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레임’에 갇힌 국가 기술 경쟁···중국산 가전의 ‘역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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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임’에 갇힌 국가 기술 경쟁···중국산 가전의 ‘역설’

이뉴스투데이 2025-10-19 15:00:00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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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셔터스톡]
[사진=셔터스톡]

[이뉴스투데이 김진영 기자] 중국산 가전을 둘러싼 ‘보안 불신’이 기술 검증을 넘어 인식의 영역으로 번지고 있다. 로봇청소기·공기청정기·스마트TV 등 일부 사물인터넷(IoT) 제품에서 보안 취약점이 확인, 해외 서버와의 통신 구조 자체가 위험 요인으로 부각되며 불안 여론이 커지고 있다. 일부 브랜드가 실명으로 거론, 개인정보 유출 의혹이 확산되는 가운데 ‘중국산’이라는 이미지가 기술적 검증보다 앞서면서 시장 판단이 왜곡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소비 시장에서 ‘중국산 가전’의 존재감이 빠르게 커지고 있다. 시장조사업체 엠브레인 트렌드모니터가 전국 19~69세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 응답자의 57.6%가 “중국산 가전을 구매한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구매 이유로는 ‘가성비가 좋아서’가 39.6%(복수응답)로 가장 많았다. ‘가격이 저렴해서’(28.6%), ‘품질이 좋아서’(25.7%) 순으로 나타났다. 실제로 중국산 가전을 사용한 소비자 중 76%가 “제품에 만족한다”고 응답, 47%는 “앞으로도 구매할 의향이 있다”고 답했다.

다만 인식 장벽은 여전히 높았다. “중국산 가전은 보급형 제품”이라는 응답이 전체 응답자의 79.3%로 집계됐으며, 79.8%는 “짝퉁이 많다”고 인식했다. ‘개인정보 유출이 우려된다’는 응답도 67.1%에 달해 실제 구매와 만족도는 높지만 ‘저가’와 ‘위험’ 이미지가 여전히 공존한다는 평가다.

한국인터넷진흥원(KISA)과 한국소비자원이 지난 9월 실시한 로봇청소기 6개 제품 보안 점검 결과는 이러한 인식과 현실의 괴리를 보여준다. 조사에는 중국 기업 로보락·드리미·에코백스·나르왈과 국내 기업 삼성전자·LG전자가 포함됐다.

확인 결과 국내 제품은 전반적으로 안정적인 보안 체계를 갖춘 것으로 평가됐다. 삼성전자의 비스포크 AI 스팀과 LG전자의 코드제로 씽큐 R9은 세 항목에서 모두 양호 이상 등급을 기록했다.

중국 브랜드 중에서는 로보락(S9 MaxV Ultra)이 모바일앱에서 평균 이상을, 정책 관리·기기보안 부문에서는 국내 제품과 같은 등급을 받았다. 반면 드리미(X50 Ultra)와 나르왈(프리오 Z 울트라)은 모바일앱 인증 절차와 펌웨어 보안 부문에서 미흡한 수준으로 나타났다.

일부 제품이 사용자 인증과 펌웨어 보안에서 취약점을 드러냈지만, 전반적으로는 국적보다 제품별 보안 관리 수준의 차이가 더 컸다는 분석이다. KISA는 모든 사업자에 취약점 개선을 권고, 전 업체가 개선 계획을 제출했다. 그럼에도 시장에서는 여전히 ‘중국산은 위험하다’는 인식이 굳어지는 분위기다.

한 보안업계 관계자는 “대부분의 글로벌 제조사가 외부 클라우드 서버를 이용하지만, 중국 기업의 서버 위치나 데이터 관리 체계는 상대적으로 더 민감하게 받아들여진다”며 “실제 보안 수준은 서버의 물리적 위치보다 접근 통제와 암호화 정책에 좌우된다”고 말했다. 

