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10·15 부동산 대책 후속 조치로 보유세 강화 등 세제 개편을 시사하자 더불어민주당이 즉각 "보유세 인상을 논의하지 않고 있다"고 선을 긋고 나섰다.
이번 부동산 대책으로 서울 전역과 경기도 주요 지역이 규제지역으로 묶이자 실수요자와 청년층을 중심으로 비판 여론이 확산되면서 이재명 대통령과 당 지지율이 심상치 않은 상황을 의식한 행보라는 분석이다.
특히, 당내에서는 내년 지방선거에 미칠 파장을 면밀히 살피는 분위기다.
구윤철 "보유세 강화는 응능부담"…1% 부과 시사
김용범 "취득·보유·양도 세제 전반을 진지하게 검토해야"
구윤철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 16일 주요 20개국(G20) 재무장관회의 참석차 미국 워싱턴 D.C.를 방문해 동행 기자단 간담회를 하고 최근 정부가 발표한 '부동산 세제 합리화 방침'과 관련해 "부동산 보유세는 부동산 정책일 수도 있고, 응능부담(의 원칙)도 될 수 있다"고 밝혔다.
응능부담이란 납세자의 부담 능력에 맞게 공평한 과세를 해야 한다는 조세 원칙을 의미한다.
앞서 정부는 '부동산 세제 합리화 방침'이 담긴 주택시장 안정화 대책을 발표하면서 보유세·거래세 조정을 포함한 세제 운영 방향에 관해 연구 용역을 추진하기로 했다.
구 부총리는 "우리나라는 부동산 보유세는 낮고, 양도세는 높다 보니 '락인 이펙트'(Lock-in Effect·매물 잠김 현상)가 굉장히 크다"며 "팔 때 비용(양도소득세)이 비싸다 보니 안 팔고 그냥 (집을) 들고 있다"고 진단했다.
이어 "고가의 집을 보유하는 데 부담이 크면 집을 팔 것이고, (부동산 시장에도) 유동성이 생길 것"이라며 "미국처럼 재산세를 (평균) 1% 메긴다고 치면, (집값이) 50억이면 1년에 5천만원씩 (보유세를) 내야 하는데, 웬만한 연봉의 반이 날아가면 안 되지 않느냐"고 언급했다.
그러면서 "꼭 다주택뿐만 아니고 (한 채의) 고가 주택 같은 경우도 봐야 한다"며 "예를 들어 50억 원짜리 집 한 채 들고 있는 데는 (보유세가) 얼마 안 되는데, 5억 원짜리 집 세 채를 갖고 있으면 (보유세를) 더 많이 낸다면, 무엇이 형평성에 맞는지도 살펴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구 부총리가 보유세 인상을 시사한 것은 정부가 보유세는 저렴하고 양도세는 비싼 점이 서울 부동산 가격 폭등의 원인으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
이보다 앞선 지난 15일에는 김용범 대통령실 정책실장이 유튜브 삼프로TV와 인터뷰에서 "(부동산) 보유세가 낮은 건 사실"이라며 "취득·보유·양도 세제 전반을 진지하게 검토해야 한다"고 밝혔다.
다른 정부 관계자들도 보유세 인상을 거론하고 있다.
이형일 기획재정부 1차관은 SBS라디오 인터뷰에서 "(부동산 보유세 인상과 관련해) 태스크포스(TF)를 꾸려서 검토를 이제 시작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아예 '안 한다'는 취지로 이해하는 것은 조금 섣부르다고 생각하면 될 거 같다"며 '인상'에 무게를 실었다.
김윤덕 국토교통부 장관도 취임 직후 첫 기자간담회에서 사견을 전제로 "보유세 인상이 필요하다"고 밝혔고, 국정감사에서는 "보유세는 늘리고 거래세는 줄이는 큰 틀에 대해서 기본적으로 동의한다"고 말했다.
與 "아직 논의 없다…보유세 인상으로 폭등 못 막아"
이처럼 정부 측에서 보유세 부담이 낮다는 점을 강조하며 세제 개편 가능성을 시사하자 여당인 민주당은 즉각 선을 그었다.
