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진 자존감: “내가 뭘 잘못했길래”라는 생각에서 벗어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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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8.01 00:00 기준

깨진 자존감: “내가 뭘 잘못했길래”라는 생각에서 벗어나기

나만아는상담소 2025-10-21 02:21:00 신고

깨진 자존감.

모든 것이 끝나고, 문이 닫히고, 정적이 찾아온 그 순간. 당신의 귓가에는 그가 내지른 소리가 아니라, 당신 내면에서 울리는 낮은 질문 하나가 맴돌았을 것이다.

“내가 뭘 잘못했길래?”

당신은 그날의 행적을, 대화의 토씨 하나하나를 필사적으로 복기(復棋)한다. 내가 그때 웃지 말았어야 했나? 내 말투가 너무 차가웠나? 그가 싫어하는 그 단어를 내가 또 사용했던가? 당신은 이 지옥 같은 관계의 원인을, 마치 범죄 현장의 유일한 단서를 찾듯, 당신 자신에게서 찾아 헤맨다.

당신이 무언가를 ‘잘못’했기 때문에, 이 모든 끔찍한 일이 벌어졌다는 논리.

이것은 당신이 유난히 겸손하거나 자기 성찰이 깊어서가 아니다. 나는 여기서 단언컨대, 그 질문 자체가 이미 당신의 것이 아니라고 말하고 싶다.

“내가 뭘 잘못했길래”라는 그 지독한 자기비난은, 당신의 성격적 결함이 아니라, 그가 당신의 영혼에 심어놓은 가장 정교한 바이러스다.

그것은 이 관계의 ‘원인’이 아니라, 그가 당신을 통제하는 데 성공했다는 ‘결과’다. 당신의 깨진 자존감은 그의 폭력을 정당화하는 마지막 알리바이가 된다.

오늘 우리는 이 잔인한 내면의 목소리가 어떻게 설계되고 주입되었는지, 그 공학의 실체를 해부하려 한다.


자기 파괴의 설계도: 그가 당신의 탓으로 돌리는 법

당신의 자책감은 자연발생적인 감정이 아니다. 그것은 그의 필요에 의해 치밀하게 조립되고, 당신의 일상에 주입된 결과물이다.

가해자는 자신의 불안정함을 감추고 관계의 통제권을 유지하기 위해, 반드시 당신을 ‘문제의 원인’으로 만들어야만 했다. 그는 이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당신의 현실 감각을 체계적으로 무너뜨리는 몇 가지 기술을 사용한다.

1. 당신의 나침반을 고장 내는 기술: 가스라이팅

가스라이팅의 본질은 거짓말이 아니다. 그것은 당신의 인지 체계 자체를 불신하게 만드는, 현실에 대한 독점권 싸움이다.

  • - “그런 말 한 적 없는데? 네가 잘못 기억하는 거겠지.”
  • - “이게 화낼 일이야? 넌 항상 너무 예민해.”
  • - “농담인데 왜 그렇게 정색해? 유머 감각이 없네.”

그는 당신이 보고, 듣고, 느낀 모든 것을 ‘당신의 오류’로 규정한다. 당신의 감정은 ‘예민함’이 되고, 당신의 기억은 ‘착각’이 되며, 당신의 상식은 ‘융통성 없음’이 된다. 처음 몇 번은 저항했을 것이다. “아니야, 내 기억이 맞아!”라고.

하지만 이 공격이 1년, 2년 지속된다고 상상해보라. 매일같이 당신의 나침반이 북쪽이 아닌 엉뚱한 곳을 가리킨다고 지적당한다면, 당신은 결국 나침반이 아니라 지적하는 그 사람을 믿게 된다.

나는 이 과정이 피해자의 심리에 치명적인 공백을 만든다고 본다. 내 감정과 기억이 틀렸다면, 이 모든 갈등의 원인은 어디에 있는가? 답은 하나밖에 남지 않는다.

