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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데이신문 성기노 기자】국민의힘 장동혁 대표가 지난 10월 17일 일반 면회 형식으로 윤석열 전 대통령을 면회했습니다. 약 10분 동안의 짧은 만남이었지만 그 후폭풍이 만만치 않습니다. 장 대표는 지난 7월 31일 국민의힘 당 대표 후보 시절 처음 윤석열 면회 의사를 밝혀 당 안팎에 파문을 몰고 왔습니다. 그리고 8월 26일 당 대표 취임 기자회견에서도 윤석열 면회 약속을 지키겠다고 공언했습니다.
하지만 장 대표가 윤석열 전 대통령 면회 약속을 실제로 이행할지는 미지수였습니다. 비상계엄과 탄핵의 바다를 힘겹게 건너고 있는 국민의힘으로서는, 당 대표가 다시 과거로 배를 돌리는 것에 대한 정치적 부담이 상존했습니다. 그래서 당내에서는 장 대표가 ‘공언’만 할 뿐 실제로 윤 전 대통령 면회를 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왔습니다.
그렇게 장 대표의 ‘윤석열 면회’ 이슈는 ‘물 밑’으로 가라앉는 듯 보였습니다. 하지만 장 대표는 윤석열 면회를 비밀리에 전격 결행했습니다. 장 대표는 금요일인 지난 17일 오전에 특별 면회가 아닌 일반 면회로 김민수 최고위원과 함께 윤 전 대통령을 만난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장 대표는 사전에 다른 최고위원이나 원내 지도부와도 면회 일정을 공유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그런데 장 대표는 ‘조용히’ 윤 전 대통령을 면회한 뒤에도 그 사실을 주변에 알리지 않고 ‘묵히고’ 있었습니다. 그 날 오후 기자간담회도 열렸지만 윤석열 면회 언급은 없었습니다. 그리고 면회 다음날인 토요일 오후 4시쯤 자신의 SNS를 통해 그 사실을 공개했습니다.
대표의 글이 SNS에 실리면 보좌진들이나 당직자들이 그것을 적극 ‘리트윗’ 하는데 이번에는 그런 ‘홍보’도 없었습니다. 면회 후 자세한 대화 내용도 공개하지 않았습니다. 그만큼 조심스러운 행보를 보인 것입니다. 어차피 알려질 일을 이렇게 시간을 두고 ‘뒤늦게’ 공개한 것은 아무래도 그 정치적 파장을 고려한 측면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장 대표가 이렇게 주변 눈치를 보면서까지 윤석열 면회를 전격 이행한 것에 대해 당내에서는 즉각 반발이 터져 나왔습니다. 소장파로 분류되는 김재섭 의원은 19일 당 의원 온라인 대화방에서 “당 대표로서 무책임하고 부적절한 처사였다고 생각한다”고 비판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김 의원은 “부동산, 관세 등으로 이재명 정부에 균열이 생기고 있고 우리 의원들이 힘을 모아 싸우고 있다”며 “도무지 이해되지 않는다. 해명해 주길 바란다”고 촉구했습니다. 신지호 전 전략기획부총장 또한 “정청래, 조국, 박지원 등이 벌떼처럼 공격하기 시작했다”며 “부동산, 김현지, 민중기 등으로 간만에 여야 공수 교대가 이뤄지는데 이렇게 먹잇감을 던져주는 것은 해당 행위 아닌가”라고 지적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지금은 이재명 정부가 잇따라 부동산 특단 대책을 발표함에도 민심의 반발이 수그러들지 않아 애를 먹고 있는 ‘민감한’ 상황입니다. 더구나 지금은 국정감사 시즌입니다. 야당의 계절인 것입니다.
이재명 부동산 정책, 민중기 특검 주식 논란, 김현지 대통령실 제1부속실장 증인 출석 문제 등 정부와 여당발 지뢰가 곳곳에 널려 있습니다. 국민의힘의 ‘정권 때리기’가 주요 이슈로 언론에 온통 도배가 될 때 장 대표는 뜬금없이 윤석열 면회 사실을 직접 공개해 버렸습니다. 잘 나가는 당 상황에 찬물을 끼얹는 정무 감각 제로의 ‘해당 행위’를 자초한 것입니다.
장 대표는 도대체 왜 그랬을까요. 일단 이번 장 대표의 윤석열 면회는 불행한 처지에 있는 전직 대통령을 위로하는 인간적 도리 차원이 전혀 아닙니다. 이는 비상계엄과 탄핵 이후 사분오열에 빠졌던 국민의힘에 ‘장동혁이 보수정당 적자다. 나의 깃발 아래 모여라’는 메시지를 당에 공개적으로 던진 것입니다.
