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도나도 전원주택을 꿈꾸던 시절이 있었다. 특히 수도권 5대 신도시가 조성되고 난 1990년대 초부터 2000년대 중반까지 그랬다. 당시를 회상해 보면 수도권 주변 전원주택 분양 광고가 여기저기 넘쳐났다.
좋은 땅 소개하겠다는 전화도 수시로 왔다. 정말 싸고 좋은 땅이라면 무작위로 전화해서 유혹할 리가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이러한 부동산 사기 전화나 허위 분양 광고에 속아서 상당한 금액의 피해를 본 사람이 많다.
진입도로가 없어서 맹지인 땅을 도로에 접한 것처럼 교묘히 도면을 만들어서 팔기도 하고, 허가가 불가능한 지역은 땅의 서류를 위조해서 팔기도 했다. 한 필지를 여러 명한테 중복 분양하기도 했다. 분양 광고에 등장하는 그럴싸한 조감도에 현혹되어 사기 분양에 걸려든 사람들도 있었다.
실제는 경사가 급하고 잡목이 무성한 땅을 단지 앞쪽으로는 시냇물이 흐르고 뒷산에는 숲이 울창하고 꽃이 만발한 정원에 둘러싸여 있는 지상낙원 같은 땅으로 변신시켜 분양하곤 했다. ‘서울까지 30분 거리’라는 광고가 사실인지 실제 시간을 재본 적이 있는데, 1시간 안에 서울 경계를 들어오기도 힘든 거리였다.
즉, 분양 광고에 등장하는 조감도나 광고문구는 사실 그대로 믿을 수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소비자들은 화려한 그림만 보고 분양받는 우를 범했다. 분양 광고에 연예인을 등장시키는 것도 이와 마찬가지다. 그 연예인은 분양과는 전혀 관계가 없다. 단지 돈을 받고 얼굴을 빌려줬을 뿐이다. 그러나 유명한 연예인이 등장하면 더 신뢰성이 있을 거라고 착각하곤 했다.
그런 조감도 사진 아래엔 예외 없이 깨알 같은 크기의 글씨로 ‘상기 이미지는 실제와 다를 수 있습니다.’라고 되어있다. 물론 지금도 아파트 광고든, 주상복합 광고든 종류를 가리지 않고 분양 광고 조감도에는 이런 문구를 넣는다. 이것은 ‘그림과 실제가 다르더라도 따지지 마시오’라는 말이다. 그림과 실제가 달라도 법적으로 책임을 지지 않겠다는 것을 공공연하게 광고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 생각하면 그런 수법에 속아서 분양받은 사람들이 어리숙하다고 하겠지만, 그 시절엔 그러한 사기 수법이 어느 정도 먹혀들 정도로 전원주택의 광풍이 판단을 흐리게 하던 시절이었다. 그 시절 수도권에는 수많은 전원주택 단지가 개발되었고 전원생활의 꿈을 찾아 많은 사람이 이주했다. 단독주택을 지어 이주한 사람들도 많았다.
그렇게 불던 전원주택의 바람은 2008년 금융위기 이후 한순간에 사그라들었다. 허가 내고 토목공사만 해 놓고 방치된 전원주택지가 여기저기 늘어났다. 지금도 국도를 지나다 보면 잡초가 무성하게 자란 흉한 필지가 많이 보인다.
평생 건축을 하면서 내가 설계한 전원주택이 상당히 많다. 친구나 사회 선배들로부터 전원주택 설계를 의뢰받고 현장을 답사할 때면 항상 설레었다. 그들과 협의하면서 설계하고, 공사를 지켜보고, 입주한 이후에 왕래하면서 참 부러웠다. 전원생활도 그렇지만, 그렇게 결심하고 실행에 옮기는 그들의 삶이 부러웠다.
이제 지난 시절 전원생활을 꿈꾸며 서울을 떠났던 사람들이 나이가 들어가면서 여러 가지 이유로 다시 서울로 돌아오고 있다. 그중에 의료문제가 가장 큰 것 같다. 나도 내가 살고 싶은 전원주택을 디자인해 두었다. 그러나 나이를 생각하니 전원생활의 꿈은 설계 도면으로만 남아 있을 가능성이 많아졌다.
요즈음 나는 집에서 멀지 않은 중랑천, 창포원, 초안산을 자주 걷는다. 불암산, 수락산, 사패산, 도봉산, 북한산이 지척에 있어 계절의 정취를 즐기러 산으로 간다. 지하철로 조금 움직이면 청계천이 있고, 낙산 도성과 5대 궁이 있다. 이제 나에게 전원생활의 꿈은 아쉬운 꿈으로 남을 가능성이 많아졌지만 지금 나는 서울의 정원생활에 푹 빠져있다.
여성경제신문 손웅익 건축사·수필가 wison77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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