박수현 민주당 수석대변인은 20일 국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보유세 인상 관련 논의와 관련 "아직 그런 것은 없다"고 밝혔다.
구 부총리가 보유세 개편 가능성을 시사한 데 대해 "보유세 강화나 거래세 인하는 민주당의 오래된 (정책) 방향이지만 구 장관이 이야기한 내용을 중심으로 당내에서 논의했거나 논의하고 있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라며 이같이 말했다.
박 수석대변인은 "정부가 그런 방향성을 갖고 있으면 9·7 (부동산) 대책 10·15 (부동산) 대책이 시장에 미치는 영향·효과를 분석하면서 세제 합리화를 검토해나갈 것이라는 측면에서 (정부의) 요청이 있다면 함께 논의해나가는 것이 통상적인 절차이겠지만 아직 그런 것은 없다"고 부연했다.
앞서 전날 김병기 민주당 원내대표도 '보유세 인상'에 대한 당의 공식 입장을 묻는 말에 "공식적인 입장 아직 안 나왔다"고 밝힌 바 있다.
전현희 민주당 수석 최고위원 역시 19일 기자간담회에서 "부동산 보유세를 가지고 부동산의 폭등을 막겠다, 이것은 사실상 어설픈 정책"이라며 "세제로서 국민들에게 부담을 주는 그런 정책은 자제돼야 한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전 최고위원은 "이재명 정부와 민주당은 부동산 세제를 갖고 부동산 정책을 조율하는 것은 사실상 하지 말아야 된다고 (보고) 한다면 최후의 수단"이라며 "보유세와 관련해서는 가장 조심스럽게 해야 할 부분"이라고 언급했다.
박용진 "보유세 인상시 강남 3구 국지전이 전국적 전면전으로 확전"
이처럼 민주당이 보유세 인상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것은 부동산 대책 발표 후 여론이 심상치 않기 때문이다.
에너지경제가 여론조사기관 리얼미터에 의뢰해 지난 13일~17일 전국 만 18세 이상 남녀 2518명을 대상으로 이재명 대통령의 국정수행 지지도를 조사한 결과 (무선 100%, ARS, 95% 신뢰수준에 ±2.0% 포인트) 긍정평가는 1.3%P 하락한 52.2%를 기록했다.
10·15 부동산 대책 발표가 있었던 15일(수)에는 51.7%(0.4%P↓, 부정 평가 45.6%)까지 떨어졌으며 30대(4.2%P↓)와 20대(2.3%P↓)에서는 하락세가 지속되면서 긍정보다 부정 평가가 높아졌다.
이로 인해 내년 지방선거 전망도 어두워지고 있다.
한국갤럽이 지난 14~16일 전국 만 18세 이상 남녀 1001명을 대상으로 정당지지율 전화면접 조사를 실시한 결과(무선 100%, 95% 신뢰수준에 ±3.1% 포인트) 민주당 39%, 국민의힘 25%로 민주당이 앞섰으나 지방선거에서 '여당 후보가 많이 당선돼야 한다'는 39%, '야당 후보가 많이 당선돼야 한다' 36%로 팽팽했다.
민주당 지지세가 강한 40대(62%)와 50대(45%)에서는 '여당 후보 당선'이 우세했으나 20대(40%), 30대(38%), 70대 이상(48%)에서는 '야당 후보 당선'이 높았다.
이런 상황에서 보유세가 인상되면 민심이 더욱 악화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박용진 전 민주당 의원은 20일 SBS라디오에서 "세금으로 집값을 잡지 못하고 시장과 싸우면 안 된다"며 "보유세를 인상하면 강남 3구에서의 국지전이 전국적 전면전으로 확전되는 등 진짜 지방선거에서 악재가 된다"고 우려했다.
반면, 전 민주당 정책위의장인 진성준 의원은 보유세 인상에 찬성하고 있다.