장 대표는 재선도 아니고 1.5선에 불과한 정치 신인에 가깝습니다. 인지도나 당내 위상도 낮습니다. 그는 지난 전당대회에서 오로지 강성 지지층 입맛에 맞는 말만 골라 해서 어렵게 당 대표에 올랐습니다.
그가 한때 ‘한동훈의 남자’였다가 ‘친윤계’로 변절한 점을 감안해보면 장동혁에게 정치적 가치나 신념보다는 권력과 출세가 우선이라는 해석이 가능합니다. 이런 장 대표의 ‘권력 해바라기’같은 정치 성향을 볼 때 주변의 비판에 아랑곳 하지 않고 윤석열 면회를 하는 것은 당연한 결과입니다.
장 대표는 무엇보다 자신이 보수정당의 적자라는 사실을 만방에 알리고 싶었을 것입니다. 자신이 과거 이준석이나 김기현보다 학벌로 보나 경력으로 보나 꿀릴 게 없는데 그들에 비해 당 대표 대접을 충분히 받지 못하고 ‘무시’ 당하는 상황을 더 이상 방관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윤석열 또한 보수정당의 적자가 아니었지만 대통령에까지 오른 인물이기에 장동혁도 그 ‘이단적 적자’의 줄을 타고 당을 장악하고 싶었을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장 대표의 윤석열 면회는 장동혁의 ‘셀프 대관식’이자 보수 적자에 대한 ‘인정 욕구’의 발현입니다.
두 번째는 장 대표에게 강성 지지층의 존재는 포기할 수 없는 ‘현찰’이라는 사실입니다. 지난 전당대회에서 ‘반윤계’는 힘을 제대로 쓰지 못했습니다. 윤석열에 대한 배신은 곧 당에 대한 배신이라는 프레임이 지배했습니다.
내년 6월 전당대회를 앞둔 장 대표로서는 그 전에 당을 완전히 장악할 필요성이 커졌고 공천권도 결국은 강성 지지층에 의해 결정될 것이라는 생각이 커지면서 그 지지의 ‘숙주’인 윤석열을 정치적으로 관리할 동기도 덩달아 커진 것입니다.
이 과정에서 장 대표는 이재명 대통령의 집권 과정도 목도한 바 있습니다. 이 대통령은 수많은 ‘사법 리스크’에 꽁꽁 묶여 결국 집권에 실패할 것이라는 정치권의 예상을 뒤엎고 권좌에 올랐습니다. 주변에서 이 대표의 ‘근신’과 2선 후퇴 등의 공세가 이어졌지만 이 대통령은 오히려 그 반대 전략으로 집권에 성공했습니다.
지금 국민의힘도 ‘윤석열과 결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재명의 집권 등식을 보면 ‘윤석열’이라는 극단적 정치 자산을 잡고 가는 것이 오히려 집권에 더 유리할 수 있다는 판단도 했을 것입니다. 이는 미국 트럼프나 일본 다카이치, 한국의 이재명 등 지지 기반 중심 정치, 즉 팬덤 정치의 글로벌화를 국민의힘도 적극 받아들이겠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장동혁에게 이런 팬덤 정치는 아주 쉬운 정치 행위이자 ‘머리 덜 쓰고’ 편안하게 집권할 수 있는 방책이기도 합니다. 팬덤은 신인이냐 거물이냐를 가리지 않습니다. 팬점 정치 모델은 상당히 단순합니다. 그것은 정책 없이, 비전 없이, 오직 충성만으로 승부합니다.
장 대표는 가치나 신념 따질 것 없이 오로지 팬덤에 맹목적으로 복종만 하면 됩니다. 그는 오로지 하나의 정치 상품만 팔면 됩니다. ‘배신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이런 단순한 구도는 친윤 vs 비윤, 개혁 vs 반개혁이 아니라 충성 vs 변절이라는 원시적이고 본능적이고 퇴행적인 프레임만을 작동시킵니다.
정치가 작동하지 않는 시대에 이 프레임은 더 강하게 먹힙니다. 문제는 이 방식이 정치의 수준을 끌어올리는 것이 아니라 지지층을 선동의 도구로만 전락시킨다는 점입니다. 하지만 장동혁은 그걸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는 지금도 한동훈에서 윤석열 지지로 손바닥 뒤집은 것을 당연하게 생각할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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