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란봉투법, 아무도 가지 않았던 길을 백지 상태로 열어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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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란봉투법, 아무도 가지 않았던 길을 백지 상태로 열어놔"

이데일리 2025-10-20 17:09:50 신고

[이데일리 송승현 기자] “일본은 이 법리를 만들었지만 우리나라보다 훨씬 더 엄격하게 기준을 설정했고 실제로 적용된 예도 많지 않습니다. 사실상 가다가 만 길인데, 우리는 길도 훨씬 넓혀놓고 아무도 가지 않았던 길을 아무런 기준 없이 태평양 한가운데 돛단배를 세워놓고 가보자고 하는 겁니다.”

조찬영 법무법인 세종 변호사가 이데일리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사진=이영훈 기자)


22년간 법복을 입고 수많은 노동 사건을 다뤄온 조찬영 법무법인 세종 변호사는 20일 이데일리와의 인터뷰에서 지난달 공포돼 내년 3월 시행을 앞두고 있는 노란봉투법에 대해 이같이 말했다. 조 변호사는 서울고법 노동 전담부에서 3년간 고법판사로 근무하며 완성차 업체의 통상임금 사건 등 주요 노동 사건을 담당했다. 최근엔 법무법인 세종에 합류해 기업들의 노란봉투법 대응을 돕고 있다.

조 변호사는 노동법의 특성에 대해 “경제적 합리성을 바탕으로 한 일반 민사법과 달리 근로자 보호라는 조금은 결이 다른 입법 목적을 가지고 있다”며 “통상임금, 근로자파견, 실질적 지배력 등 주요 개념이 추상적이어서 결론을 예측하기 어렵고 법원의 재량이 폭넓게 작용한다”고 설명했다.

노란봉투법의 핵심은 △원청의 사용자성 인정 △노동조합 가입자격 확대 △쟁의행위 목적 확대 △손해배상책임 제한 등 4가지다. 조 변호사는 “그중에서도 핵심은 원청의 사용자성 인정과 쟁의행위 목적 확대”라며 “향후 적용과 관련해 상당한 혼란이 예상된다”고 내다봤다.

많은 이들이 궁금해하는 것은 기존의 ‘근로자파견’ 개념과 노란봉투법 통과에 따라 변화하게 될 ‘실질적 지배력’이 어떻게 다른가다. 조 변호사는 “둘 다 하청 근로자의 업무나 근로조건에 대한 원청의 개입이라는 점에서 유사하지만, 판단 정도는 많이 다르다”고 말했다. 근로자파견은 ‘상당한 지휘·명령’을 요건으로 개별적·구체적 지시·명령을 중시하는 반면, 실질적 지배력은 하청 업무가 원청 사업에 필수적이고 사업체계에 편입되어 있는지를 중시한다는 것이다.

조 변호사는 “근로자파견은 그냥 ‘맞다, 아니다’라고 법원이 판단만 하면 된다”며 “하지만 실질적 지배력은 먼저 원청과 하청 관계에서 실질적 지배력이 있는지 판단하고, 있다면 각 교섭 의제별로 또 실질적 지배력을 따로 판단해야 한다. 게다가 절차도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법무법인 세종 조찬영 변호사. (사진=이영훈 기자)


원청기업이 다수 하청 노조와 교섭해야 하는 상황에서 교섭창구 단일화 절차도 큰 쟁점이다. 핵심은 ‘하나의 사업 또는 사업장’을 원청 단위로 볼 것인지, 하청 단위로 볼 것인지다. 조 변호사는 “원청 단위로 하면 한 번에 대표노조를 정하면 되는 만큼 절차는 간단해지지만, 기업 입장에서는 각 하청마다 임금 등 입장이 달라 결국 임금 총량이 오른다며 반발을 할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반면 하청 단위로 하면 비용 면에서는 유리하지만, 수천개 노조와 개별 교섭해야 하는 부담이 생긴다.

업종별로는 조선업과 유통업의 타격이 클 것으로 전망했다. 완성차 업체의 경우 불법파견 관련 소송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원·하청 관계가 어느 정도 정리된 측면이 있다. 이와 달리 대부분 불법파견이 인정되지 않았던 조선업은 다르다. 조선업은 하청 비중이 꽤 큰 비중을 차지하고, 대부분 인력만 관리하는 단순 임가공(제품을 위탁받아 가공하는 모든 서비스) 형태여서 도급계약이 종료되면 하청과 하청 근로자 사이의 근로관계도 종료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하지만 노란봉투법에 따라 직접고용이나 고용승계를 요구할 가능성이 크다. 유통업과 물류업은 화물연대 문제가 있다. 이들에 대해서도 실질적 지배력이 인정돼 교섭에 나서야 할 상황에 직면할 수도 있는 것이다.

조 변호사가 가장 아쉬워한 부분은 입법 과정이다. 그는 “실질적 지배력을 인정할 필요성은 있다. 하청 근로자의 실질적인 근로조건을 원청이 쥐고 있는데 교섭은 못하는 구조이기 때문”이라며 “하지만 어떻게 구현하고 어떤 절차로 할지에 대한 디테일한 부분까지 설정이 필요했는데 그 과정이 생략됐고 심지어 공론화 과정도 없었다”고 했다.

노란봉투법 시행을 앞두고 기업들이 당장 해야 할 준비에 대해 조 변호사는 “먼저 하청·협력사별로 실질적 지배력이 인정되는지, 어떤 의제가 교섭 대상이 될지 점검해야 한다”며 “실질적 지배력이 모호한 부분은 이를 낮추는 방향으로 기업 운영을 바꿔야 하고, 교섭 의제별 전략을 수립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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