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0월 17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경찰청 국정감사에서는 대한민국 공권력이 얼마나 국민으로부터 멀어져 있는지가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캄보디아 범죄조직에 납치돼 목숨을 잃은 청년의 아버지의 목소리가 회의장 안에 울려 퍼졌다.
“112에 신고했더니 강력계에서 전화가 와 캄보디아 대사관에 팩스를 보냈다고만 했다.”
“다음날 또 갔더니, 팩스로 전송했다는 말만 들었다.”
“대사관에 전화했더니 기다릴 수밖에 없다더라. 동영상이나 확실한 증거 없으면 캄보디아 경찰이 안 움직인다고 했다.”
이 절규 같은 녹취가 공개된 자리에서 유재성 경찰청장 직무대행은 “캄보디아 사태에 대해 경찰이 사전에 철저히 준비하지 못한 점은 안타깝게 생각한다”며 “방치는 아니지만 공조가 미흡했던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그 말은 이미 늦었고, 더는 변명이 되지 않았다.
채현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피해자 가족의 통화 내용을 공개하며 “경찰이 한 일이라곤 팩스 송부 후 기다리라 한 것이 전부였다”고 질타했다. 대사관에는 경찰 주재관 1명과 협력관 2명이 있었지만, 누구도 즉각적인 구조에 나서지 않았다. 근무자는 매일 바뀌었고, 전달된 메시지는 읽히지 않았다.
채 의원이 전한 피해자 아버지의 말은 냉담했다.
“메시지를 남기면 다음 사람이 읽지도 않고 넘어가더라. 최선을 다하고 있다며 대답할 게 없다고 했다.”
그의 말은 생명을 구하지 못한 행정의 무표정한 언어로만 되돌아왔다.
경찰관직무집행법 제2조는 경찰의 첫 번째 임무를 ‘국민의 생명·신체 및 재산의 보호’라 규정한다.
그러나 그 법은 ‘사법권이 없는 외국’이라는 말 한마디에 무너졌다.
피해자의 가족이 대한민국 경찰에 신고했을 때 돌아온 것은 “팩스를 보냈다”는 한 줄 보고였다. 현지 대사관은 “증거 없으면 캄보디아 경찰이 움직이지 않는다”고 했다. 결국, 국가가 해야 할 일을 피해자의 가족이 대신했다.
국회의원이 직접 국민을 구해야 하는 나라. 그것이 지금 대한민국 외교와 치안의 초라한 현실이다.
김성회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피해자가 귀국 후 노원경찰서에 신고했지만 담당자가 없다는 이유로 접수를 거부당했다”고 비판했다. 용혜인 기본소득당 의원은 “캄보디아 내 범죄가 1년 새 12배 늘었는데, 경찰은 외사범죄수사대를 폐지했다”며 “이게 경찰의 대응이냐”고 질타했다.
결국 오늘날 경찰을 상징하는 말은 세 단어로 요약된다.
‘공조 없음, 체계 없음, 책임 없음.’
팩스 한 장이 국민의 생명선을 대신한 현실, 그것이 우리가 마주한 ‘공권력의 민낯’이다. 국가의 존재 이유는 법전에 있지 않다. 그것은 국민이 도움을 요청할 때 손을 내밀 수 있는가에 달려 있다.
그 손을 내밀지 못한 경찰은, 오늘 또 한 명의 국민과 함께 헌법의 첫 조항을 잃었다.
[뉴스로드] 최지훈 기자 jhchoi@newsroa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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