진 의원은 17일 YTN라디오에서 "부동산 세제의 큰 원칙은 거래세는 낮추고 보유세는 올리자는 것"이라며 "거래세, 취득세, 등록세는 낮추고 보유세는 올리도록 하는 조치가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이어 "1주택자의 경우 면세가 되기에 똘똘한 한 채로 집중, 강남 고가 아파트 가격은 계속 오르고 있는 반면 강남 아파트 한 채 값도 안 되는 주택을 여러 채 갖고 있는 사람은 중과세 대상"이라며 "정부가 부동산 세제 개편을 검토할 때 공평한 과세 체계 마련도 검토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대통령실 "부동산 보유세 개편, 현재 말씀드릴 건 없다"
"부총리, 美 보유세 1% 발언은 단순 예시" 진화나선 정부
보유세 인상에 대해 여당이 강하게 반발하자 대통령실과 정부는 일단 논란을 차단하려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대통령실은 20일 부동산 보유세 개편과 관련해 "현재 시점에서 말씀드릴 건 없다"는 입장을 내놨다.
김남준 대통령실 대변인은 이날 오후 용산 대통령실에서 브리핑을 열고 관련 질의에 이같이 답변했다.
강영규 기재부 대변인도 20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정례브리핑을 열고 "보유세와 거래세 등을 연구용역을 통해 마련하겠다는 것이 전부이며 정부의 공식 입장"이라고 했다.
강 대변인은 "(구 부총리는) 전문가들 사이에서 보유세가 너무 낮다거나 거래세가 너무 높아 거래가 안된다는 등의 이야기가 있다고 (기자들에게) 발언하는 과정에서 미국에선 보유세가 1% 정도된다고 언급한 것"이라며 "예를 들어 설명한 것이지 부총리의 (공식) 입장은 전혀 아니라는 것을 명확히한다"고 강조했다.
부동산 세제 개편 시점과 관련해 강 대변인은 "연구용역을 거쳐야하는데, (국정감사가 끝난) 11월부터 절차가 시작될 것 같고, 용역 과제도 최소 수 개월은 걸리기 때문에 내년쯤 돼야 용역이 마무리될 것 같다"고 했다.
조국 "지방선거보다 주택시장 안정 먼저…보유세 실효세율 높여야"
한편, 조국 조국혁신당 비상대책위원장은 20일 정부의 10·15 부동산 대책과 관련해 "부동산 시장은 사회권 가운데 하나인 주거권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조 비대위원장은 이날 국회에서 열린 비상대책위원회 회의에서 "지방선거보다 주택시장 안정이 먼저다. 주택시장 안정에 실패하면 정권 재창출은 없다"며 이같이 말했다.
이어 "아파트 가격을 떠받치며 주택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모순"이라며 "가격이 오르면 규제가 뒤따라가고 내리면 (규제를) 완화하는 방식으로 (부동산) 문제를 풀 수 없다"고 했다.
국민의힘을 향해서는 "국회와 정당들이 정부에 떠넘기지 말고 함께 (왜곡된 부동산 시장에 대한) 책임을 나눠야 한다"며 "이재명 정부에 화살을 돌리는 무책임한 행태를 멈춰 달라. 부동산을 지방선거에 이용하는 태도가 문제를 더 악화시킨다"고 비판했다.
그는 국민의 주거권 보장을 위한 세 가지 방안으로 ▲공공유휴부지에 대규모 초고층 공공임대주택을 지을 것 ▲다주택자들이 집을 시장에 내놓도록 유도할 것 ▲보유세 정상화와 거래세 완화를 준비할 것 등을 추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조 비대위원장은 "투기 진원지인 강남권에 양질의 초고층 공공임대 아파트 단지를 조성해야 한다"며 "서초, 양재, 수서, 용산, 성남, 상암동 등에 가능한 부지가 이미 있다. 토지임대부 분양 방식으로 청년과 무주택자에게 전적으로 제공하는 방식을 채택해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현재 OECD 절반 수준인 보유세의 실효세율을 높이고 거래세는 완화하면서 주택 시장의 순환을 유도해야 한다"며 "헌법재판소, 대검찰청, 감사원 등의 사법기관도 지방으로 이전해야 하며 그 자리에 양질의 초고층 공공임대 아파트 단지를 짓자"고 했다.
기사에 거론된 여론조사에 대한 자세한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를 참조하면 된다.
[폴리뉴스 김승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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