한국인터넷진흥원(KISA)이 운영하는 IoT 보안 인증은 자율 참여 제도로, 삼성전자·LG전자 등 주요 가전사가 다수 취득하며 시장 신뢰 확보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다. 다만 인증 대상이 제한적이고 표본심사에 기반해 시장 전반의 보안 수준을 대표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인증 이후 펌웨어 업데이트나 서버 구조가 변경돼도 재검증 절차가 없어 시간이 지나면 효력이 약화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KISA가 이를 보완하기 위한 사후 모니터링 체계 도입을 추진 중이지만, 최근 ISMS 인증 기업들의 보안 사고가 잇따르면서 IoT 보안 인증의 실효성에 대한 우려도 나오고 있다.

보안을 둘러싼 인식의 프레임은 제품 성능 논란에서도 반복된다. 대표적인 사례가 청소기 흡입력 논쟁이다. 중국 기업들이 흡입력을 파스칼(Pa) 단위로 표시하면서 ‘과장 표기’ 논란이 불거졌지만, 이는 실질적 성능 차이보다 국제 단위 체계의 불일치에서 비롯된 구조적 문제라는 해석이 나온다.

유럽과 미국은 공기 흐름과 압력을 함께 반영한 에어와트(AW·Air Watt) 단위를 주로 사용한다. 한국은 국제 표준(IEC 62885-4)에 따라 에어와트 계산식을 적용한 흡입력 와트(W)를 쓰고, 중국은 진공압력의 절댓값을 나타내는 파스칼(Pa)을 사용한다.

에어와트와 흡입력 와트는 실제 먼지를 빨아들이는 ‘흡입 효율’을 나타내지만, 파스칼은 모터가 만들어내는 ‘압력의 세기’를 표시한다. 따라서 동일한 수치라도 시험 기준(노즐 위치, 유량 측정 방식, 먼지 통 상태 등)에 따라 단순 비교가 어렵다.

중국 제조사들이 파스칼 단위를 주로 사용하는 이유는 중국 내 소비자 시장에서 파스칼이 흡입력 표준으로 통용되기 때문이다. 특히 로봇청소기의 경우 바닥 재질, 흡입구 구조, 공기 흐름 등 환경 변수가 많아 에어와트보다 정압(靜壓)을 기준으로 한 파스칼 단위가 측정에 유리하다.

일부 브랜드들은 이런 구조적 특성을 이유로 단위 차이를 성능 과장으로 볼 수 없다는 입장이다. 한 중국 가전 브랜드 관계자는 “습식 기능을 포함한 로봇청소기는 제품 구조와 사용 환경을 고려할 때 파스칼(Pa) 단위가 흡입 성능을 전달하는 데 가장 적합하다”고 설명햇다.

이어 “Pa 단위는 한국을 포함한 글로벌 시장에서도 일반적인 흡입력 표기 방식으로 활용되고 있다”며 “로봇청소기는 유로가 짧고 특정 구역의 순간 흡입력이 중요해 Pa 수치가 여전히 의미 있는 성능 지표로 작용한다”고 덧붙였다.

다만 로보락 등 일부 기업은 무선 스틱형 청소기에서는 와트(W) 병기 표기를 병행, 제품별로 단위 사용 방식을 다변화하고 있다. 이에 단위 표기를 둘러싼 논의도 단순히 ‘Pa냐 W냐’의 선택 문제가 아닌, 제품 구조와 사용 환경에 맞는 기준을 찾는 방향으로 확장되는 추세다.

그럼에도 시장에서는 여전히 ‘중국산은 수치를 부풀린다’는 인식이 남아 있어, 기술적 기준보다 인식이 앞서며 단위 차이 자체가 브랜드 신뢰도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가전 산업의 신뢰는 국적이 아니라 검증 체계의 일관성과 데이터 투명성에서 나온다”며 “단위나 표기 방식의 차이는 기술 발전 과정에서 불가피한 다양성의 영역이지만, 이를 객관적으로 검증하고 소비자가 이해할 수 있도록 투명하게 공개하는 구조가 갖춰져야 시장 신뢰가 쌓인다”고 진단했다.

이어 “보안과 성능을 둘러싼 인식 격차를 줄이기 위해서는 국가별 기준 통합보다 검증 과정의 투명성 확보가 더 근본적인 과제”라며 “특히 로봇청소기 등 중국 가전이 글로벌 시장에서 기술적 우위를 확보한 만큼, 한국 역시 단순 경쟁을 넘어 상호 검증과 표준 협력의 관점에서 기술 발전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고 부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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