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스경제=전시현 기자 | 국내 증권가에 새로운 먹거리를 둘러싼 경쟁이 심화될 것으로 보인다. 블록체인 기술로 부동산·미술품·음원 등을 쪼개 투자할 수 있는 '증권형 토큰' 시장이 본격 개화를 앞두고 있기 때문이다.
20일 업계에 따르면 KB증권, 신한투자증권, 키움증권 등 주요 증권사들은 이미 관련 플랫폼 개발을 마치고 법안 통과만을 기다리고 있다. 증권형 토큰 발행(STO, Security Token Offering)의 법제화가 임박하면서 선제적으로 시장 진입을 준비해왔다.
STO는 부동산이나 미술품, 저작권 같은 실물 자산을 블록체인 기반의 디지털 토큰으로 쪼개 발행하는 것을 말한다. 스마트 컨트랙트 방식으로 발행·유통되기 때문에 중개자 역할이 최소화되고 공시 업무도 자동화돼 시간과 비용을 대폭 절감할 수 있다.
무엇보다 거래 시간과 장소에 제약이 없고 매우 작은 단위로도 거래가 가능해 부동산 같은 고가 자산의 유동성을 획기적으로 높일 수 있다는 게 가장 큰 장점으로 꼽힌다.
현재 국내에선 카사·비브릭·펀블·소유 등이 금융규제 샌드박스 혜택을 받아 제한적으로 부동산 조각투자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자본시장연구원(KCMI)이 펴낸 '자본시장포커스'에 따르면 이들은 상업용 부동산을 수익증권으로 디지털화해 일반 투자자들도 소액으로 투자할 수 있는 플랫폼을 운영 중이다. 국내 조각투자 시장은 음원·부동산·미술품을 중심으로 2020년부터 폭발적으로 성장해 2022년 초 기준 누적 공모금액이 약 2000억원을 기록했다.
이 같은 시장 성장세에 발맞춰 정부도 제도화 작업에 속도를 내고 있다. 금융위원회는 2022년 4월 '조각투자 증권 등 신종증권 사업 관련 가이드라인'을 발표한 데 이어, 2023년 1월에는 금융규제혁신회의에서 '증권형 토큰의 발행·유통 규율체계'를 규제 혁신 안건으로 심의했다.
금융위가 제시한 증권성 판단 원칙에 따르면 계약 내용과 이용 약관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사안별로 판단하되, 권리의 실질적 내용을 기준으로 한다. 또 전자증권법에 발행인 계좌관리기관을 도입해 일정 요건을 갖춘 경우 증권사를 거치지 않고도 증권 토큰을 단독 발행할 수 있도록 했다.
이 같은 법제화 움직임에 가장 발 빠르게 대응한 건 증권사들이다. 2022년 금리 인상과 경기 침체로 증권업계의 순영업수익이 전년 대비 25% 급감하자, 새로운 수익원으로 STO 사업에 눈을 돌린 것이다.
KB증권은 STO 플랫폼 서비스를 위한 핵심기능 개발과 테스트를 완료했고, 신한투자증권은 블록체인 기반 금전채권 수익증권 플랫폼 출시를 준비 중이다. 키움증권은 한국정보인증, 페어스퀘어랩과 업무협약을 맺고 유통 플랫폼을 구축하고 있으며, SK증권은 디지털 자산 수탁 회사 인피닛블록에 지분 투자를 단행했다.
해외에선 이미 STO 시장이 제도권 안에서 본격화되고 있다. 한아름 연구원에 따르면 일본은 2019년과 2020년 두 차례 금융상품거래법 개정을 통해 STO를 제도권에 편입시켰다. 2019년 10월엔 대형 증권사 6곳이 모여 일본STO협회(JSTOA)를 설립했고, 현재 14개 주요 멤버와 60개 찬조 멤버가 참여해 업계 규칙과 지침을 제정하고 있다.
미국은 증권형 토큰에 대해 증권과 동일한 규제를 부과하며, 토큰의 증권성 판단엔 하위 테스트를 활용한다. HSBC 같은 은행, 스위스거래소, 바이낸스 같은 가상자산 플랫폼, tZERO 같은 증권토큰 전문 거래소 등이 이 시장에서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다.
문제는 증권형 토큰이 자본시장법 규율을 받게 되면서 현행 가상자산 거래소들이 직접 취급할 수 없다는 점이다. 증권형 토큰은 금융투자업 인가를 받은 증권사나 전문 플랫폼만 유통시킬 수 있다.
국내 가상자산 거래소들은 가상자산이용자보호법에 따라 가상자산사업자로 등록돼 있지만 금융투자업 인가는 없다. 금융위 관계자는 "토큰증권은 별도의 투자자 보호장치가 갖춰진 디지털 증권시장에서 거래될 것"이라며 가상자산 거래소와의 분리 운영 방침을 분명히 했다.
자본시장연구원 한아름 연구원은 "국내 증권토큰의 증권성은 권리의 실질적 내용을 기준으로 계약 내용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판단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어 "규제 시행 초기엔 적용 사례가 많지 않으므로 기술중립성 원칙을 채택한 미국 등의 사례를 보완적으로 활용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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