내가 인지하지 못하는 나의 어떤 결함. ‘내가 뭘 잘못했길래’라는 질문은, 그렇게 고장 난 나침반이 필사적으로 찾아낸, 유일하게 남아있는 좌표다.

2. 분노의 주소를 바꾸는 기술: 책임 전가

그는 자신의 감정을 책임지지 않는다. 그의 모든 부정적인 감정은 당신에게서 비롯된 ‘결과’라고 주장한다.

  • - “네가 나를 무시하니까, 내가 화가 날 수밖에 없잖아.”
  • - “네가 늦게 들어오니까, 내가 불안해서 휴대폰을 볼 수밖에 없지.”
  • - “네가 나를 이렇게 만들었어.”

이것은 매우 교묘한 논리적 함정이다. 그의 분노(그의 행동)는, 어느새 당신의 행동(원인 제공) 탓이 된다. 이 공식이 반복적으로 주입되면, 당신은 관계의 평화를 위해 그의 감정을 책임져야 한다는 강박에 사로잡힌다. 당신은 그의 분노를 피하기 위해, 당신의 행동을 검열하고 수정한다.

하지만 그의 분노는 당신의 행동과 무관하게, 그의 내면적 불안에 따라 언제든 터진다. 당신은 당신이 통제할 수 없는 것을 통제하려 애쓰다가, 결국 모든 시도가 실패할 때마다 이렇게 결론 내릴 수밖에 없게 된다. “아, 내가 또 잘못했구나. 내 노력이 부족했구나.”

3. 영원히 닿을 수 없는 기준점: 골대 옮기기

그는 당신에게 비현실적인 기준을 요구한다. 완벽한 연인, 완벽한 이해자, 완벽한 복종. 당신이 그 기준을 맞추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해서 아홉 가지를 해내도, 그는 당신이 해내지 못한 단 한 가지를 지적하며 당신을 무너뜨린다.

“이건 잘했네. 근데 이건 왜 이 모양이야?” “지난번엔 이렇게 하더니, 왜 이번엔 이렇게 해? 일관성이 없어.”

당신이 100미터 결승선을 향해 달려 골인 지점에 닿는 순간, 그는 골대를 10미터 뒤로 옮겨버린다. 당신은 영원히 승리할 수 없는 게임에 갇힌다. 이 끊임없는 실패의 경험은 당신의 자존감을 바닥까지 갉아먹는다.

당신은 스스로를 ‘무엇 하나 제대로 해내지 못하는 결함 있는 존재’로 인식하게 된다. 이 지독한 무력감 속에서 ‘내가 뭘 잘못했길래’라는 질문은, 더 이상 질문이 아니라 당신의 정체성 그 자체가 되어버린다.


내면의 배신: 스스로를 공격하는 마음

가해자의 이 체계적인 공격은, 결국 당신의 내면에서 그를 대신할 ‘공격자’를 만들어낸다. 이제 그가 당신을 비난하지 않을 때조차, 당신의 내면의 목소리가 그 역할을 대신한다.

나는 이것이 학대 관계에서 일어나는 가장 비극적인 일이라고 생각한다. 당신의 마음이, 당신을 지키는 대신 스스로를 공격하는 쪽을 택하는 이 내면의 배신 말이다.

1. 생존을 위한 고통스러운 합리화: 인지부조화

인간의 마음은 모순을 견디지 못한다. ‘나는 가치 있는 사람이다’라는 믿음과, ‘나는 가치 없는 대우를 받고 있다’는 현실 사이의 극심한 부조화.

이 고통스러운 모순을 해결하기 위해, 당신의 마음은 가장 손쉬운 길을 택한다. 떠나는 것(행동의 변화)이 아니라, 생각(인지의 변화)을 바꾸는 것이다.

떠나는 것이 심리적으로, 경제적으로, 혹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상황일 때, 당신이 이 현실을 견딜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이 상황을 ‘합리화’하는 것뿐이다.

