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용주 법무법인 안다 대표변호사·안다상속연구소장] 사람은 나이를 먹으면서 자연스레 ‘어떻게 물려주어야 하는가’라는 숙제를 마주한다. 평생 모은 재산을 자식에게 주는 것은 부모의 본능이자 의무처럼 여겨지지만, 정작 ‘어떻게’ 물려주는가에 대한 고민은 깊지 않다.
우리는 상속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절세나 재테크로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누가 얼마를 받느냐, 세금을 얼마나 줄일 수 있느냐가 전부인 듯 보인다. 그러나 상속은 돈의 문제가 아니라 부모의 마음을 어떻게 전달할지의 문제다. 그것은 사랑을 어떻게 전할 것인가에 대한 부모의 철학이며, 남겨진 자식들에게는 우애를 잃지 않도록 하는 마지막 유언이다.
노후 준비에 관한 책으로 유명한 재테크 전문가 고득성 작가의 ‘상속의 지혜’를 소개하고 싶다. 이 책은 2009년에 출간된 후에도 계속 발간되면서 지속해서 읽히는 스테디셀러다. 이 책은 단순한 재무설계서가 아니라, ‘상속’이라는 인생의 마지막 장면을 준비하는 한 아버지의 이야기이자, 남겨진 가족을 위한 심리적 유언집이다.
저자는 상속을 세 가지로 구분한다. 첫째는 아름다운 노후와 자녀 교육을 위한 상속, 둘째는 기업의 지배권 승계를 위한 상속, 셋째는 재산 보존과 세금 절감의 측면이다. 그런데 대부분 사람은 세 번째 문제에만 몰두한다. 돈을 잃지 않는 방법만 연구하다가, 가족을 잃는 경우가 많다.
저자는 상속의 본질을 ‘조화’에 두고 있다. 부모와 자식이 서로의 삶을 이해하고, 합리적인 대화를 통해 미래를 설계하는 과정 자체가 상속의 시작이라는 것이다.
책의 주인공 김수성은 흔한 가장이다. 자식 셋을 두고 평생 일궈온 회사를 남기려 하지만, 그 마음은 복잡하다. 자식들은 이미 결혼했고, 각자의 삶을 살고 있으며, 부모의 재산을 서로 다르게 바라본다. 누구는 당연히 받을 몫으로 생각하고, 누구는 손해를 본다고 느낀다. 부모의 의도와 달리 상속은 가족 간의 감정선을 건드리는 민감한 영역이다. 이 책은 김수성이 가족 간의 갈등 속에서 ‘상속은 유산이 아니라 유언’임을 깨닫는 과정을 섬세하게 그려낸다.
저자는 “상속 준비는 죽기 전에 하는 일이 아니라, 살아 있는 동안 가족을 위해 미리 해야 하는 일”이라고 말한다. 이 문장은 한국 사회의 고질적 문제를 찌른다. 우리는 상속을 ‘죽음 직전의 절차’로 여긴다. 하지만 실제로는 살아 있는 동안 꾸준히 준비해야 하는 ‘관계의 설계’다.
자신의 노후 자금과 자식들에게 줄 수 있는 자산을 구분하고, 가족 간의 대화를 통해 현실적인 분배 기준을 세워야 한다. 요즘처럼 노후가 길어지고 의료비가 늘어나는 시대에는 재산을 다 주고 나서 가난한 노인으로 사는 경우가 허다하다. 반면 자식들은 결혼과 주택 마련 등으로 부모의 지원을 기대한다. 이러한 이해의 차이는 결국 갈등을 낳는다. 그래서 상속의 지혜란, 살아 있을 때 미리 ‘함께 이야기하는 용기’에서 출발한다.
‘상속의 지혜’라는 책이 인상적인 이유는 단지 상속의 기술을 말하지 않기 때문이다. 저자는 상속의 ‘기준’을 명확히 세우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예를 들어 “자녀는 상속받기 전 5년 이상 사회생활을 성실히 해야 하고, 직업적 책임을 다하지 않으면 상속 자격을 미룬다”는 식의 구체적인 상속 기준을 제시한다. 이는 단순히 돈을 주는 조건이 아니라, 자녀 스스로 삶의 주체로 설 수 있게 하는 철학적 장치다. 부모의 유산이 자녀를 나태하게 만들지 않고, 스스로 노력할 동기를 부여하는 것이다.
이 책이 던지는 메시지는 명확하다. 상속은 재산 분배의 기술이 아니라 사랑의 언어라는 점을. 사랑을 돈으로 표현하려는 순간, 가족은 싸우게 된다. 그러나 사랑을 지혜로 풀어내면, 가족은 더 단단해진다. 부모는 유언장 하나를 남기는 것으로 끝내지 말고, 그 유언이 지켜질 수 있는 ‘가족의 문화’를 함께 만들어야 한다.
입으로만 한 약속은 쉽게 흩어진다. 유언장은 반드시 문서로 남겨야 하며, 상속 설계전문가인 변호사나 세무사의 도움을 받아 구체적으로 준비해야 한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자식들이 부모의 뜻을 이해하도록 충분히 대화하는 것이다. 상속의 핵심은 ‘얼마를 주는가’가 아니라 ‘왜 그렇게 하는가’를 공유하는 데 있다. 그 이유를 아는 자녀만이 상속받은 재산을 소중히 쓸 수 있다.
결국 상속은 남은 자녀를 위한 배려이자, 떠나는 부모의 마지막 사랑의 표현이다. 부모가 진심을 담아 설계한 상속은 가족의 화목을 지키는 최후의 방패가 된다. 반면 아무런 기준도 없이 이루어진 상속은 가족을 찢어놓는다. 그래서 상속의 지혜는 결국“내가 가진 재산으로 가족의 관계를 지킬 수 있을까?”라는 물음에 대한 답이다.
부모가 지혜로운 상속을 준비할 때, 가족은 더 오래 사랑할 수 있다. 상속의 지혜란, 결국 ‘사랑을 남기는 기술’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을 배우는 일은 우리 모두의 남은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공부일 것이다. 삶의 후반부에 들어선 많은 중장년들에게‘상속의 지혜’라는 책을 한번 읽어 볼 것을 권한다.
■조용주 변호사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졸업 △사법연수원 26기 △대전지법·인천지법·서울남부지법 판사 △대한변협 인가 부동산법·조세법 전문변호사 △안다상속연구소장 △법무법인 안다 대표
Copyright ⓒ 이데일리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본 콘텐츠는 뉴스픽 파트너스에서 공유된 콘텐츠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