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미 더봄] 손주의 먹는 사진에 집착하는 이유가?

실시간 키워드

2022.08.01 00:00 기준

[이수미 더봄] 손주의 먹는 사진에 집착하는 이유가?

여성경제신문 2025-10-20 13:00:00 신고

손주는 입이 짧았다. 분유만 먹는 신생아 때에는 그래도 제 양을 다 먹고 젖살도 포동포동하더니 이유식을 먹으면서부터 먹는 걸 그다지 좋아하지 않음을 알게 됐다. 먹는 것은 동물적인 본능이라 입안에 들어오는 모든 것을 먹으려는 게 걱정인데 손주는 음식에 낯가림이 심했다.

살림을 거의 예술 수준으로 하는 젊은 엄마들을 보면 이유식도 갖은 재료와 현란한 방법으로 만들어 냉동실에 쟁여 놓고 먹이던데 할머니의 구식 조리법이 입에 맞지 않는 건지 찌고 삶아서 으깨는 게 고작인 이유식은 내가 먹어봐도 사실 맛이 없었다.

그래도 두 딸은 그걸 열심히 받아먹고 건강하게 자랐건만 손주는 한입 먹어보고는 혀를 내밀어 뱉어내기 일쑤였다. 유기농으로 만든다는 이유식 배달 업체에 주문해 보기도 하고 영상을 보면서 이렇게 저렇게 만들어보지만, 할미 맘이 흡족할 만큼 양껏 먹지 않았다.

밖에서 일하느라 살림이나 요리 솜씨나 전업주부가 볼 때는 어설픈 수준인 것이 맞고 그나마 손주가 나오기 전까지는 대충 돌려막으며 살았는데··· 입맛이 까다롭고 예민한 복병, 손주를 만나자 그때부터 할미의 전전긍긍이 시작되었다.

할미에게는 천국의 형상입니다. /이수미
할미에게는 천국의 형상입니다. /이수미

구글 덕에 몇 년 전 사진도 계속 볼 수 있어서 잠 안 오는 밤이면 예전 사진을 뒤적인다. 사진의 절반쯤은 손주의 먹는 사진이다. 뭐라도 먹으면 그것이 너무 좋아서 사진을 찍어 두고 ‘오늘부터 입맛이 돌아서 잘 먹으려나?’ ‘때 되면 다 먹는다더니 그때가 되었나?’ 기대와 실망을 하루에도 몇 번씩 반복하며 손주의 숟가락질에 일희일비했다.

안 먹는 것이 많아지면 잘 먹는 몇 가지만 자꾸 주게 되는데 골고루 주고 싶은 마음이야 굴뚝같지만 자연히 편식을 하게 된다. 살집은 없어도 왜인지 키는 또 쑥쑥 자라니 무엇을 먹고 키가 크나 싶기도 했다. 키도 크고 아픈 곳도 없고, 그저 많이 먹지 않는 것뿐이었지만 제 논에 물 들어가는 소리와 자식 입에 밥 들어가는 모습이 천국이라 하지 않던가.

밥그릇 들고 다니며 떠먹이는 할머니들을 공공의 적으로 생각하는 세상에서 눈치를 보다 보다 나중에는 ‘에라 모르겠다! 뭐라 하든 말든 나는 밥을 먹여야 해!’ 스스로를 다독이고. 남자아이들이 중학생쯤 되면 라면을 서너 개씩 먹는다던데 나도 그런 장면을 볼 수 있을까··· 많든 적든 저녁을 먹이고 나면 하루치의 전전긍긍이 끝난다.

내일은 또 무엇을 해서 먹여야 잘 먹을까, 손주의 입에 맞는 새로운 것이 무얼까 음식을 씹고 있는 손주의 입에서 눈길을 못 거둔다. “세 살 비만 여든 간다”는 속담은 위로가 되지 못하고 서로 더 먹겠다고 싸워보지 않아서 식탐이 없나···? 온갖 분석도 해 본다.

손주는 올해 초등학생이 되었다. 활동량이 늘어서인지 제법 먹는 양도 늘어나고 단체 급식의 도움으로 이것저것 해달라는 것도 생겼다. 상상도 못 할 일이다. “때 되면 다 먹어!”란 말이 증명되었지만 아직도 손주의 먹는 사진은 나를 설레게 한다.

여성경제신문 이수미 전 ing생명 부지점장·어깨동무 기자 leesoomi714@naver.com

Copyright ⓒ 여성경제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본 콘텐츠는 뉴스픽 파트너스에서 공유된 콘텐츠입니다.

다음 내용이 궁금하다면?
광고 보고 계속 읽기
원치 않을 경우 뒤로가기를 눌러주세요

실시간 키워드

  1. -
  2. -
  3. -
  4. -
  5. -
  6. -
  7. -
  8. -
  9. -
  10. -

0000.00.00 00:00 기준

이 시각 주요뉴스

알림 문구가 한줄로 들어가는 영역입니다

신고하기

작성 아이디가 들어갑니다

내용 내용이 최대 두 줄로 노출됩니다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이 이야기를
공유하세요

이 콘텐츠를 공유하세요.

콘텐츠 공유하고 수익 받는 방법이 궁금하다면👋>
주소가 복사되었습니다.
유튜브로 이동하여 공유해 주세요.
유튜브 활용 방법 알아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