“이건 학대가 아니야. 그저 격렬한 사랑의 방식일 뿐이야.” (현실을 왜곡한다)

“그가 나를 사랑하니까. 좋은 점도 분명히 있어.” (일부의 사실로 전체를 덮어버린다)

“이 모든 건 내 탓이야. 내가 더 잘하면, 그는 변할 거야.” (원인을 나에게 돌린다)

마지막 선택지, 즉 ‘내 탓’을 하는 것은, 이 끔찍한 상황에 대한 ‘통제감의 환상’을 제공한다. 이것이 핵심이다.

만약 이 모든 것이 그의 변덕스럽고 비이성적인 폭력 탓이라면, 당신은 이 상황에서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다. 그것은 당신이 무력한 피해자일 뿐이라는 절망적인 현실을 인정하는 것이다.

하지만 만약 이 모든 것이 ‘나의 잘못’ 때문이라면? 그렇다면 희망이 생긴다. 내가 나의 잘못을 고치면, 내가 완벽한 사람이 되면, 이 고통도 끝날 수 있을 것이다.

“내가 뭘 잘못했길래”라는 자책은, 역설적이게도 이 통제 불가능한 지옥에서 당신이 붙잡을 수 있는 유일한 희망의 동아줄이자, 생존을 위한 처절한 자기 방어기제였던 셈이다.

2. 상처가 만든 비정상적인 유대: 트라우마 본딩

당신의 자책감은, 그와의 병적인 유대감을 더욱 강화시킨다. 학대와 다정함이 예측 불가능하게 반복되는 과정(간헐적 강화)은, 당신을 그에게 심리적으로 중독시킨다.

그의 다정함(보상)은 당신이 그의 비위를 맞추고 ‘잘 행동했을 때’ 주어진다. 반면 그의 폭력(처벌)은 당신이 그의 심기를 건드리고 ‘잘못 행동했을 때’ 주어진다고, 당신은 학습하게 된다.

당신은 처벌을 피하고 보상을 얻기 위해, 끊임없이 자신의 행동을 검열한다. “내가 뭘 잘못했길래”라는 질문은, 그 보상을 다시 얻기 위한 필사적인 학습 과정이 된다. 당신은 그의 사랑을 되찾기 위해, 기꺼이 당신의 잘못을 찾아내고, 그에게 사과하고, 그가 원하는 모습으로 당신을 맞춘다. 당신의 자책감은, 그와의 중독적인 관계를 유지하는 필수적인 연료가 되어버린다.


이제 우리는 그 질문을 멈춰야 할 때다. “내가 뭘 잘못했길래?”라는 질문은 답을 찾기 위한 질문이 아니다. 그것은 당신을 영원히 정답 없는 미로에 가두기 위해 설계된, 가해자의 질문이다.

당신이 이 지독한 자책감에서 벗어나기 위해 물어야 할 진짜 질문은 이것이다.

“그는 왜 나의 자책감을 필요로 했는가?”

그가 당신을 탓해야만 했던 이유는, 그 스스로가 자신의 불안과 결핍, 폭력성을 감당할 수 없는 나약한 존재였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의 그림자를 당신에게 떠넘겼고, 당신은 당신의 것이 아닌 그 무거운 짐을 대신 지고 있었을 뿐이다.

당신의 깨진 자존감을 회복하는 과정은, 당신의 ‘잘못’을 찾아 고치는 과정이 아니다. 그것은 애초에 당신의 잘못이 아니었음을 깨닫는 과정이다.

당신이 잃어버렸던 것은 당신의 가치가 아니라, 당신의 가치를 알아보는 당신 자신의 시선이었다.

그의 목소리로 스스로를 비난하는 것을 멈춰라. 당신의 고통은, 당신의 결함에 대한 증거가 아니다. 그것은 당신이 부당한 폭력 속에서도 살아남았다는, 처절한 생존의 증거다.


By. 나만 아는 상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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