으로 이뤄진 것이 특징이다. 무엇보다 배우들이 부르는 총 22곡의 판소리와 민요는 인물의 감정과 극적 상황에 맞게 배치했다. 예컨대 아비가 소녀의 눈을 멀게 하는 대목에선 ‘심청가’를, 눈먼 소녀가 아비와 헤어지는 장면에선 춘향가 중 ‘이별가’를 부르는 식인데, 극의 굴곡과 애절함을 극대화했다.
딸 ‘송화’, 아버지 ‘유봉’, 아들 ‘동호’ 등 이름을 붙였던 기존 작품들과 달리, 원작 그대로 이름 없이 ‘소녀’ ‘아비’ ‘사내’로 인물을 복원했다. 회전하는 대형 원형무대 위를 모든 배우가 맨발로 걷게 한 연출도 돋보인다.
고 연출은 “이름도 없이 남도의 소리길을 떠돌았던 소설 속 인물 그대로 무대에 올리는 게 이번 작품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었다”며 “원형 무대에 구현된 길은 만남과 이별이 교차하는 장소이자, 상처가 축적되고 다시 해소되는 심리적 공간”이라고 언급했다.
정성숙 국립정동극장 대표는 “우리 고유의 짙은 한(恨)을 예술로 승화하고자 투혼을 담아 ‘우리 것’을 올곧게 만들고 싶었다”며 “관객들이 ‘진짜 우리 소리’를 만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아비 역은 남원시립국악단 악장 임현빈과 국악밴드 이날치의 안이호가 맡는다. 소녀 역은 국립창극단 단원 김우정과 2022년 전국 창작판소리경연대회에서 최우수상을 수상한 박지현(서울대 국악과)이 맡았다. 오는 11월 9일까지 서울 국립정동극장에서 공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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