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0월 18일, 캄보디아에서 범죄에 가담한 한국인 64명이 전세기로 귀국했다. 이들은 보이스피싱, 로맨스 스캠 등 국제 범죄조직에 얽혀 있었다. 그러나 오늘의 핵심은 이들의 귀환이 아니다. 그보다 묻지 않을 수 없는 것은, ‘국가의 책임은 어디 있었는가’다.
헌법 제2조 ②항은 “국가는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재외국민을 보호할 의무를 진다”고 적고 있다. 이는 선택이 아닌 책무이며, 외교의 본령이다. 대통령령 제35292호 외교부 직제 제3조는 외교부의 직무에 “재외국민 보호·지원”을 명시한다.
이 세 문장은 한 국가의 최소한의 양심을 지키는 보루다.
그러나 국정감사장에서 확인된 현실은 그와 정반대였다. 국회 외교통상위원회 소속 한정애·차지호·송언석 의원의 질의에 대한 조현 외교부 장관의 답변은 놀라울 만큼 공허했다.
“언제 보고받았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보고한 시점은 정확히 모르겠다.”
조현 장관의 말 한마디에 국민 보호 의무는 공중에 흩어졌다.
더 큰 문제는 외교 현장의 방관이었다. 2023년 부임한 박정욱 주캄보디아 대사는 수차례 이어진 한국인 납치·폭행·감금 사건에도 실질적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현지 경찰 주재원 증원은 3년째 ‘검토 중’이었고, 사건 발생 시 대사관의 초기 대응은 “현지 확인 중”이라는 말뿐이었다.
국민이 납치되고, 고문당하고, 죽어도 “보고가 늦었다”는 이유로 덮였다.
외교의 본질은 국경 밖 국민의 생명을 지키는 것이다. 그것이 헌법 제2조가 부여한 이유이며, 외교부 직제 제3조가 부여한 역할이다. 그러나 이번 사태는 그 두 문장이 종이 위의 문구로만 존재함을 보여줬다.
오늘 새벽 인천에 도착한 전세기에는 64명의 국민이 있었다. 이 비행기에는 또 다른 존재가 함께 타 있었다. 헌법이 써 내려간 ‘국가의 의무’, 그리고 외교가 놓쳐버린 ‘책임’이다.
외교는 보도자료로 완성되지 않는다. 그 시작과 끝은 ‘국민의 생명’이다. 헌법은 이를 이미 썼고, 이제는 외교가 그것을 다시 읽어야 할 때다. 국민을 보호하지 못한 외교는, 더 이상 행정이 아니라 회피다.
[뉴스로드] 최지훈 기자 jhchoi@newsroa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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