냄새로, 고통으로…어려운 문학을 이해하는 색다른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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냄새로, 고통으로…어려운 문학을 이해하는 색다른 방법

연합뉴스 2025-10-19 08:00:00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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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 '찰나의 기억, 냄새'·'낯선 이를 알아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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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해문집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연합뉴스) 황재하 기자 = 문학은 삶을 풍요롭게 하지만, 복잡한 인간의 감정을 표현하는 만큼 때때로 너무 어려워 읽는 이의 머리를 쥐어뜯게 만든다.

이 때문에 난해한 고전이나 문학 작품을 쉽게, 또는 색다른 방식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안내하는 인문학 서적이 꾸준히 출판 시장에 나오고 있다.

최근 출간된 '찰나의 기억, 냄새'(서해문집)와 '낯선 이를 알아보기'(민음사)는 각각 문학 작품을 바라보는 각자의 독특한 시각을 소개한다.

연세대 국어국문학과 김성연 교수의 저서 '찰나의 기억, 냄새'는 후각에 초점을 맞춰 예술과 문학 작품을 이해하는 방법을 제시한다.

저자는 기술 발전으로 효율적인 보존과 재현이 가능해진 시각·청각 자료와 달리 후각은 오직 언어를 이용해야 시대와 공간을 뛰어넘어 전할 수 있다는 점에 착안해 문학작품 속 후각의 경치, 즉 '후경'(嗅景·smellscape)을 탐색한다.

이 책에 따르면 '메밀꽃 필 무렵'의 소설가 이효석(1907∼1942)은 작품들에 봄, 여름, 가을, 겨울 각각의 냄새를 담아낸 '향기 수집가'였다.

대표적인 예가 이효석의 단편소설 '약령기'다. 이 소설은 달밤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묘사하면서 향기가 아름다움을 더한다고 강조한다.

"그러나 달밤은 또한 이 신비로운 색채뿐이 아니다. 색채 외에 확실히 일종의 독특한 향기를 품고 있다. 알지 못할 그윽한 밤의 향기 - 이것이 있기 때문에 달밤은 더한층 아름다운 것이다." (소설 '약령기'에서)

시인이자 소설가인 이상(1910∼1937) 역시 작품에 후각적인 요소를 담아내는 데 일가견이 있었다. 특히 '절벽'이라는 산문시에서는 '향기'라는 단어가 반복해서 등장한다.

"꽃이 보이지 않는다. 꽃이 향기롭다. 향기가 만개한다. 나는 거기 묘혈을 판다. 묘혈도 보이지 않는다. 보이지 않는 묘혈 속에 나는 들어앉는다. 나는 눕는다. 또 꽃이 향기롭다."

저자는 이 밖에도 이광수, 백석, 염상섭 등이 작품에서 후각을 어떻게 문자로 표현했는지 소개한다. 작가들이 각자 어떤 냄새를 긍정적 또는 부정적으로 묘사했는지 소개해 흥미롭게 읽힌다.

그는 책의 프롤로그에서 "문학을 통해 타인의 호흡을 차분히 들이켜 보는 시도는 진정 그가 되어 보는 첫 관문일 것"이라며 "어떤 냄새는 눈으로 보이지 않는 사물의 이면을, 현상과는 다른 사태의 본질을 드러내어 주기도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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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음사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팔레스타인 출신 영국 작가 이사벨라 함마드(35)가 2023년 9월 미국 뉴욕주 컬럼비아대에서 강연했던 내용을 정리한 글과 강연 후기를 엮은 책인 '낯선 이를 알아보기'는 타인의 고통이라는 틀로 문학에 접근한다.

함마드는 자신과 마찬가지로 팔레스타인 출신인 저명한 비교문학가 에드워드 사이드(1935∼2003)의 추모 강연을 의뢰받고 이 강연을 준비했다고 한다.

팔레스타인이 처한 위기와 이스라엘과의 적대 관계를 주제로 소설을 집필해온 함마드는 이 강연에서 팔레스타인의 비극 속에서 문학이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지 역설한다.

다소 장황한 이 강연에서 함마드는 문학이 타자, 즉 낯선 이의 고통을 느낄 수 있도록 하는 장치들을 열거하며 작가가 어떻게 독자와 등장인물 사이의 정서적 거리를 좁히고 동질감을 느끼게 하는지 보여준다.

함마드는 독자가 스스로 무언가를 오해했다는 사실을 깨닫는 경험에서 짜릿한 기쁨을 느끼는 현상을 소개한다. 이는 아리스토텔레스가 '시학'에서 얘기한 '아나그노리시스'라는 개념과도 일맥상통한다.

함마드는 이탈리아 소설가 엘레나 페란테의 장편 '나의 눈부신 친구'에서 작가가 제목으로 지칭하는 인물이 누구인지 의도적으로 독자를 혼동시키는 것을 예로 든다.

아울러 독자가 오해했음을 깨닫고 쾌감을 느끼는 현상을 "진실한 것에 대한 감각, '나'와 반대되는 것과 불투명한 타자에 대한 감각이 인지의 틈을 비집고 나오는 데에 따른 쾌감"이라 설명했다.

이처럼 함마드는 문학이 어떻게 독자의 인식을 바꾸고 깨달음을 주는지, 이 깨달음이 어떻게 타인을 향한 공감과 관심으로 이어지는지 여러 예시를 통해 탐구한다. 이 과정에서 데버라 리버의 소설, 앤 카슨의 에세이, 소포클레스의 비극 등 여러 문학 작품을 논한다.

특히 함마드는 인본주의적 가치를 훼손하는 세력에 맞서기 위해 문학 작품에 묘사된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처지를 이해해 달라고 호소하고 있다.

그는 책에 수록한 강연 후기 '가자에 대하여'에서도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공격이 부당하다고 재차 강조하며 잘못된 폭력에 맞서기 위해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고통에 공감하기를 당부한다.

"물러나지 말라. 가자의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되어 보라. 그들의 얼굴을 마주하라. 말하라, "저게 나야!"라고." (본문에서)

▲ 찰나의 기억, 냄새 = 384쪽.

▲ 낯선 이를 알아보기 = 강동혁 옮김. 88쪽.

jaeh@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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