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반도체 흔들 대내외 리스크 즐비
그러나 실적 순풍을 K반도체의 구조적 경쟁력 확보로 단정 짓는 건 여전히 무리라는 게 전문가들과 업계의 공통된 의견이다. 최근 만난 재계 고위 관계자는 “지금은 잘하면 다 가질 수 있지만, 실기할 경우 모든 걸 잃을 수 있는 중차대한 시기”라고 했다. 메모리 1등을 공고히 하되, 부가가치를 높일 수 있는 법, 즉 메모리 안에 CPU를 집어넣는 프로세서인메모리(PIM)와 CPU와 GPU, 메모리를 효율적으로 연결해 대용량·초고속 연산을 지원하는 차세대 솔로션인 컴퓨트익스프레스링크(CXL) 등 HBM의 뒤를 이을 차세대 메모리 개발에 집중해야 K반도체의 위상을 이어갈 수 있다는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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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관점에서 반도체 인프라 구축, 세제 지원 등의 내용이 담긴 반도체특별법이 아직도 국회에 계류 중인 점은 실망을 넘어 참담하기까지 하다. 이마저도 연구개발(R&D) 인력에 대한 ‘주52시간 근무제 예외’ 조항이 빠진 ‘반쪽 짜리’ 법안이어서 더욱 그렇다. 경쟁국 기업들은 밤낮없이 일하며 반도체 패권을 노리는데 우리 기업들만 손발이 묶여 있는 것과 다를 바 없다는 점에서다. 만약 ‘반도체 지원=재벌 특혜’로 보는 삐뚤어진 프레임이 아직 존재한다면, 후대는 오직 표(票)만 바라보는 정치집단으로만 기억하게 될 것이 뻔하다.
무엇보다 이는 상법 개정, 노란봉투법 등 반기업법을 넘어 주 4.5일제, 정년연장 등 노동 경직성을 심화하는 정책에 속도를 내는 것과 대비된다. 반도체 호황이란 착시에 기댄 낙관이 얼마나 위험한지를 정부·여당이 직시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배경이다. 실제 반도체 등 일부 수출 대기업은 숨통이 틔었지만, 철강·석유화학 등 우리의 전통 주력 산업들은 맥을 못 추고 있는 실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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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지 대내 리스크 뿐일까. 미국이 반도체에 대한 고율의 품목관세를 예고한 가운데 우리나라에 15% 최혜국 대우가 적용될지 미지수인 점과 이로 인해 원달러 환율이 1430원대를 넘나드는 점, 중국의 희토류 수출 통제와 같은 공급망 위기가 상존한 점 등은 물론, 미국의 제재를 뚫고 있는 중국의 반도체 굴기, 마이크론·인텔을 필두로 한 ‘팀 아메리카’ 전략 등 K반도체를 흔들 대외 리스크들 역시 즐비하다.
◇늘 구원투수로 등판하는 韓기업들
그간 여러 불황 속에서도, 우리 기업들은 나랏일이라면 언제든 구원투수로 등판하곤 했다. 지난달 ‘청년 고용난이라는 고비를 넘는 데 기업이 정부와 힘을 합쳐달라’는 대통령의 말 한마디에 삼성·SK·현대차·LG 등이 4만명에 이르는 청년 채용 계획을 발표한 건 그 중 하나에 불과하다. 이재용 삼성 회장과 최태원 SK 회장 등은 한미 관세협상을 측면 지원하고자 어제도 지구 반대편으로 날아가 어쩌면 마주하기 껄끄러운 트럼프의 비위를 맞추며 ‘을(乙)’로서 라운딩을 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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