ㅣ데일리포스트=김정은 기자ㅣ사람은 사회 속에서 자신이 어느 위치에 있다고 느끼는가에 따라 세상을 다르게 본다. 최근 미국 듀크대학교와 노스웨스턴대학교 공동 연구팀은 자신이 사회적으로 높은 지위에 있다고 인식할수록 타인의 감정을 읽는 능력이 낮아진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흥미롭게도 단순히 현재 지위뿐 아니라 '내 인생에서 사회적 위치가 높아졌다'고 느낄수록 공감 능력이 더 떨어지는 경향도 함께 나타났다.
이번 연구는 온라인 실험 플랫폼 'Prolific'을 통해 미국 성인 1,197명을 대상으로 진행됐으며, 국제학술지 '사이언티픽 리포트(Scientific Reports)'에 게재됐다. 연구를 이끈 빅토리아 리(Victoria K. Lee) 박사와 동료들은 사회적 지위 인식이 인간의 감정 인식 능력—즉, 타인의 감정을 정확히 읽어내는 능력—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탐구했다.
◆ 지위가 높다고 느낄수록, 공감의 정확도는 떨어진다
연구팀은 참가자들에게 두 가지 감정 인식 과제를 제시했다. 첫 번째는 개인의 얼굴 표정을 보고 감정을 추론하는 '제네바 감정 인식 테스트(Geneva Emotion Recognition Test)', 두 번째는 여러 사람이 함께 등장하는 장면에서 전체적 분위기를 판단하는 '앙상블 감정 과제(Ensemble Emotion Task)'였다. 비교를 위해 비사회적 인식 과제도 함께 포함됐다.
실험 결과, 자신의 사회적 지위를 높게 평가한 사람일수록 타인의 얼굴에서 감정을 읽어내는 능력이 떨어지는 경향이 뚜렷했다. 그러나 집단 감정 인식이나 비사회적 과제에서는 이런 차이가 관찰되지 않았다. 또한 인생 전반에서 자신의 지위가 높아졌다고 평가한 사람들 역시 감정 인식 점수가 낮게 나타났다.
연구팀은 이를 "사회적 지위가 높다고 느낄수록 타인의 정서적 단서에 덜 주의를 기울이게 되기 때문"이라고 해석했다. 상대적으로 자원이 부족하거나 사회적 영향력이 낮은 사람들은 타인의 감정 변화를 세밀하게 관찰해야 관계를 유지할 수 있지만, 지위가 높다고 인식하는 사람들은 그런 필요성이 줄어들며 공감의 정확도가 낮아진다는 설명이다.
◆ 주관적 지위 인식이 감정 인식 능력을 바꾼다
이번 연구는 '사회적 지위'가 단순히 소득이나 학력 같은 객관적 지표가 아닌, 스스로 느끼는 주관적 위치에 따라 인간의 사회적 인지 능력이 달라질 수 있음을 보여준다. 연구팀은 주관적 사회지위를 '맥아더 사다리 척도(MacArthur Subjective Social Status Scale)'를 이용해 평가했다. 참가자들은 사회의 상층(가장 성공한 사람들)에서 하층(가장 어려운 사람들)에 이르는 사다리 그림을 보고, 자신이 어느 단에 해당한다고 느끼는지를 표시했다.
논문 공저자 스콧 휴텔(Scott A. Huettel) 교수는 "사회적 지위는 단순히 자원의 많고 적음을 넘어, 타인을 바라보는 시선과 감정 해석 방식 자체를 바꾼다"고 설명했다. 이번 연구는 사회적 성공이 곧 감정 이해력 향상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점을 분명히 보여준다.
연구팀은 "다만, 이번 실험은 사진 속 인물의 표정을 해석하는 과제였기 때문에 실제 상호작용 상황에서의 감정 인식과는 다를 수 있다. 향후에는 현실적 사회 관계 속에서의 공감 능력 변화를 추적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Copyright ⓒ 데일리 포스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본 콘텐츠는 뉴스픽 파트너스에서 공유된 콘텐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