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건이 드러나기 시작한 때는 같은 해 10월이었다. 최초로 고소장이 접수된 9월 5일 이후로 하루 신고 건수만 수십여 개가 늘어나며 10월 말일에는 피해 액수가 500억원으로 불어났기 때문이다. 이 기간 피해자들은 ‘전세사기·깡통전세 피해자 수원대책위원회’(대책위)를 꾸려 자체 조사를 진행하고 “피해자들이 가해자들의 잘못까지 떠안고 부끄러움에 숨는 상황이 생겨선 안 된다”고 촉구했다.
수사기관 조사 결과 전세 사기를 벌인 정씨 일가는 2021년 1월부터 2023년 9월까지 임대법인 명의를 이용해 무자본 갭투자로 수원시 일대 주택 800여 세대를 취득한 것으로 드러났다. 무엇보다 이들은 대출금이 700억원이 넘는 채무 초과 상태였음에도 자금 관리 계획 없이 ‘돌려막기’ 식으로 임대 계약을 이어온 것으로 확인됐다.
특히 감정평가사였던 정씨의 아들은 아버지의 요청을 받고 시세보다 높은 가격으로 임대 건물을 감정 평가했는데 2023년 3월부터 임대 업체 소장으로 일하며 범행에 가담했다.
당초 경찰 조사에서 혐의를 부인하던 정씨 등은 법정에선 “사기 혐의를 대체로 인정한다”고 했다. 다만 “일부 계약에서 피고인들이 임대차 보증보험에 가입해 준 것이 있어 이들 계약에 한해서는 사기 고의가 인정되기 어렵다는 취지”라고 했으며 시세보다 고가로 임대 건물을 감정 평가한 것에 대해서는 “사실관계는 인정하나 법리적으로 다툴 여지가 있다”고 주장했다.
이들에게 징역 12~15년을 구형한 검찰은 “이 사건은 피해가 극심하고 서민의 주거권을 박탈한 중대 범죄”라며 “피고인들은 특별한 자본 없이 보증금을 돌려막기를 하거나 게임 아이템을 구매하는 데 탕진하고 주먹구구식으로 채무를 누적하는 매우 비정상적인 구조로 임대사업을 벌여 극심한 피해를 발생시켰다”고 설명했다.
재판 과정에서는 정씨 등이 개인적 취미를 위해 게임 아이템에 최소 13억원을 쓰거나 임대사업이 어려워지기 시작한 2022년부터 법인카드로 15억원을 ‘카드깡’(카드로 결제하고 현금을 되돌려주는 수법)하는 등 재산을 은닉하려 한 정황이 나오기도 했다.
|
1심 재판부는 주범인 정씨에게 징역 15년을, 아내와 아들에게는 각각 징역 6년, 4년을 선고하며 “피고인은 별다른 자기자본 없이 갭투자 방식으로 대규모 임대사업을 무분별하게 확장하며 본인 자산이나 채무를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했고 자금이나 임대차 비용을 정리하는 경리직원 하나 없이 주먹구구식으로 비정상적으로 사업했다”고 판시했다.
이어 “임대차 보증금은 서민의 전 재산이나 다름없다. 주거 안정과도 직결된 문제다. 피해자 중 1명은 피고인 범행이 드러난 후 목숨을 끊기까지 한 것으로 보인다”며 “피고인들은 피해자들 보증금 수십억원을 치밀한 계획 없이 양평군 토지 매수, 태양광 사업, 프랜차이즈 사업 등에 투자하고 별다른 이익도 얻지 못했으며 투자금을 회수하지도 못했다”고 지탄했다.
다만 1심은 정씨와 아들의 감정평가법 위반 혐의에 대해서는 “시장가격보다 높게 책정되긴 했으나 얼마나 초과했는지 알 수 없는 점, 감정평가 법인의 심사를 거친 점 등을 고려하면 허위 감정했다는 부분은 유죄로 선고하기에 증거가 부족하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이후 2심이 항소를 기각하고 대법원도 정씨 등의 상고를 받아들이며 지난달 형이 확정됐다. 그러나 정씨 일가의 범죄가 법의 철퇴를 맞은 이후에도 전세사기는 근절되지 않았다. 최근에는 2021년부터 지난해 6월까지 수원 등지에서 빌라 14채를 무자본 갭투자하는 방법으로 매수해 임차인 153명으로부터 전세 보증금 203억원을 가로챈 60대가 검찰에 송치되기도 했다.
Copyright ⓒ 이데일리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본 콘텐츠는 뉴스픽 파트너스에서 공유된 콘텐츠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